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팔리는 순수문학 풍요냐, 위기냐
  • 민음사 이영준 주간(문학 평론가) ()
  • 승인 1994.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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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작가에 펜레터…“창조성 약화” 비판도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문학 왕국’임에 틀림없다. 다음의 수치는 그같은 사실을 단적으로 대변한다. △최인훈 장편소설 ≪화두≫ (민음사) : 출간 두달 만에 20만부 판매. △신경숙 장편소설 ≪깊은 슬픔≫ (문학동네) : 출간 두달 만에 40만부 판매. △최영미 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작과비평사) : 출간 두달 반 만에 10만부 판매. △이인화 장편소설 ≪영원한 제국≫ (세계사) : 출간 1년 만에 60만부 판매.(이상 6월1일 현재)

 위에 열거된 문학 작품들은 앞으로 계속 ‘신기록’을 세워나갈 것으로 보인다. 도서출판 문학동네의 김석기 편집장은 “점차 지방 주문이 늘어가고 있다. ≪깊은 슬픔≫의 열기가 서울에서 지방으로 확산돼가는 것으로 보인다. 지방 주문이 늘어나는 것은 베스트 셀러가 장기화한다는 것을 뜻한다”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말해 최근 몇몇 작가와 작품에 대한 독자의 관심도 혹은 구매 욕구는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 있다. 인기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에게 쏟아지는 팬들의 아우성, 농구장이나 인기 가수 라이브 무대에서 드러나는 ‘오빠 부대’의 열광은 이제 문학시장에도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물론 문학적 기호와 오락적 기호의 수준이 비교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은 거의 흡사하다. 인기 스타에게 팬 레터가 쏟아지듯, 최영미나 신경숙도 매일매일 수십 통의 편지와 각양각색의 선물을 받는다. 출판사로 오는 독자 엽서는 평균 백통 정도이다. 이들 엽서는 거의 모두 작가에 대한 진한 애정, 작품을 통해 얻은 감동 등을 적고 있다.

  특히 시집이 하루에 6천5백85부가 팔려나간 기록을 세운 최영미의 경우 가히 ‘최진실 신드롬’과 비견될 만큼 남성 독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물론 그 두 현상 사이의 문화적 층위는 다르다).

‘문학 왕국’의 배후는 공허
 한 권의 시집이 10만부를 돌파한 기록은 두 번 더 있었다. 서정윤의 ≪홀로서기≫와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은 각각 거의 30만부를 돌파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10대들의 감성을 뒤흔든 ≪홀로서기≫의 키치적 감성도 아니고, 주부들의 열광적 지지를 얻은 ≪접시꽃 당신≫의 애절한 사랑 노래도 아닌,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도발적’ 시어들이 각광받는 그 이유, 아울러 이인화가 ‘X세대의 영웅’으로 지칭되고 그의 이론적 무기인 패스티시(혼성모방)가 신문 기사에 의해 당당하게 하나의 문학적 기법으로 인정받는 그 세태, 전통적 소설 구조에서 한참 비켜나 있으며 매우 긴장되고 차분한 글읽기를 요구하는 최인훈의 ≪화두≫가 나름의 독자를 끌어당기는 요인, 한 여자와 두 남자 사이의 ‘진부한’ 사랑 이야기, 그것도 여자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나는 ‘통속적’ 결말을 보여주는 ≪깊은 슬픔≫이 도처에 눈물 젖은 손수건을 양산해 내고 있는 이 현상의 배후는, 무엇인지 모르게 공허하고 쓸쓸한 구석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이 문학 왕국임에 틀림없다’고 한 거의 폭력적인 단정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들 네 작품이 가지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 작품들에 대해 평단이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윤지관 교수(덕성여대 · 영문과)는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서 ≪화두≫와 ≪깊은 슬픔≫, 이청준의 ≪흰옷≫과 송기원의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이들 작품에 매우 신랄한 검증을 요구하고 있다. 김윤식 교수(서울대 · 국문과)도 ≪세계의 문학≫ 여름호에서 ‘유죄 판결과 결백 증명의 내력’이라는 다소 어려운 제목으로 ≪화두≫를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아마도 작가 최인훈을 뜻하는 ‘주’와 아마도 자신을 지칭하는 것일 ‘객’ 사이의 대화체로 꾸며져 있어 ≪화두≫에 대한 또 하나의 소설, 즉 ‘메타 픽션’적 요소를 갖춘, 상당히 난해한 평론인 듯싶다.

 이 작품들이 누리는 인기의 수준에 비해 평단이 전폭적 찬사 아니면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의 인기와 평단의 비평은 반비례하는 것인가. 그것이 한국적 문단의 한 특수성인가.

 문학 작품의 베스트 셀러화와 평론의 활성화가 일치하지 않는, 불행한 불일치의 배후에는 바로 최근 문단의 가장 ‘뜨거운 감자’, 즉 본격 문학 논쟁이 쟁점으로 도사리고 있다. 이는 ≪깊은 슬픔≫이 많이 나가는 것이, 김한길의 ≪여자의 남자≫가 많이 팔리는 것보다는 바람직한 현상 아니냐 하는 비교우위론적 시각을 넘어서는 더 근원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그럴싸하게 채워지는 교양의 욕구”
 위에 거론한 몇몇 작품의 폭발적 구매 사태는 다 나름의 이유들이 있다. ≪창작과 비평≫ 이시영 주간(시인)은 “≪서른…≫은 기존의 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며 정직한 고백을 하고 있다. 이 정직성이 독자에게 시원하다는 감정을 주고 있다. 이전 서정시의 수동적 그리움을 깨면서, 시가 금기시하는 비속어를 여성이 강하게 내뱉었다는 측면도 많다”라고 진단한다. 문학동네의 윤석기 편집장은 “≪깊은 슬픔≫이 독자들의 마음에 있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냈고,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독자를 끌어들이는 미려한 문체로 형상화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라고 진단한다. ≪작가세계≫의 정은숙 편집장은 “일단 이인화 자신이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그의 작품을 읽고 나면 뭔가 배운 것 같고 그럴싸하게 욕망이 충족된 것 같은, 다시 말해 ‘교양의 욕구’가 채워지는 부분이 있다. 요즘 독자들이야 흥미는 영화나 비디오에서 찾고, 감동 차원에서 말하자면 살아 있는 것의 감동이 더 커다란 것 아니냐”라고 말한다.

 그러나 최영미 시집은 민족문학작가회의 합평회에서 ‘병적 감수성’ ‘성적 도착증’이라는 말까지 동원되는 매서운 질책을 받았고, 이런 작품을 어떻게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 할 수 있느냐는 혹평도 들었다.

 이에 대해 이시영 주간은 “과거 80년대식 상투성을 고수하는 한 민족 문학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문학은 어떤 의미에서는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것이 주요한 기능의 하나이다. 따라서 《서른…》은 민족 문학의 자기 쇄신에 크게 공헌했다고 본다. 마치 정답이 있어서 모범 답안 쓰듯 하는 것이 문학 행위는 아니지 않은가”라고 말한다. 이주간은 또한 “창비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당대의 창조적 역량을 폭넓게 수용하겠다”라고도 밝혔다. 이는 《창작과 비평》이 기존 ‘굴레’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변화를 시사하는 말로 들린다.

 사실《창작과 비평》의 노선 변화는 본격 문학 작품이 베스트 셀러가 되면서, 오히려 기존 대중 문학 작품보다 많이 팔려나가거나 버금가게 팔리는 현상, 그러면서 본격 문학 작품이 대중성을 획득하게 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시영 주간은 “현재 문학계는 근본적으로 상업주의 대 본격 문학의 대결 구도이다. 퍼스널 컴퓨터의 대량 공급으로 소설 공장이 차려지는 것도 멀지 않은 일이다. 이런 현상 속에서 어떻게 ‘남한의 국민 문학’으로 자리잡느냐 하는 것이 커다란 숙제이다. 민족 문학으로 좁혀서 말한다면 자기 조정을 해나가야 하고, 뭔가 창조적 돌파구를 열어나가야 한다”라고 말하는데, 여기서는 이른바 대중 문화 시대에 본격 문학이 설 자리에 대한 고통이 느껴지면서도, 시장성과 품위 사이에 놓여 있는 본격 문학의 갈등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어떤 것이 본격 문학이고 어떤 것이 대중 문학이라고 명확하게, 단번에 잘라주는 잣대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글쓰기와 책읽기의 전반적 풍토, 국민적 정서와 문화적 토대의 성숙성 같은 아주 애매한 기준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우국의 바다》를 완간한 작가 김원우(《작가세계》편집위원)는 이른바 본격 문학의 밀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베스트 셀러의 층위가 다양해진 것은 현대 사회의 기능상 바람직한 측면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문학의 순전성이 있으니까 베스트 셀러가 후대에도 남을 수 있는 고급 문학이라기에는 문제가 있다. 문학 작품의 종수와 권수가 늘어남에도, 질적 향상을 담보하고 있느냐 하면, 부정적이다. 박태원이나 채만식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그 열도, 당대를 분석하는 열기 같은 게 많이 흩어졌다고 생각한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소설들이 질적인 담보를 하고 있는지 거시적 · 통시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분명 있다. 정말 제대로 나가고 있는지 따져볼 일이다.”

“치열한 작가정신 엷어지고 거칠어졌다”
 여기서 한 가지 정리할 수 있는 사실은 문학시장이 엄청나게 풍요하게 보이는데도 기실은 더 척박해졌다는 사실, 새로운 위기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원우씨의 말을 더 들어보기로 한다.

 “최근 한국 문학시장을 둘러싼 여러 현상은 분명 소모적 대중 사회로 나가는 과도기로서의 못된 양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가 자기 몸을 그런 사회적 욕구에 던져 버리는 것은 경계해야 마땅할 일이다. 물량 공세에 현혹돼 작가 자신도 진정성과 순정성이 없이 자기를 큰 물결에 내맡긴다. 문학 행위는 고도의 사유 행위라는 기본 강령을 무시하면서 글만 찍어 내는 신으로 사고와 형태가 흘러간다. 구체성도 없고 정확한 소명의식도 없다. 치열한 작가 정신이 엷어지고 점점 거칠어지고 있는 것이다.”

광고에 취약한 구조가 획일적 문화 만들어
 현대 사회에서 문학의 위기는 작가와 출판사 형태의 결과물만은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독자, 그리고 문학을 담당하는 언론 형태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민음사 이영준 주간(문학 평론가)의 다음 주장은 새겨 볼 가치가 있다.

 “언론의 베스트 셀러 목록을 보면, 작자 미상이고 말초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근사한 글귀만 여기저기서 골라 짜깁기해 놓은 시집들이 버젓이 올라 있다. 이것은 그 언론사가 그 시집을 베스트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들을 사보세요’ 하고 언론이 권장하는 것이다. 명백한 직무유기이다. 우리나라는 서점이 베스트 셀러를 선정하는 주체이고, 그것을 언론이 그대로 옮긴다. 그러나 외국은 게재지 자체가 주체가 된다. 이러다 보니 대학 문학개론 시간에 학생들이 ‘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영준 주간이 보기에는 한국 독자만큼 광고에 약한 독자는 없다. 그는 교보문고 직원들의 말을 빌려, 미국이나 일본 독자들은 ‘누구의 어떤 작품 없느냐’고 문의하지만, 한국에서는 ‘요즘 어떤 책이 제일 잘 나가냐’는 문의가 제일 많다고 전한다. 그는 “한국 독자들은 경제 드라이브 정책으로 민생고 해결에만 신경써 오다 보니,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해진 지금에는 문화적 · 정신적 가치에 뒤지지 않으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라고 분석한다. “광고를 대량으로 때린 특정 작품에 독자가 우루루 몰려가는 현상이 빚어지고, 광고에 취약한 구조가 획일적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영준 주간은 ‘사회 모든 것에 다 책임져야 하는 전인적 지식인관’ ‘대중 문화의 발흥을 나라 망할 것처럼 걱정하는 엄숙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봉건제를 지나오며 형성된 또 다른 전체주의적 시각이라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대중 소설은 취미와 오락·영역에 그대로 두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그런 것이다.

 문학과지성사 김병익 대표는 “베스트 셀러는 그 사회가 갖는 잠재적 욕망이다”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베스트 셀러는 그 시대의 무엇을 진실이라고 믿는가, 꿈을 어디서 찾는가 하는 사회심리학적 혹은 문학 · 문화적 분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근대 문학 이후 대중적 집단의식과 엘리트의 진지한 의식이 행복하게 일치한 기억은 이광수와 조세희의 경우를 제외하면 별로 없다. 그는 그래서 “문학에서 창작 · 창조 개념이 약화되고, 생산 · 제작 개념이 강화되고 있다. 독자가 과연 무엇을 원하느냐 하는 시장 조사 다음에 창작이 이뤄지는 경향이 짙다”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베스트 셀러에 대해 논의할 때 문학성이란 잣대는 자취를 감추고, 비문학적 요소에 의해 규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 문학의 ‘지금 여기’가 미국식으로 평균적인 사람들의 건강한 욕망이나 의식을 대변하는 대중 문화로 가는지, 그것을 생략하고 소비 지향 문화로 가는지는 불확실하다. 그 결과에 따라 ‘지금’이 풍요인지 위기인지 구분될 것이다. 행복한 글쓰기와 책읽기의 층위는, 문학 작품에 대한 좋음과 나쁨의 확실한 구별을 담보로 하는 것이 분명한 이상.
趙瑢□ 기자

 “베스트 셀러는 그 사회가 갖는 잠재적 욕망이다. 문학에서 창작·창조 개념이 약화된 반면 생산 개념이 강화되고 있다. 독자가 과연 무엇을 원하느냐 하는 시장 조사 다음에 창작이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베스트 셀러를 논의할 때 문학성이란 잣대는 자취를 감추고, 비문학적 요소에 의해 규정되는 경우가 많다.”
문학과지성사 김병익 대표(문학 평론가)

 “마치 정답이 있어서 모범 답안 쓰듯 하는 것이 문학 행위는 아니지 않은가. 현재 문학계는 근본적으로 상업주의 대 본격 문학의 대결구도이다. 컴퓨터의 대량 공급으로 소설 공장이 차려지는 것도 멀지 않은 일이다. 이런 현상 속에서 어떻게 ‘남한의 국민 문학’으로 자리잡느냐 하는 것이 큰 숙제이다.”
창작과비평사 이시영 주간(시인)

 “베스트 셀러의 층위가 다양해진 것은 현대 사회의 기능상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베스트 셀러에 문학의 순정성이 있으니까 후대에도 남을 수 있는 고급 문학이라기에는 문제가 있다. 문학 작품의 종수가 늘어나지만 질적 향상을 담보했느냐 하면, 부정적이다. 정말 제대로 나가고 있는지 따져볼 일이다.”
소설가 김원우 (≪작가세계≫ 편집위원)

 “언론의 베스트 셀러 목록을 보면, 말초적인 감수성을 자극하는 근사한 글귀만 여기저기서 골라 짜깁기해 놓은 시집들이 버젓이 올라 있다. 언론사는 그 시집을 ‘베스트’라고 인정하고, 사서 보라고 권장한다. 서점들이 베스트 셀러를 선정하는 주체이고, 그것을 언론이 그대로 옮긴다.”
민음사 이영준 주간(문학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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