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더러 범죄인이라니"
  • 서명숙기자 ()
  • 승인 1991.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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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토론 파문… 국회 항의에 李明賢 교수‘유감'표시

 우리 사회에서 정치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정치에 관한 발언은 어디까지가‘건전한 비판'이고 어디서부터가 '무책임한 비난'인가. 방송 토론 프로그램에서 국회의원을 신랄하게 비판한 李明賢 교수(서울대?철학)의 발언을 둘러싼 한차례 소동은 우리 사회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교수는 지난 11월9일 KBS‘심야토론-돈 안 드는 선거 할 수 없나(3부)' 제1회분 생방송 시간에 문제의 발언을 했다. 방영 이틀 뒤 이 교수는 현역의원 ㅂ 씨로부터 "의원을 그렇게 매도할 수 있는가"라는 항의전화를 받았다. 반면 "속시원하다. 잘했다" "국민의 심정을 대변했다"라는 시청자로부터의 격려전화가 쉴새없이 걸려온 것도 이 무렵이었다 

 열흘만인 11월18일 오후 박준규 국회의장과 여야 총무는 국회의장 실에서 만나“국회의 권위를 훼손하고 국회의원을 모독한 이 교수에게 적절한 수준의 사과를 요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만일 이교수가 공식 사과하지 않는다면 고소는 물론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도 불사해야 한다는 강경론도 있었다. 다음날 오후 이 교수는 학교로 찾아온 국회 의사 국의 모계 장으로부터 국회 사무총장 명의의 항의서한을 전달받았다. 사태는 이교수가 11월23일 한국방송공사 사장과 국회의장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자기의 발언이 전체 국회의원을 매도하려는 의도에서 행해진 것이 아니라는 해명과 함께, 오해를 불러일으킨 데 유감을 표시하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도대체 이교수가 어떤 발언을 했길래 국회의원들은 펄펄 뛰고 일반 국민은‘극성그럽게' 공감을 표현했을까.

 우선 국회쪽이 분개했던“국민이 낸 세금을 긁어모아 번 돈…"(항의서한 내용)이란 대목을 녹화 테이플르 통해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그 사람들(정치인)이 돈을 쓰는데(선거 때) 그 돈을 어디 가서 가져오느냐 말이에요. 세금으로 들어갈 돈 안 내도록 해주고 긁어모아서 돈놀음한는 과정이란 말이에요. 5만원, 1만원 받았다고 그 사람 찍어주는데 결국 더 크게 빼앗기는 사람은 국민들이 당장 받는 돈 만원, 5만원 때문에 나중에 얼마나 고통받게 되는지를 멀리 내다보고 생각하는 능력이, 있는데도 작동시키지 않는지…."

 이교수는 또 다음 차례에서“이걸(돈 주고받기)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소위 돈의 흐름을 바로잡을 제도가 안 생기면 안된다 이 말이에요. 뿌리고 싶어도 못 뿌리게 그 검은 돈이 흘러가는 통로를 다 차단하는 거죠…"라고 돈의 흐름을 투명하게 감시할 수 있는 금융실명제 도입을 주장했다, 국회측이 항의서한에서 "무책임하고 저속한 욕설적 비판"이라고 지적한 이교수 발언의 초점이 "돈을 긁어모으는 정치인" 보다는 "선거 과정에서 돈거래를 차단할 금융실명제 도입"에 두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발언을 전후해 다른 토론자들도 선거제도와 관련“국회의원들이 듣기에 뼈아픈??지적을했다. 손봉숙 박사(정치학)는??기득권에 연연하는 현재의 정치인들에게만 선거법 협상을 맡기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는 격??이라고 말했고, 서경석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는??선거법을 위반한 후보자들을 고발해도 감찰이 거의 기각하고 이들 후보가 버젓이 당선되는 현실??을 개탄했다.

 선량들을 가장 격분시킨 이교수의“국회의원 전부를 범죄인시??(국회 항의서한)한 발언은 토론 맨 끝부분에서였다.??…그런데 법을 만들러 들어가는 사람들이 법(선거법)을 안 지킨, 말하자면 범법자들이란 말이에요. 감옥에 들어가 앉아 있을 사람들이 만든 법을 사람들이 존경하겠느냐는 말이에요. 참 큰일입니다.??대강 이런 요지였다. 그러나 이날 토론자였던 서경석씨는 이 발언에 대해??앞에 후보들의 선거법 위반문제가 집중 거론됐던 만큼, 그런 맥락에서 받아들여졌다??면서??표현에 다소 신중을 기했어야 했지만 국회의원 전체를 범죄인으로 몰아붙였다는 해석은 과민반응??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선량들의 ‘과민반응??은 지난 몇 년 간 형성된 국민의 정치 냉소주의와 그를 무책임하게 부추긴 언론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교수의 비판적 발언이 겨냥한 본질보다는 지엽말단적인 표현에 매달린 국회의 대응은 결코 어른스럽지 못했다는 게 증론이다.

 정치 냉소주의의 불식은 정치권이 ‘민심??을 정확히 읽고 근본적인 변화를 보임으로써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국회 항의서한

李明賢 敎授 貴下
後學의 養成을 위하여 불철주야 學問에 전념하고 계시는 데 대하여 깊은 敬意를 표하는 바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貴下께서 지난11月9日(土) 韓國放送公私(KBS 채널9)에서 生放送으로 放映된 ‘돈 안드는 選擧할 수 없나(選擧風土와 民族意識)??프로그램 對談中 國會議員들은 ??國民이 낸 稅金을 긁어 모아서 번 돈…??운운하며, 더욱 나아가서 ??監獄에 들어가야 할 犯罪人들이 모여 앉아서 法을 만들고 있다??는 등의 무책임한 發言을 하여 全體 國會議員들의 名譽를 毁損시키고 人權을 유린함으로써 民主發展을 저해한 행위에 대하여 國會議長님의 지시에 따라 깊은 遺憾의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同 放送이 사정에 濾過裝置없이 全國民들에게 生放送되고 또한 同 르로가 知識人들로부터 選好받고 있다는 사실에 問題의 深刻性이 더하고 있으며, 發言內容이 全國 國會議員을 犯罪人化하여 名譽를 실추시키고 더욱이 나아가 一殺國民으로 하여금 立法府에 대한 不信과 價値觀의 혼돈을 야기시켰다는 점에서 모든 의원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
 물론 政治人들의 잘못된 부분에 대한 指摘과 客觀的이고 바람직한 善意의 批判은 政治圈을 淨化시키고 더욱 나아가 民主發展에 보탬이 되어 바람직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國民을 선도해야 할 社會指導層 人士의, 특히 神聖한 敎職者의 무책임하고 저속한 욕설적 批判은 政治發展이나 國民和合을 위하여 반드시 是正되어야 한다고 믿어마지 않습니다.
 따라서 本人은 國會議長님을 비롯한 모든 議員님들의 뜻을 대리하여 貴下께서 말씀하신 內容이 全體 國會議員들을 不當하게 모독하고, 그 名譽를 실추시킨 사실에 대하여 다시 한번 깊은 遺憾의 뜻을 표하며, 放映되었던 對話內容 중 문제가 되는 부분을 錄取하여 書翰과 함께 同封하오니 檢討하시어서 실추된 全體 國會議員들의 名譽가 回復될 수 있도록 適宜 適切한 措置를 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貴下의 건승하심을 기원합니다.
國會 事務總長 朴 相 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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