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샴푸병에 물을 담고
  • 장 미셀 쿠스토 (쿠스토협회 수석부회장) ()
  • 승인 2006.04.3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은 우리가 사는 곳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마실 물도 안락한 보금자리도 희망에 대한 개념조차도 없이 10억의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그곳에 태어난 것은 단지 우연이었으며 우리 누구나 그들이 될 수도 있었다.

 극단적인 빈곤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고 사위를 짓누르는 침묵뿐이다. 굶주린 이들은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살아남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아이티 인도 아프리카 브라질 같은 곳의 사람들은 변변찮은 끼니를 데울 땔감을 줍느라 시간을 보낸다. 눈은 공허하기만 하다.

 그들의 삶은 우리의 생활과 너무도 다르다. 만일 생활양식을 연구하는 행동과학자가 그 삶을 본다면 인류가 과연 모두 같은 종에 속하는 존재인가 하고 의문을 품을 것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 생산력, 뛰어난 운송수단 등은 그들에게는 전혀 낯선 것이다. 극빈자들에게는 교육이라는 것도 낯선 추상의 개념이다. 그들은 운명에 삶을 내맡기는 수동적 존재이다. 살인적 태풍, 홍수, 가뭄, 선진국에서 제공한 무기로 치러지는 내전 등이 차례로 그들을 괴롭힌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도시로 밀려가 빌딩사이나 고속도로 아래 공간을 메운다. 그들은 재난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찾으며 말없이 기다린다.

 화려한 세계에서 침묵은 흔한 일이 아니다. 복잡한 도시는 많은 목소리와 덜그덕거리는 기계 소리로 잠시도 조용하지 않다. 제각기 행복을 약속하는 여러 상품을 파느라 목소리를 높이는 광고업자로 인해 골치가 아플 지경이다.

 

해마다 1천3백만~1천8백만명이 餓死

 우리는 ‘어떤 물건을 어디에서 사는가’로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 부유함은 자신의 주변에 장벽을 둘러친다. 그 안에서의 삶이 달콤할수록 그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관심에서 멀어진다. 자기 능력껏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소비지향적이 된다.

 이 점은 만성적인 ‘남북문제’에서 들어난다. 세계자원연구소 소장인 제임스 스페드가 최근 낸 보고서는 인류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생생한 통계를 보여준다. 해마다 ‘남쪽’, 즉 열대지방의 개발도상국에서 1천3백만~1천8백만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간다. 그 대부분이 어린이이다. 배고픔은 ‘급성’이 아니라 계속된 빈곤에서 비롯되는 만성 질환이 되어 버렸다. 남쪽 주민의 1인당 평균 소득은 북쪽 선진국 국민 소득의 6%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개발도상국들이 안고 있는 외채는 90년 현재 1조3천억달러에 이른다. 이에 따라 해마다 2백억~3백억달러가 원리금 상환형태로 선진국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것은 건강한 사람이 환자로부터 수혈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누가 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것인가. 5조달러의 외채를 안고 있는 미국, 1인당 6천달러를 빚지고 있는 미국인이 다른 나라의 가난을 걱정해야 하는가.

 물론 수십년 동안 외국 원조 프로그램을 뒷받침해온 도덕적 주장이 있다. 가진 자는 못가진 자를 도와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말도 한다. 그러나 높은 빈곤율과 1천만명에 달하는 실업 사태를 겪고 있는 미국인에게 관용을 구하는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로 끝나고 있다.

 이제는 제임스 스페드가 제시한 통계를 발판으로 경제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현재 미국 경제를 유지하는 수출 중에서 3분의 1이 개발도상국으로 흘러간다. 90년에 미국은 개발도상국에 1천2백70억달러 이상을 수출했다. 개발도상국들은 지금 미국 은행에 1천1백억달러를 빚지고 있다. 미국에서 쓰는 원유의 4분의 1이 페르시아만에 있는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수입된다.

 경제학자들은 가난한 나라들이 더 가난해지면 부유한 나라들도 가난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도덕적 논리를 제쳐둔 이같은 이기적 주장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오늘날 우리 세계는 도덕적 지침보다 경제 논리의 목소리가 더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어떻게 경제 발전과 환경 보호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지구 전체의 문제도 아직 해결될 전망을 찾을 수 없다.

 곤궁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 가족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화려한 호텔에서 버려진 샴푸병에 물을 담던 소녀를 떠올린다. 그는 병들을 물로 가득 채우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그 소녀가 언젠가는 맑은 물을 떠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