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때’ 벗기는 예술품 보존과학
  • 글·사진 김당 기자 ()
  • 승인 1992.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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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문화재 복원… 내시경 인고위성도 동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만고의 진리처럼 여겨온 이 격언은 대체로 옳지만 부분적으로는 그르다. 그 까닭인즉슨 이렇다.

 예술가의 창작 수명은 기껏 몇십년이지만 그 창작품은 예술인이 죽은 뒤에도 남아 세인들의 평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대체로 예술은 인생보다 길다. 그러나 그 창작품이 영원히 남는 것은 아니다. 그림인 경우 그 수명은 몇백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림의 수명을 말할 때 흔히 “천은 3백년, 종이는 5백년 간다”고 한다. 아무리 극찬을 해도 성이 차지 않을 걸작이라 해도 천에 그린 것이라면 고장 3백년쯤 지나면 한줌 먼지로 사라질 뿐이다.

 그렇지만 대개의 예술품들은 자연상태에서 누릴 수명보다는 더 명이 길다. 사람들이 인위적인 보존과 복원으로 될 수 있는 대로 창작품의 목숨을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인생에 견주어 별로 길지 않은 창작품의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것이 바로 이른바 보존과학이다. 아마도 보존과학이 없다면 인생과 예술을 논하는 것은 고만고만한 도토리 키재기일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짧고 예술 또한 짧다”라고나 할까. 아니면 “인생은 짧고 ‘복원된’예술은 길다”라고나 할까.

 지난해 12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繪書와 修復’전이라는 이색적인 저시회가 열렸다. 여느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어떤 한 작가의 작품, 주제나 소재, 시대 배경 등의 통일성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이 전시회의 주제는 다름아닌 ‘회복’이었다. 이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 중에서 특히 덧없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늙고 병든 것들을 골라 몇 달 간의 수술을 거친 끝에 원상복구한 것을 전시한 것이었다. 이중에는 미술관 창고에 오랫동안 처박힌 채로 재생불가능한 ‘쓰레기’ 취급을 받다가 대수술 끝에 환골탈태한 작품도 있었다.

 월북작가들인 김주경씨와 임군홍씨의 유화(27년작〈북악산이 보이는 풍경〉과 36년작〈여인좌상〉)가 그 대표적인 경우인데 수복전을 기획한 강정식씨(국립현대미술관 보존과학실장)에 따르면 “이 작품들은 캔버스 전체가 크게 산화된 데다 곰팡이까지 슬어 구멍이 뚫여 있고 물감층 일부는 심하게 균열되어 떠어져 나간 상태였는데 이번 수복작업으로 거의 ‘새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인생은 짧고 복원된 예술은 길다
 미술품 수복과정을 간략히 살펴보면 △소재조사 △클리닝 △수복시 회구층 보호를 위해 화면 위에 한지 바르기 △화면 요철상태의 평면유지 △균열되고 떨어져나간 곳에 대한 처치 △바탕재질인 기저재 보강 및 캔버스와 그라운드, 물감층의 고착력 강화를 위한 배접 △물감층의 균열 및 박락 부분 충진 △충진 부분 보채 △니스칠 △수복 전후 및 과정의 기록용 사진촬영 등의 순이다. 이중 다른 과정들이 주로 미술과 관련된 기술적인 조처과정인데 견주어 자연과학을 응용한 소재조사는 미술품 보존과학의 핵심 과정인 셈이다(아래 상자기사 참조).

 그러나 아무리 명이 질긴 재질의 미술품이라고 해도 근본은 물질인 만큼 그 작품을 구성하는 데 쓰인 조성물질 및 주위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아무리 ‘튼튼한’ 보존환경을 조성해준다 하더라도 세월의 무게를 견딜 불로장생의 작품은 없다. 따라서 보존과학적 수복이라는 것도 결국은 영구적인 보존과는 거리가 먼, 시쳇말로 “때를 빼고 광을 내” 곱게 늙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다.

 “천은 3백년 가고 종이는 5백년 간다”는 말은 유화와 한국화의 수명 비교에도 유용하다. 전문가들은 “유화의 경우 적어도 80년 주기로 수복처리를 해줘야 수명이 오래 간다”고 한다. 한편 한지는 그보다 보존력을 강하나 때가 타기 쉽기 때문에 때를 빼주는 처리가 필요하다. 물론 1백% 원상복구도 가능하지만 그럴 경우 작품 재질이 약해져 오히려 수명이 짧아지게 된다. 따라서 과도한 복원처리로 인한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 대체로 한국화의 보존과학적 수복에서는 “30년 묵은 때를 10년 묵은 때로 삭이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처럼 30년 묵은 때를 불려 걷어내 10년 묵은 때로 만드는 데에도 한달 이상이 걸린다.

 이점이 바로 화방과 고미술품 가게가 즐비한 ‘仁寺洞식 복원’과 다른 점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인사동 방식이 ‘원작자도 못 알아볼 정도로 감쪽같은 복원’이라면 보존과학적 방식은 ‘식별 가능한 복원’인 셈이다. 거기에다가 보존과학에서는 이른바 ‘복원 가능한 복원’을 수복의 또 다른 원칙으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유화 작품을 복원할 경우 보존과학에서는 수채화 물감으로 보채를 하는데, 이는 다시 수복 직전의 상태로 환원할 필요가 있을 때 작품을 훼손하지 않고 원상회복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원칙들에 의거하여 미술품 수복에서는 보존철학과 윤리 및 수복의 규범 등이 국제적으로 제정되어 채택되고 있다. 규범에서는 대상물을 손질하기 전의 상태와 사용된 재료의 성분, 수복 절차 등 구체적 기록을 남기도록 하고 있다. 이같은 미적·역사적 외형보존의 원칙은 모든 기록을 역사적 증거물로 남겨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수목 전 원상으로 환원할 수 있는 방법을 후손들이 택하고 그 미술품이 지닌 역사적·미술적·기술적 증거들을 연구하기 위해서이다.

 이번에 전시된 것들은 최초의 서양화로 알려져 있는 고희동 작품(1915년작)에서부터 60년대 작품까지이다. 9년에 걸친 복원 작업 끝에 수백년 묵은 세월의 더께를 걷고 마침내 지난해 공개된 바티칸 성시스틴성당의 미켈란젤로 벽화들에 견주면 작품 규모나 연대기적 차원에서 비교가 안되는 것들이다. 물론 백년이 채 안된 우리나라 서양화 역사를 감안한다면 본격적인 수복은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초기의 서양화 수용 및 전개과정을 보여주는 주요 작품들이 거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사라져버렸거나 현존하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원형보존이 잘 안된 것은 시대 상황과 보존처리에 대한 인식도가 낮은 탓”이라고 풀이한다.

 미술품 수복이 세월이 쌓은 그늘과 더께를 걷어내 ‘빛과 색’을 되살리는 작업이라면 문화재 및 유물의 복원은 거기에다가 세월이 삭힌 형체까지 오늘에 되살리는 작업이다. 수천년 묵은 때를 벗기는 이 온고지신의 대상물은 인골에서부터 거대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박물’에 이른다. 흔히 보존과학실은 병원에 비유되는데 미술품을 전문으로 한 보존과학실이 피부과나 성형외과라면 문화재 보존과학실은 내·외과적 수술을 포함한 종합병원인 셈이다.

‘환자’ 넘치는 문화재 종합병원
 국내에는 현재 몇 개의 크고 작은 문화재 병원이 있는데 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 보존 과학실, 박물관이 설치된 각 대학의 보존과학 연구실, 민간기관으로서는 유일한 삼성미술 문화재단(호암미술관) 보존과학실 등이다. 그러나 이들은 ‘병상’이나 ‘의료시설’ 또는 ‘의사 수효’(1~4명) 등의 규모에서 볼 때 개인병원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점에서 첨단기기를 포함해 1백가지에 이르는 각종 기자재와 23명의 ‘의사’를 거느린 문화재관리국 산하 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이하 보존과학실로 줄임)은 명실상부한 문화재 종합병원이라고 할 만하다.

 보존과학실(실장 김동현)에는 현재 정부공식 직제는 아니지만 효과적 ‘치료’를 위해 물리·금속, 화학·목재, 생물·지류, 분석등 4개의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4개실의 책임연구원(전문위원)이 종합병원의 각과 과장(전문의)이라면 연구원들은 수련의나 전공의인 셈이다. 이곳에서는 일반병원과 똑같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내부의 부식상태나 흠집(문양 글자 등)을 X선 및 내시경 촬영으로 찾아내 거기에 맞는 각종 ‘수술 도구’를 이용, 복원처리한다. 또 병원의 혈액검사에 해당하는 재질·성분검사로 환자의 나이(연대)를 측정하고 그 특성을 파악하기도 한다. 이곳에는 문화재연구소에서 직접 발굴하거나 각 대학 발굴팀에 용역해 발굴한 것, 박물관 등에서 보존처리를 위탁한 것 등과 개인 병원에서는 손 댈 수 없는 ‘중환자’나 ‘난치병 환자’들이 원모습을 되찾기 위해 모여 있다.

 보존과학실 ‘입원치료’ 기간은 짧게는 서너달에서부터 길게는 두서너해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수천년 묵은 상처가 완치될 수는 없다. 이곳에서는 문화재를 될 수 있는 대로 오래 보존시키는 ‘시술’을 우선하고 있다. 영구적 처리보다는 재복원이 필요할 때 지장받지 않을 처리를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테면 고성능 강력접착제의 등장으로 수백조각으로 파손된 골동품도 감쪽같이 붙일 수 있으나 보존과학에서는 이를 경계한다. 접착제를 쓰더라도 반드시 그것을 필요할 때 다시 녹일 수 있도록 처리한다. 물론 골동품상에서 아무리 감쪽같이 복원시켜 놓아도 X선등으로 과학적 판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보존과학에서는 ‘식별이 가능한 복원’을 원칙으로 삼고 있기에 그 방법 또한 다르다.

 안희균 학예연구관은 이를 ‘3m 원칙’이라고 표현한다. 즉 “골동품상에서는 상품적 가치라는 측면에서 문화재를 다루지만 보존과학에서는 학술적 가치·자료라는 측면에서 다루기 때문에 복원처리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보존과학에서는 대체로 3m 거리 내에서 보면 복원 여부를 식별할 수 있게 복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한편 안연구관은 “예전처럼 고고학이니 문화재 발굴이니 하면 우선 ‘맨삽으로 무덤 파는 것’을 연상하던 시절과는 이제 거리가 멀다”고 강조한다. 요즘은 이른바 ‘하이테크 보존과학’ 이라고 부를 만큼 문화재 복원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보존과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강대일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일본 후지노키고분 발굴의 경우 고분에서 출토된 석관을 뜯기 전에 2년 동안이나 뚜껑을 열었을 때 예상되는 문제점을 사전에 중점 연구했다고 한다. 마침내 석관에 가느다란 구멍을 뚫어 내시경으로 유물을 확인, 촬영해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만만의 준비를 갖춘 뒤에 개봉해 복원처리했다는 것이다. 또 일본에서는 문화재 발굴에 인공위성도 이용된다고 한다. 내시경이 나무의 이파리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것이라면, 인공위성은 숲을 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즉 나무만 보고 숲을 못보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거대 유물 등의 발굴에 인공위성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존과학은 아직 생소한 분야이다. 우선 발굴되어 보존처리를 기다리는 유물에 견주어 전문인력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 75년에 발굴한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마구류를 여태까지 복원처리중인 것에서 알수 있듯 환자는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의사수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그렇다 보니 보존처리 대기중 사망하는 환자, 제때에 처리를 받지 못해 불구가 된 환자 등이 생기기도 한다. 보존과학실에 따르면 전국에서 해마다 발굴되는 유물은 약3천~4천점이고 이미 발굴되어 보존처리를 기다리는 유물은 5만점이나 된다. 그런데 보존과학힐의 연간 보존처리 능력은 1천5백여점에 불과하고 전문 인력 또한 전국적으로 1백명 안팎이다.

 전문인력이 부족한 것은 전문학과가 설치된 대학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유사학과에 보존과학 과목이 설치된 곳은 목포대 고고학과뿐이고 그밖에 경주 한국관광대학 문화재과에는 보존과학개론이 설치된 정도이다. 보존과학이 연구방법은 물론 연구대상 또한 ‘잡동사니’여서 이른바 ‘잡학’이라고 부를 만큼 하나의 학문 대접을 못받은 영향도 크다. 그러나 일본만 해도 동경예술대학에 보존과학 전공 박사과정까지 설치돼 있고 미국에는 뉴욕대 등 몇 개 대학에 박사과정이 설치돼 있다. 다행인 것은 지난해 11월보존과학실을 중심으로 한국문화재보존과학학회(회장 이태녕 문화재위원)를 창립한 것인데 강대일 연구원은 이를 두고 “제 학문에 대해 비로소 보존과학이 시민권을 획득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문화재연구소는 그밖에도 ‘3차 진료기관’으로만 몰리는 환자를 분산 수용하기 위해 ‘2차 진료기관’을 내실화할 계획이다. 현재 지방에는 경주·부여·창원문화재가연구소와 목포해양유물보존처리소가 있지만 경주문화재연구소를 제외한 나머지는 보존처리가 미흡한 수준이다. 따라서 이들의 연구시설을 확충해 각 권역별 발굴유물을 가급적 해당 연구소에서 처리할 방침이다. 이는 불필요한 후송으로 인한 안전사고의 방지, 현장에서의 신속한 응급조처라는 측면 말고도 지방자치시대에도 걸맞는 방침일 것이다.

 그러나 보존과학의 성과와 달리 문화재를 둘러싼 보존환경은 갈수록 악화되는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환경오염은 갈수록 심각해지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산성비에 약한 대리석 재질의 유물이 많은 외국의 경우 환경오염으로 인한 문화재 훼손이 심각한데 우리나라의 탑 불상 등 노출문화재도 비 바람 먼지 진동 등으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또 정부의 정책의지가 전만 못하다는 불만도 큰데 “정부예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외국처럼 기업이 후원하는 민간문화재단을 중심으로 발굴 및 복원처리에 대한 지원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9년간에 걸친 성시스틴성당 미켈란젤로 작품의 복원과정을 지켜본 이탈리아인들은 “오히려 대작을 망쳐놓았다”고 푸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예술적 차원에서의 비평이라기보다는 돈과 첨단기술로 무장한 일본의 후원으로 복원된 데 따른 상처입은 자존심의 발로쯤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보존과학실은 수복 배경을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는 문화유산의 최종적인 상속자가 아니라 과도적 관리자의 처지에서 다음 세대에 고이 간직하여 전해야 될 사명을 지니고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같은 ‘역사적 사명’이 물론 미술품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포함한 모든 유·무형의 유산을 새롭게 증명하여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줄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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