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미·북한위기’ 일부일 뿐
  • 이영희 (한양대 교수·국제관계론) ()
  • 승인 1992.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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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신세계질서 구상과 원한’ 북한의 ‘적대감’ 충돌…긴장 초래

《시사저널》은 지난호[127호]에 북한의 핵문제와 남북대화의 연계론을 주장한 서강대 李相□ 교수와 반대입장에 선 평화연구원 金南□ 연구위원의 견해를 실었다. 이번 호에는 미국의 대북한 핵정책의 본질을 ‘신세계질서’ 논리에서 본 한양대 李□□ 교수의 견해를 싣는다.<편집자>

 미국과 북한 사이에 열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83년 레이건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군사작전을 계획한 채 실천에 옮기지 못한 꿈을 그의 후임자가 실현하려느 것 같다.

 북한의 핵개발에 관한 미국과 북한의 주장은 전면적으로 상치된다. 89년 미국 하원 아시아·태평양지역소위원회 솔라즈 위원장이 “북한이 금세기말(2000년) 이전에 핵제조능력을 획득할 것”이라고 처음 공언한 지 2년이 안된 최근 미국은 그 시기를 “수개월 내”로까지 단축하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가공할 정세변화임에 틀림없다.

 이에 대해 북한은 남·북한간의 ‘한(조선)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발효시켰고, 6월 중순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수락 의사와 그 일정을 공표하기까지 했다.

 미국 인공위성의 첩보사진 등 정보를 근거로 한 북한의 핵처리시설 완공단계설에 대한 북한은 기존의 연구용 및 신규 핵발전시설의 확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북한은 또 자신의 주장에 국제적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김일성 주석의 입으로 “북한은 핵무기제조를 할 생각도 없고, 제조할 경제적 바탕도 기술적 능력도 없다”고 거듭 선언하였다.

 이렇듯 엇갈리고 대립하는 주장과 복잡한 정세 속에서 남한의 정부와 언론은 오로지 한가지 판단뿐이다. 미국의 주장은 전부 옳고 미국 정부기관들의 주장대로 전적으로 북한쪽에 책임이 있다는 견해이다. 그런 논리와 견해는 결론적으로 말해 옳기도 하고 틀린것이기도 하다. ‘남한적’ 사태파악의 일면성과 불균형은 언제나 그랬듯이 국제관계에 대한 우리의 애꾸눈적 시각 때문이다.

 현재의 미국·북한 위기는 미국의 주장처럼 북한의 ‘핵개발’ 때문은 아니다. 적어도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의 군부는 10년 전인 83년 “북한에는 핵능력이 없다”고 공식확인(그 해 1월23일 미국 육군참모총장 에드워드 마이어 대장의 서울방문 기자회견에서의 공개발언)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현재와 같은 전쟁을 구상했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신문에 폭로·보도된 ‘와이버거(국방장관) 비밀 작전계획서’는 미국의 중동·아랍 석유자원의 독점적 지배노력에 대한 소련의 간섭으로 중동에서 미·소간 군사충돌이 일어날 경우 소련의 군사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제2전선’을 북한에 대한 전면 공격으로 전개한다고 되어 있었다. 이 제2전선 작전전략은 ‘아시아 동맹국들의 북한에 대한 지상공격과 미국의 핵공격’이었다. 이 동맹국가‘들’이 문제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소련(러시아)과 중국이 대북한 공격에 가세할 아시아 동맹국가‘들’(allies)이 아니라면, 그것은 남한군대와 일본군대(들)의 지칭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작전계획을 실행하지 못한 채 물러간 레이건 대통령의 후임자는 1년 전 이라크와 그 지도자 후세인에게 그것을 적용하여 성공했다. 걸프전쟁에 맛들인 부시 대통령이 그 재탕을 북한에 대해서 연출하려는 것 같다. 그 계획에는 일관성이 있다. 미국 군부의 ‘숙원’이라 할 수 있다. 작년 3월 밝혀진 ‘91년 종합 합동 군사정세평가’(체니 국방장관의 대의회보고서)는 유명한 대북한 ‘120일 고강도 전쟁’을 구상했었다.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엔터베식 선제 기습공격’ 발언(이종구 국방장관 구상)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걸프전쟁에서 승리한 후 북한에 대한 미국 군부의 의도는 그런 경우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신중성과 언어의 절제도 무시하고 있다. “때려잡아야 할 악마가 이제 몇 남지 않았다. 다음은 카스트로와 김일성 차례다.”(91년 4월8일 미국 합참의장 콜린 파웰 대장) 지난 3월초에 미국의 남은 적 두 나라 가운데 쿠바를 빼고 오직 북한에 대한 “모든 군사행동 준비가 끝났다”는 파웰 합참의장의 재천명은 단순한 협박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 국민과 군은 PTSD환자인가
 북한에 핵시설이 있거나 없거나 또는 핵폭발장치의 획득시기가 95년이냐 2000이냐의 문제 이전의, 오랜 기간에 걸친 미국 군부의 확립된 작전계획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로이드 드마우스의 진단처럼 걸프전쟁 이후 미국의 군부 및 국민의 정신상태는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 정신적 상해후유강박이상심리) 환자의 인상을 준다.

 미국과 북한의 긴장구조는 미국측으로는 두 개의 큰 기둥으로 받쳐져 있다. 하나는 소련 붕괴 이후의 세계를 미국의 단독지배하에 요지부동하게 틀어쥐려는 이른바 ‘신세계질서’ 구상이고, 다른 기둥은 북한에게서 입은 크고 작은 정신적 상처를 앙갚음하려는 누적된 원한이다. 전자는 전지구적 규모의 미래지향적 구상이다. 후자는 미국이 한반도에 관여한 지난 기간의 체험에 대한 과거지향적 보복심리이다.

 미국이 추구하는 내일의 ‘새로운 세계’는 최근에 폭로된(또는 의도적으로 누설한) 소위 ‘94~99년 국방계획지침 2월18일안’대로 이어야 한다. 이 문서가 미국의 ‘국가목표’라고 정의한 청사진의 대들보는 대략 다음과 같다. ①과거의 소련과 같은 새로운 적대자의 출현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②소련의 후계인 러시아의 군사력을 무력화한다. ③세계 어느 곳에서건 미국 이익에 거추장스러운 국가나 세력은 ‘지금’ 굴복시킨다. ④통일독일과 일본의 핵강국화를 사전봉쇄한다. ⑤세계규모의 적대자가 소멸한 이 기회에 각지역의 ‘저수준의 적대자’들을 ‘저렴한 비용’으로 처치한다. ⑥지역적 강자의 출현을 용납하지 않는다. 북한은 이 미국 국가목표 가운데 ③과 ⑤ 또는 ⑥에 해당한다.

 그 국가목표의 달성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유일하게 미국을 핵전력화한다. ②유럽(동·서)을 확대된 북대서양조약기구군(미국 중심) 통제 아래 둔다. ③미국의 종합군사력을 잠재적 경쟁자들의 종합군사력보다 우월한 수준으로 유지한다. ④유엔(안보리)의 협력이 없는 경우 미국 단독 군사행동을 서슴지 않는다.(지난 50년간의 ‘집단안전보장’ 원칙 폐기). 유엔을 미국 국가이기주의적 결정의 하부기관으로 격하시킨다. ⑤앞으로 예상되는 미국의 군사적 대결상대는 이라크와 북한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④와 ⑤가 해당된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과거지향적 요소(이루지 못한 숙원)는 다음과 같다. ①미국 역사상 최초로 승리없는 전쟁(6·25). ②북한 영해를 침범한 미국 해군 전자첩보함 푸에블로호와 승무원 82명 나포(68년). 미국의 핵공격 위협도 실패. 그 석방까지 미국의 권위손상과 굴욕감. ③북한 영공에서의 미 공군정찰기 EC-121기 격추, 승무원 6명 사망(69년). 미국의 강경대응 또 실패. ④미국이 패배한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의 적에 대한 북한의 원조 ⑤미군 헬리콥터 북한 영내에서 격추. 굴욕적 시체 인수(69년). ⑥판문점에서 북한측 미루나무를 자른 데 대한 북한측의 보복으로 미군 장교와 하사관이 도끼에 맞아죽음(76년). 대책없음. ⑦판문점 정전회의에서 40년간 미군 역대 대표들이 북한대표로부터 받은 수모. ⑧북한을 테러주동국으로 지정할 정도의 미국 감정.

 역대 남한 주둔 미군사령관과 판문점 정전회담 대표들의 대부분은 미군 참모총장·합참의장 등 최고직을 역임한다. 그들은 북한으로부터 받은 수모로 심각한 정신적 상해를 입었고 그것은 미국 군부의 전체적 감정화로 이어졌다. 바로 ‘5등 국가’(존슨 대통령의 표현) 북한에 대한 PTSD환자적 설욕·보복·보상충동이다.

 한편 미국·북한간 현 위기에 대해 북한이 미국에 대해 갖는 요소는 어떠한다. 미국에 대한 일반적 적대감정은 바로 위의 미국 군부의 그것을 뒤집은 것으로 많은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 PTSD'환자 심리이다.

 문제는 미국이 주장하는 북한의 핵전력계획이다. 미국의 군사용 첩보인공위성 체계의 종합적 □□능력은 뛰어나다. 지상의 지프 크기 내지 그 이하 대상물의 해독이 가능하다. 미국측 주장의 상당 부분은 사실일 수 있다.

 그외에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시도할 만한 충분한 상황적 근거를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김일성 주석의 공언이나 평양 정부의 공식발표가 무엇이든 그 가능성을 귀납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 시설이 최근 미국이 주장하는 것처럼 수개월이나 1~2년 내에 실현단계에 있는가의 평가에서 미국 정부 내의 견해도 갈라져 있다. 또 객관적 진실과 관계없이 미국의 정치정책·군사전략 구상에 따라 편의대로 변화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것을 지난 베트남전쟁 기간과 걸프전쟁 준비단계에서 미국 정부가 해온 발표를 통해 수없이 경험한 바 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는 이유
 그렇더라도 다음과 같은 객관적 사실들은 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핵무기 제조를 추진했던 것과 같은 결심을 북한 정치·당 지도자들과 군사 책임자들이 했으리라고 믿을 만한 유력한 논거가 된다.

 ①남한에 상주하는 미국의 막강한 지상군과 핵무기의 존재 ②북한에 대한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연습의 되풀이 ③남한과의 경제력 및 기술수준 격차의 증대 ④76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거의 2배에 이르는 남한 군사비와 신무기 구입계획(91년 군사비는 남한 약 1백10억달러, 북한 48억달러). ⑤남한의 미국핵과 대응한 소련의 보호우산의 상실(90년 9월 남한과의 국교수립 결정을 통고하러 온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에게 북한 정부는 소련에 의존해온 ‘일부 무기’의 독자적 개발의사를 통고). ⑥공산주의 국가군 붕괴에 따르는 정치·군사적 고립화. ⑦재래식 군사력보다 싼 핵무기에 의존하는 필사적 국가보위 의지.

 이상과 같은 종합적 사태인식은 미국이 주장하는 이른바 ‘북한 핵무기 문제인만큼 미국의 가학적 세계 단독지배계획의 문제임을 아울러 밝혀준다. 미국이 북한과의 공존을 원한다면 북한은 핵무기 개발의지를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시설을 국제사찰에 공개한다고 해서 미국의 대북한 적대정책은 쉽게 수정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의 ’신세계질서‘는 오로지 항복하는 자만을 그 속에 포용하는 질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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