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혈 국악에 마냥 기댈 순 없어”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2006.05.1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첫 지위 金永東씨, ‘수제천’으로 오케스트라 ‘조율’ 구슬땀


金永東(43)씨는 처음 만나는 오케스트라와는 수제천을 연수해 보면서 ‘이 오케스트라가 나와 인연이 맺어질 수 있을 것인가??를 가늠한다. 그것은 지난 90년 그가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부임해 첫 연주회 래퍼토리로 수제천을 택한 이래 지속해온 내밀한 규칙이다.

“어이, 매구북 치는 분, 성함이 어찌 되시오? 여기선 대피리가 살아야 하니까 소리를 아주 줄여 주셔야 합니다.??

김씨는 지난 10일 세종문화회관 3층 연습실에서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50여 연주자를 처음 만났다. 레퍼토리는 신수제천. 그가 신시사이저와 생황, 여창가곡을 넣어 새로 편곡한 곡이다. 전임 김용만씨가 물러난 이후 3개월째 상임 지휘자를 갖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으로서도 이 상견례는 의미심장한 일이다. 특유의 컬컬한 목소리와 찌푸린 얼굴로 두시간 가량 연습을 마친 김씨는 “지휘자를 쳐다보지 않고 연주하는 습관부터 고쳐야 하겠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악단 간부들이 상임 지휘자로 모시고자 삼고초려중이라는 풍문을 시인하면서, 오는 3월19일 객원 지휘자의 자격으로 첫 연주회를 해본 다음에 마음을 정하겠다고 결정을 미루고 있다. 악단측에서는 김씨가 서울시와 다음 두가지 사항을 놓고 막후협상중이라고 귀띔한다. 현재의 단원수에서 20명을 더 늘려 70명을 확보해 줄 것과 봉급 수준을 서울시립교향악단에 맞춰줄 것. 이 두가지는 지난 88년 시립 단체로서는 처음으로 단원들이 농성까지 하며 요구했던 사항이다.

첫 연습을 마친 김씨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 스타일이 ‘너무 타성에 젖어 있으나 음색이 세련되어 가꾸기에 따라서는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겠다??고 전망한다.

그가 단원을 시험할 때 늘 수제천을 쓰는 까닭은 이 곡이 우리 아악 가운데서 가장 정치한 것이기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자기가 현대적으로 편곡한 부분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관찰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부 연주자 공중 배치 실험도

국악의 대중화라는 명분으로 유행가 가수를 불러다 국악 가요를 부르게 하거나, 국악 찬송가·국악 동요 같은 혼혈 음악으로 거품성 화제를 만드는 방식은 ‘이제 끝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본래의 격을 유지하면서 다양화될 때 참다운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출발점이 정악이었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국립국악고를 거쳐 서울대 음대에서 대금을 전공한 그는 아카데미즘에 바탕을 둔 창작국악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사람이다.

<태> <초분> 등 동랑 레퍼토리가 선도하는 70년대 실험 연극의 음악 스태프로 주목받기 시작한 이래 <땡볕> <어둠의 자식들> 같은 영화 음악으로 그의 음악이 상업적 용도를 갖기 시작하자 그는 독일 유학을 단행해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은 ‘서양 악기에 의지하여 실험하는 국악인??이라는 편견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였다. 귀국후 그는 ??나는 지금까지 서양 악기로 하여금 국악의 가락을 침범하도록 허용한 일이 없다. 서양 악기를 화음의 영역 안에 둔다는 것은 나의 소신이다??라고 밝혔다. ??화성이 없기 때문에 국악은 미개한 음악??이라는 콤플렉스를 완전히 극복한 것도 5년 동안 베를린에서 종족 음악을 공부하며 얻은 수확이다.

“서양 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좋아하기까지는 너무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 언제까지나 혼혈 음악을 만들 수는 없다. 그것은 너무나 허전한 일이다.??

지난 90년 귀국한 이래 그는 지휘에 몰두하고 있다. 지적소유권 시대의 유일한 자산은 국악이며, 그것을 상품화하는 가장 집단적인 힘은 오케스트라를 통해 나온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 3년간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을 지휘하면서 그 가능성은 상당히 확인되었다. 관리들과 타협하는 기술도 익혔다.

그는 이번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과 첫 연주를 하면서 악기 배치에 파격을 단행한다. “몇가지 방중 음악을 빼고 국악은 원래 모두 야외 음악입니다. 극장식 무대에서 국악을 연주하다는 사실 자체가 모순이지요. 극장에서 연주하면서도 야외 음악의 입체감을 살릴 수는 없을까, 이것이 늘 제 고민거리입니다.??

그래서 오는 19일 저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허공에 떠 있는 파이프오르간석은 뜻밖의 손님을 맞게 되었다. 그 자리에 생황과 태평소 주자가 앉게 된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