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 · 과학‘결혼시대’ 선언
  • 성우제 기자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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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학+예술전에서 ‘맞선’세미나 열고 협력 가능성 모색



전시장에 들어서면 대형 멀티비전이 나온다. 관람객은 일렉트로닉극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화면에서 대전 엑스포의 시뮬레이션이며 예술필름, 컴퓨터로 복원한 미륵사지석탑 들을 먼저 보게된다. 이 극장을 지나면 각종 기기로 ‘무장’한 미술작품과 과학의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주는 첨단 과학기술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빛과 소리, 그리고 움직임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예술작품과, 관람객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인공현실’(virtual reality) 등의 과학기술이 한 전시장에서 어울린 것이다.

작품 · 관람객 소통시키는 테크놀로지 예술

과학과 예술의 결혼은 가능할 것인가. 11월5일부터 7일까지 한국종합전시장(KOEX)에서 열린 ‘과학+예술전’은 인견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분야가 맞선을 보고 그 협력 가능성을 모색한 자리였다.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과 한국예술인단체총연합이 주최한 이번 전시회에는 과학기술을 이용한 작품 21점, 컴퓨터그래픽스 작품 19점 등 미술작품과 4명의 과학자 및 16개 연구소에서 출품한 첨단과학 기술이 함께 선보였다.

지난해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 주최로 제1회 ‘과학+미술전’이 열린바 있으나 그것은 과학자들이 그린 회화 · 서예 작품들이 전시된 ‘원시적 단계’에 불과했다. 올해의 제2회 전시회는 산국의 대표적인 트크놀로지 예술들을 한 자리에 모아 그 위치를 점검하고, 첨단 과학기술이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첫번재 공간이었던 셈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첨단과학은 네가지 종류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었다. 3차원의 입체영상을 허공에 떠 있게 하는 홀로그램 작품이 그 제작과정과 함께 전시됨으로써 박물관 · 미술관에서의 응용 가능성을 탐색했고, 사물의 한 부분을 계속 확대해 그 아름다운 형체를 보여주는 ‘혼돈의 기하학’(프렉탈)도 선보였다. 이와 함께 영상 속에서 가상의 현실을 느끼게 하는 ‘인공현실’과 전화회선을 통해 예술작품을 먼 거리에서도 실물대로 받아볼 수 있게 하는 ‘종합정보통신망’(ISDN)이 소개되었다.

판화 풍경화 디자인 등 컴퓨터가 꾸미는 미술작품들이 총망라된 컴퓨터그래픽스 갤러리와 더불어 5~10평의 공간에 설치된 미술 작품들은 빛과 소리, 움직임이 있는 작품들이었다. ‘테크놀로지 아티스트’라는 직함을 가지고 활동하는 이 장르의 국내 작가는 50여명에 이른다. 그 중에서 작품활동이 비교적 활발한 작가 21명이 초대되었다.

이번 전시회의 큐레이터 申瑨植씨는 “제2회 과학+예술전은 테크놀로지 예술 전시회로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라며 “그동안 개인전과 소규모 그룹전을 통해 전시된 작품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30일부터 한달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젊은 모색 '92’전에 테크놀로지 예술 작품이 다섯점 이상 초대될 만큼 이 분야는 80년대 후반 이후 한국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현대라는 시대 공간에서 동시대인의 감수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또 가장 적절하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 예술이 테크놀로지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회화나 조소 작품을 제작하다가 이 분야로 방향을 선회한 30대 젊은 작가들이다.

사진과 조각 작품에서 이 분야로 옮겨왔다는 작가 文 州씨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텔레비전과 비디오 같은 과학기술을 이용해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비물질적인 요소지만 테크놀로지는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는 붓이나 물감과 같은 도구”라면서 테크놀로지 예술의 가장 큰 특징은 관람객과 작품이 서로 대화를 하게 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관람객이 참여해야만 완성되는 작품으로 대표적인 것은 공성훈씨가 출품한 <예술은 비싸다>와 신진식씨의 <건드려주세요>이다. 앞의 작품은 전광판처럼 생긴 물체에 “입장료를 넣으십시오”라는 자막이 나오고, 관람객이 돈을 넣으면 “이것이 예술입니까?”라는 물음이 나온다. 그 질문에 “예”라고 답을 하면 “돈을 더 내십시오”라는 문구가 나온다.

공성훈씨의 작품이 두 단계의 과정을 거쳐 ‘작품이 완성’된다면, 신진식씨의 작품은 관람객과 열번 정도의 대화를 가진다. 컴퓨터와 레이저디스크 플레이어, 그리고 모니터를 도구로 사용한 이 작품은 질문마다 여러개의 문항을 주고 맨 나중에 관객이 원하는 작품을 보여주는 형식을 취한다.

“과학 · 예술 접점 찾았다”

과학의 성과를 미술에 도입함으로써 시각예술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테크놀로지 예술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첨단과학과 만남으로써 새 국면을 맞게 되었다. 11월 말에 서울 그레이스백화점의 개관기념전으로 대규모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고, 내년에는 대전 엑스포에서 ‘테크노아트’전이 열린다. 최근 들어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테크놀로지 예술의 영역이 한층 넓어질 전망이다.

한편 이번 전시회에서 과학과 예술이 세미나를 열고 도록을 발간하는 등의 공동작업을 하였으나, 제2회 과학+예술전은 긴밀한 결합을 위한 소통이 다소 미흡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과학자와 예술가가 협력해 만든 작품은 한 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의 논리력과 예술의 상상력이 접점을 찾은 것만 해도 큰 성과”라는 金在權씨(조형예술학 박사)의 지적처럼 이번 전시회는 과학과 예술이라는 두 분야가 한 집에 들어가 살게 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학기술재단 尹永勛 사무총장은 “21세기에는 과학과 문화가 소통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이번 전시회의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협력의 영역을 확대해나가겠다. 테크놀로지 예술과 기업을 연결하는 방법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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