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개편 놓고 유엔 ‘남북냉전’ 위기
  • 변창섭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06.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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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이사국에 3세계 국가 포함” 주장 거세



 전체 1백79개 유엔 회원국 중 약 70%를 차지하는 남반구의 개발도상국들이 북반구의 선진국을 상대로 탈냉전 이후의 신세계질서에서 그동안 무시돼온 자신의 정당한 몫을 찾겠다며 목청을 돋우고 있다. 이들이 노리는 목표는 총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과 현행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수를 늘려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대표를 내보내는 일 두가지다. 이 가운데 특히 무게가 실린 쪽은 상임이사국 개편문제이다.


‘선진국 이해’ 우선한 결정 많아


 현재 상임이사국 자리를 노리고 있는 대표적인 개발도상국은 브라질 나이지리아 이집트 인도 등이다. 이들은 기존의 상임이사국 제도가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2차 대전의 전승국들이 자신의 이해를 꾀하기 위해 만든 편의기구에 불과하다고 비난하고 있다. 따라서 탈냉전 후 민족갈등, 기아문제, 환경, 무기통제, 핵확산 문제 등 주로 제3세계 국가가 직면한 문제들을 자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려면 자신들에게 상임이사국 대표권이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현행 제도는 지역대표성이 없으므로 브라질이 남미를,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를, 인도는 서남아시아 지역을, 이집트는 중동지역을 각각 대표해 상임이사국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도상국들이 상임이사국에 참여해야 한다는 이같은 주장에 뒤질세라 이번 유엔총회에서 일본과 독일 정부도 강도높은 어조로 상임이사국 참여론을 외치고 있다.

 일본은 유엔 창설 50주년이 되는 오는 95년까지는 반드시 상임이사국에 합류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하고 있다. 와타나베 미치오 외무장관은 지난달 22일 총회연설을 통해 이같은 입장을 다시 한번 분명히했다. 일본보다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독일의 킨켈 외무장관은 23일 유엔 연설에서 “현재로선 상임이사국 자리를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의사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안보리 확대개편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되면 상임이사국에 가입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처럼 일본과 독일은 비롯한 여러나라가 상임이사국 지위를 요구하게 된 까닭은 1945년 유엔이 창설된 이후 크게 변화한 시대적 요청 때문이다. 탈냉전 후 분출하고 있는 엄청난 지구촌 문제들을 유엔이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상임이사국 제도를 포함한 현행 안보리 체제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상임이사국 중심의 현행 안보리 운영체제가 지닌 문제점이 더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유엔 안보리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5대 상임이사국과 10개 비상임이사국을 합해 15개국으로 구성돼 있다. 비상임이사국은 총회에서 해마다 5개국씩 선출되며 임기는 2년이다. 걸프전 때나 이라크에 대한 강제 핵사찰에서 보듯이 유엔 안보리는 때에 따라 회원국들에 강제력을 지니는 결의안을 채택한다. 그러나 그 결의안이 채택되려면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상임이사국의 힘은 거부권에서 나오기 때문에 남용될 경우 심각한 폐단을 낳는다. 냉전시절 미국은 주로 이스라엘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옛 소련은 자본주의 세력의 팽창을 막기 위해 거부권을 남용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탈냉전 이후 거부권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적은 한번도 없다. 그러나 거부권을 담보로 한 상임이사국,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이사국의 안보리 운영방식은 많은 제3세계 국가들에 커다란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예컨대 굶주림으로 하루에도 숱한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소말리아의 기아 참상에 대해 서방측은 이해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얼마전까지도 이를 등한시했다.

 그러나 유고사태나 이라크 강제핵사찰 또는 리비아 제재문제를 두고 서방측은 연일 안보리를 소집해 결의안을 채택하느라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만큼 자국의 이해와 밀접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같은 점을 들어 외교전문가들은 거부권이라는 초국가적 권한을 쥔 상임이사국들이 지구촌 문제를 자국의 이해차원에서 다루는 경향이 크게 늘고 있다고 비판한다. 유엔문제 전문가인 시드하스 두베씨는 최근 <뉴욕타임스>지에 쓴 기고문에서 “제3세계의 적대감이 존재하는 한 지구상에서 항구적인 평화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본·독일은 2~3년내 상임이사국 될 듯

 오늘날의 상임이사국 제도에 바탕한 유엔안보리 개념은 19세기의 이른바 ‘유럽 협조체제’(Concert of Europe)와 비슷하다. 나폴레옹 시대를 마감하고 1815년 빈회의에서 유럽의 세력균형을 회복시킨 영국 프러시아 러시아 오스트리아 4대 강국은 상호협의를 통해 유럽의 모든 영토분쟁을 관할하기 위한 협조체제를 구축했다.

 이같은 체제는 19세기 후반 독일통일로 세력균형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면서 점차 그 기능을 상실했다. 당시 유럽사회의 산업화와 도시화, 민족주의의 발흥, 중산층의 정치적 참여와 저변계층의 변혁요구에 따른 대변화의 물결은 몇몇 강대국이 만든 협조체제로 대처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19세기의 유럽 협조체제와 오늘의 유엔체제를 단순비교할 순 없으나 탈냉전 후 세계대변화의 물결은 분명 47년의 연륜을 가진 유엔, 특히 안보리체제에 일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때 제2의 유럽 협조체제가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지금 한창 거론되고 있는 상임이사국 제도의 개편론도 이같은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유엔대사를 지낸 사회과학원의 金瓊元 박사는 “앞으로 유엔 안보리는 19세기의 유럽 협조체제처럼 당분간은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보리가 직면할 더욱 근본적인 문제들 대부분이 제3세계국가들의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한 기고문에서 뼈있는 지적을 했다.

 현행 안보리의 문제점과 관련해 영국의 권위있는 시사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호에서 “유엔 안보리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혹평했다. 이 잡지는 “5대 상임이사국 가운데 주요 결정은 미국 영국 프랑스가 독점해서 내리고 있다. 러시아는 나라 꼴이 말이 아니고 중국은 재정에만 신경쓰고 있다. 이는 무한정 지속될 수 없는 불합리한 체제이다” 라고 현재와 같은 상임이사국 체제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상임이사국 체제의 개편론과 관련해 5대이사국은 “부러지지 않았으면 고치려 하지 말라”는 격언을 앵무새처럼 외치면서 어떠한 변화도 바라지 않는 눈치다. 그러나 이 문제에 큰 입김을 발휘해온 미국은 묵시적으로나마 일본과 독일의 가입의사를 지지하고 있다. 로렌스 이글버거 국무장관 대리는 최근 “현행 상임이사국 체제를 개편하자는 주장에 동정은 가지만 사안이 복잡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고 말해 당장은 개편이 힘들 것임을 예고했다. 외교관측통들은 미국의 묵시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일본과 독일의 가입노력이 빠르면 2~3년 안에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상임이사국에 거부권 주지 말자는 주장도

 현재 이 문제를 둘러싸고 세가지 대안이 거론되고 있다. 하나는 지금처럼 상임이사국의 수를 그대로 두고 일본을 가입시키되, 영국과 프랑스의 두 의석을 유럽공동체(EC)라는 이름의 단일의석으로 통일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독일이 상임이사국에 들어올 구실도 없어진다. 영국 프랑스 독일이 순번제로 상임이사국 대표권을 맡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안은 영국이나 프랑스가 난색을 보이고 있는 데다 유럽공동체 통합 노력이 순탄치 않은 상황이어서 현실적으로 채택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른 대안은 브라질이 제창한 것으로 현재의 상임이사국의 수를 3~4석 더 늘리되, 새로 가입하는 이사국들에 거부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안이 실현되려면 현재 10개 비상임이사국 자리를 20개로 늘려야 하는 문제가 있어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다. 마지막 대안은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제도를 없애고 모든 주요 결정을 전체회원국 3분의 2의 다수결로 처리하는 것이다. 이 경우 자신의 이해에 어긋나는 결정이 나올 수도 있으므로 상임이사국이 거부할 것은 뻔하다.

 어떤 안을 채택하든 현재의 상임이사국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유엔헌장을 고쳐야 하고 여기에는 상임이사국의 동의가 절대로 필요하다. 미국은 유엔헌장을 고치면 유엔조직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개편이 불가피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아무튼 유엔 안보리는 냉전시절 소외세력인 대다수 제3세계국들과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일본·독일의 입김 때문에 조정국면을 맞았다. 또한 그 과정에서 원만한 타협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동서냉전의 재판이 될 ‘남북냉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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