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官軍 뒤흔든 이등병의 ‘양심선언’
  • 김종환 사회부차장 ()
  • 승인 1990.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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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기게 나돌던 민간사찰 풍문 확인

 국군의 날과 추석으로 이어진 연휴 마지막날 터진 尹錫洋 이병의 양심선언은 지금까지 막연히 추측하고 있던 국군보안사의 민간사찰에 대한 확증을 제시했기 때문에 충격의 파장이 그토록 큰 것이다.

 윤이병의 양심선언이 있은 지 나흘만인 10월8일 서울 중구 을지로2가 향린교회에서 열린 진상보고대회에 참석한 사찰대상자 등 범야권 인사들은 과거 정국이 위기에 이를 때마다 떠돌던 몇천명의 검거대상자 명단을 만들어놓았다는 풍문이 사실임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번에 폭로된 132명의 개인카드와 기인파일 4개 및 컴퓨터 디스켓 10매는 국가비상시 요인들을 적의 접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대민 사찰과는 무관하다는 국방부의 해명은 오히려 국민을 우롱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국방장관과 보안사령관의 경질이 발표된 직후 서울대 제적생의 중심으로 한 3백80여명이 보안사의 사찰대상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윤이병의 자료에 의해 폭로돼 큰 충격을 주었다.

 평민당 文東煥 의원의 개인파일에는 자택 주변의 담장높이 등 지형지물의 특징은 물론 도피로 및 예산 은신처로 金大中 총재의 자택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따라서 80년 5월 17일 자정을 기해 선포된 계엄령에 따른 대량검거의 악몽이 떠오른다는 것이 재야 인사들의 견행이다.

 집권당인 민자당의 사찰대상자는 주로 金永三 대표최고위원 등 민주계 인사들로, 이들은 3당합당이후에도 계속 추적당해온 것으로 나타나 있다. 개인카드 번호 325번인 徐淸源 의원에 대한 컴퓨터 디스켓의 주요동향에는 지난 3월15일까지의 활동이 나타나 있다.

  개인번호 295번인 盧式鉉 의원에 대한 파일은 사찰의 정치적 목적과 방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주목된다. 89년9월28일에 작성된 동향보고서에는 “대상자는 부민력 상임위원장으로 각종 노동관계 집회에 참석하여 반정부 강경발언으로 노동운동을 선동코 있어 결정적 범증 수집에 노력하겠음”이라는 담당자 이도원 상사의 분석의견이 적혀있다. 이보다 한달 뒤인 10월31일자 보고서는 사찰의 정치적 목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본명은 부산지역에서 노동운동에 적극 활동 타 최근 서울지역에서 신당창당 등에 관여하여 서울지역 출마설이 나오고 있는 바 관할 보안부대와 동시에 동향 관찰이 요구됨”이라는 데 이르러서는 왠만큼 고통을 겪은 야권인사들도 섬뜩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본석의견에서 사찰대상 인사를 ‘대상자’나 ‘본명’ 등으로 때에 따라 달리 일컬은 것은 보고서를 담당자가 아닌 사람이 대리작성한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서명난에 담당자의 서명과 군번도장이 번갈아 찍혀 있는 것으로도 뒷받침된다.

 애당초 폭로된 정보의 수준은 생각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대부분의 동향보고가 신문보도의 스크랩에 불과하다는 것이 자료를 직접 목격한 보도진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따라서 대민접촉이 많은 군의 한 당국자까지 “그런 수준의 파일이라면 우리도 갖고 있다”며 자료적 가치에 대한 회의를 대표할 정도였다.

 그러나 컴퓨터 디스켓에 수록된 사찰범위의 방대함과 사적인 대화 등의 치밀한 기록은 재야측에 큰 경계심과 반발을 불러일으켜 재야로 하여금 다시 강경투쟁으로 치닫게 만들었다. 80년대 중반 공안사건으로 복역한 이들에 대한 동향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궁금해서 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 사무국에 들린 한 민간협회원은 지방 노동계와 노동운동 관계자의 이름이 즐비한 것을 보고 “집권세력이 노동자·농민의 힘을 얼마나 중요시하는 줄 알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전민련의 金熙宅 사무처장은 향린교회 집회에서 “보안사가 민족민주운동 세력의 평소 활동을 증거 채집 목표로 사찰해왔음이 밝혀져 그동안 일각에서 가졌던 안일한 정세관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고 분석하면서 보안사의 해체 등을 촉구했다. 이날 모인 사찰대상 인사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범국민 규탄대회를 열기로 결의했다.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파문에 군 내부에서도 큰 충격을 받고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3년마다 있는 국군의 날 행사를 무난하게 치러 안도감에 쌓여 있던 제병지휘부 관계자는 “애써 깐 호박씨는 한입에 다 털어넣은 격”이라며 아쉬워 했다.

 지난 2월 현역 소장을 단장으로 한 행사계획단을 구성하여 준비단계부터 서울올림픽 행사 연출자와 흠향전문가, 미술대학 교수 등 민간인 전문가를 동원하여 ‘국민과 함께 하는 군대’의 이미지를 심기 위해 노력한 성과가 하루 아침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80년대를 정치개입으로 인한 국민의 불신 속에 온통 보내다시피한 군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군인복무규율 개정, 수해복구 지원, 군무회의 공개 등 눈에 보이는 이미지 개선 활동을 벌여왔다. 이와 아울러 내무반장제도 폐지와 부대 공개 등 실무부대 차원에서의 병영생활 민주화와 대민 신뢰 회복작업 등은 어느정도 궤도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윤이병의 양심선언이 처음 보도된 지난 5일만 해도 새로 출범한 합동참모본부 현판식과 아울러 민간인에 대한 계룡대 공개 행사가 열렸지만 사찰충격의 회오리에 휘말려 빛을 잃고 말았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지난 2월의 제4땅굴 발견 보도와 관련한 세계일보 편집국 간부 연행, 군복무중 가혹수사를 한 전직 보안사 장교를 최근 법정구속시킨 판사에 대한 전·현직 보안사 직원을 자칭하는 자들의 협박전화 소동 등이 군의 대민신뢰 회복 노력에 역행하는 움직임으로 비판받아왔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안사 해체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있는 데 대한 한 야전부대 지휘관은 “보안사가 없어지면 가장 좋아할 사람은 김일성이다. 음지에서 일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국가에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의 한 간부는 “제도개선이 근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형식상으로 국방부장관 직속이지만 사실상 대통령의 지휘를 받는 현행 체제를 유신 이전과 같이 3군의 독립 방첩부대로 개편하든지 합참의장의 지휘를 받도록 개편하여 군의 정치개입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번 국군의 날 서울시청앞 관장 사열대에 초대받아 장군들과 나란히 서서 시가행진을 차관한 모범운전사 鄭榮煥(50)씨는 “우리 국군이 너무나 용감하고 든든하게 생각되었지만 이번 일을 보고 당황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집권당 수뇌부에 있는 전직 보안사령관들은 자신의 전력이 역사의 그늘로 남지 않도록 정씨와 같은 보통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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