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버찌의 계절
  • 고종석 ()
  • 승인 2006.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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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5월 28일 일요일 퐁텐 오 루아 거리의 구급 요원이었던 용감한 시민 루이즈에게.’ 이 헌사를 받은 루이즈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많지 않다. 그가 여자라는 것, 간호사였다는 것, 파리 노동자들의 마지막 바리케이드가 무너진 그 해 5월 28일 싸움의 현장에 있었다는 것 정도가 루이즈에 관해 알려진 사실의 전부다. 그가 퐁텐 오 루아 거리에서 베르사유군(프랑스 정부군)에게 사살되었는지, 근처의 페르 라셰즈 묘지로 끌려가 즉결 처분을 당했는지, 아니면 체포를 모면해 살아남았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날로부터 14년이 지난 뒤 쓰인 이 헌사를 통해서, 루이즈라는 평범한 이름은 파리 전역을 핏빛으로 물들인 1871년 5월의 뜨거운 상징이 되었다. 이 헌사를 쓴 이는 장 바티스트 클레망이라는 저널리스트였고, 그가 루이즈에게 바친 것은 <버찌의 계절>이라는 노래였다.

클레망은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과 파리 코뮌 이후의 제3공화국 시대를 사회주의자로 일관하며 살았다. 아마추어 시인이기도 했던 그는 지금부터 꼭 1백40년 전인 1866년 <버찌의 계절>이라는 시를 썼다. ‘로망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의 첫 두 연은 이렇다. ‘우리가 버찌의 계절을 노래하고/ 나이팅게일과 티티새가/ 즐겁게 지저귀며 잔치를 벌일 때/ 미인들의 머리는 열정으로 그득 차고/ 연인들의 가슴도 그러리라/ 우리가 버찌의 계절을 노래할 때/ 티티새의 휘파람도 더 아름다우리// 그러나 버찌의 계절은 너무나 짧아라/ 우리 둘이 함께 꿈꾸며/ 귀고리를 따는 그 계절/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랑의 버찌들이/ 핏방울로 이파리 위에 떨어지네/ 버찌의 계절은 너무나 짧아라/ 우리들이 산호빛 귀고리를 따는 계절은.’

둘째 연에서 핏방울과 산호를 버찌의 붉은 빛과 포개기는 하지만, 이 시는 그 바탕이 혁명의 노래라기보다 사랑 노래다. 이 시를 쓴 이듬해, 클레망은 망명지 브뤼셀에서 테너 가수이자 작곡가 앙투안 르나르를 만났다. 두 사람은 이내 의기투합했고, 르나르는 다시 그 이듬해인 1868년 클레망의 로망스에 선율을 붙였다. 이렇게 해서 근대 샹송의 수원지(水源地)이자 최고봉의 하나인 <버찌의 계절>이 태어났다. 그리고 세 해 뒤, 클레망은 파리의 5월 한복판에 서 있었다.

버찌처럼 검붉은 피로 뒤덮인 1871년 5월의 파리

세계 최초 프롤레타리아 정부라 할 파리 코뮌은 1871년 3월18일 파리 노동자들의 봉기에서 시작해 그 해 5월28일 벨빌 구역의 바리케이드가 무너지면서 막을 내렸다. 특히 베르사유의 정부군이 파리로 진입한 5월21일 이후 여드레 전투는 파리 거리를 버찌처럼 검붉은 피로 적셨다. 코뮌 기간과 그 직후 베르사유군이 학살한 파리 사람들은 가장 보수적인 통계에 따르더라도 2만명에 이르고, 이 숫자는 주장하는 사람들에 따라 무려 10만으로까지 늘어난다. 정부군은 코뮌이 무너진 뒤에도 대대적인 노동자 사냥에 나서서, 파리의 페인트공·연관공·기와공·제화공의 반 이상을 살해했다. 파리 코뮌의 대의원이었던 클레망은 코뮌 마지막날인 5월28일 퐁텐-오-루아 거리에서 루이즈를 만난 듯하다. 코뮌이 무너진 뒤 클레망은 런던으로 몸을 피해 살아남았고, 1885년 시집 <노래들>을 간행하며 거기 묶인 <버찌의 계절>을 루이즈에게 바쳤다.

그 뒤 <버찌의 계절>은 사랑 노래라기보다 혁명의 노래가 되었다. 아니, 사랑 노래이자 혁명의 노래가 되었다. 파리 코뮌의 또 다른 생존자인 외젠 포티에가 쓴 혁명 가요 <인터내셔널>과 함께, <버찌의 계절>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의 좌익 레지스탕스를 하나로 묶어 세운 연대의 노래이기도 했다. 티노 로시, 이브 몽탕, 쥘리에트 그레코, 나나 무스쿠리, 장 뤼미에르 등 100명이 넘는 가수들이 제 앨범에 이 노래를 삽입했다. 프랑수아 미테랑이 작고하고 이틀 뒤인 1996년 1월10일, 미국 소프라노 가수 바버라 헨드릭스는 파리 바스티유광장에서 <버찌의 계절>을 부르는 것으로 이 사회당 출신 대통령을 기렸다. 이 노래의  마지막 연은 이렇다. ‘그리워라 버찌의 계절/ 내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가/ 거기서 비롯되었고/ 행운의 여신 곁에서도/ 내 아픔이 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난 버찌의 계절을 사랑하리/ 내 가슴 속 추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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