정치가 녹여버린 ‘철의 인생’
  • 포항·김상익 차장대우·허광준 기자 ()
  • 승인 2006.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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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위해 의원직 사퇴 박태준씨... 세무조사로 ‘불명예 퇴진’



 지난 68년 4월1일 포항종합제철 창립 첫날 박태준 사장(당시 직위)은 취임연설에서 창립 요원 38명에게 “회사나 개인의 명예를 더럽혀서는 절대 안된다”라고 당부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그토록 명예롭던 ‘철의 인생’은 온통 얼룩졌다. 그가 철강으로 쌓아올린 명예는 잘못 발을 들여놓은 정치 때문에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철의 사나이 박태준’의 위상을 알려주는 예화는 많다. 철강산업 분석가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피터 마커스씨는 “오늘날의 포항제철은 확실히 박태준 회장 없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는 전세계 제철업계의 귀감이 되고 있다”라고 극찬했다.78년 일본을 방문한 등소평이 세계 최대의 철강 회사인 신일본제철의 이나야마 회장에게 중국에도 포항제철 같은 제철소를 건설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자 이나야마 회장은 이렇게 되물었다. “중국에는 박태준과 같은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87년 영국금속학회는 철강 업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베세머 메달을 박태준 회장에게 수여했다. 5년 뒤인 92년 6월 그는 모범적인 철강인에게 주는 ‘윌리 코프 철강상’도 받았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그의 비중이 커지면서 철의 인생에 녹이 슬기 시작했다.14대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둔 92년 12월17일 아침 민자당은 박의원이 김영삼 대통령후보에게 보낸 사신을 공개했다. 그러자 포항제철과 박태준 의원 주변에는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한 측근은 특히 문제가 된 구절이 “저의 주변에서 괴롭히는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마는 광양에서 확인한 우정에 따라 행동규범을 정하고...” “행동규범을 정하다니 둘 사이가 주종관계냐.” 이같은 내용의 전화 테러가 무차별적으로 행해졌다는 것이다. 이 측근은 “당시 홍콩에 머물고 있던 박의원은 정치적 파장을 우려하면서도 명예가 더럽혀지는 것을 참을 수 없어 그날 오후 의원직 사퇴서를 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뗀 그는 92년 12월25일 장기 외유를 떠났다. 그는 유럽 미국 일본을 돌아다니다가 58일 만인 2월20일 귀국했다. 그때는 이미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주주총회를 이틀 앞둔 3월10일 사임서를 제출하고 또 다시 일본으로 떠나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제25기 주주총회에서 박태준씨의 측근이었던 황경로 박득표 이대공 여상환 씨 등 창업 1세대들은 뒷사람을 위해 ‘명예롭게’ 퇴진했다.

 포항제철의 회장이면서 국회의원인 동시에 민자당 최고위원.한국철강협회 회장이라는 묵직한 직함을 줄줄이 달고 있던 ‘철의 사나이’는 지금 회사 돈을 마음대로 빼 썼을 가능성이 있는 ‘용의자’로 낙인이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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