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파업의 상징, 백지연
  • 편집국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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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홍보효과”, 회사 “원대복귀 없다”



 파업에 돌입하여 3주를 넘기고 있는 MBC의 노조원 가운데 白智娟(28) 기자만큼 격려와 회유의 집중세례를 받고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백씨가 지난 2일 <MBC 뉴스데스크>의 앵커석에서 사라진 직후부터 그의 거취문제는 MBC 파업의 한 상징적 의미가 되고 있다.

 “전체 노조원 8백여명이 합쳐도 내지 못할 선전홍보 효과를 백지연 한사람이 내고 있다”는 한 노조간부의 말처럼 일반 시청자들에게 ‘백지연 실종’은 ‘MBC, 파업중’이라는 사실을 가장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 88년 파업 때 보여준 호응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시청자들의 관심이 시들어버린 요즈음에도 ‘9시 뉴스에 왜 엄기영씨만 나오느냐’는 항의성 문의전화가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에 가입은 되어 있으나 적극 참여는 해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백씨는 요즘 노조측으로부터는 따뜻한 위로를, 회사측으로부터는 ‘복귀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한 노조원에 따르면 “백지연씨는 하루빨리 파업이 풀려 복귀할 것을 바라고 있으나 파업이 풀려도 뉴스데스크에 기용될 전망은 거의 없으며 이 때문에 노조 사무실에 나와 눈물을 흘리는 일도 있다”고 전했다.

 백지연씨는 88년 아나운서로 공채되어 입사한 후 수습딱지가 떨어지기도 전에 <MBC 뉴스데스크>에 기용되어 여성앵커로서는 가장 오랫동안 데스크를 지켜왔다.  뉴스의 속성인 ‘차가움’에 어울리는 외모와 발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강한 승부근성이 그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실제로 백씨는 ‘한국 최초의 본격 여성 앵커가 꿈’이라는 소망을 자주 피력해 왔다.  단순한 뉴스전달자가 아니라 생산자로서도 참여하고 싶다는 ‘야심’과 역량이 보도국 간부들에게 인정되어 아나운서에서 보도국 국제부 기자로 발령이 난 것이 지난 91년 6월이었다.

 회사측으로서는 ‘4년 동안 앵커석에 앉혔다’는 사실과 이 전보발령을 일종의 특혜로 여기고 있는 만큼 이 특혜의 수혜자가 ‘결정적인 시기에 회사를 배반했다’고 인식해 백씨에게 원대복귀를 종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백씨가 뉴스데스크를 이탈한 지 보름째 되는 날까지 복귀하지 않자 회사측은 “파업이 풀린 뒤에도 백지연을 뉴스데스크에 기용하지 않겠다”고 공식 통보했다.

 회사측의 백지연 재기용 불허방침이 알려지고 ‘앵커석을 박탈할 뿐 아니라 아나운서실로 도로 보내버린 후 프로그램을 일체 맡기지 않을 것 같다’는 예측까지 나오자 백지연씨의 문제를 놓고 노조원들 사이에는 이색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노사대립 속에서 한 개인이 어느 만큼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가’가 이 논쟁의 주제이다.

 

“아나운서가 노조활동 더 불리”

 한 노조원은 “공정방송이라는 대의명분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노조원의 공감대가 그 이전의 파업 때에 비해 매우 약하고, 정치부 선배기자들의 경우 기사송고까지는 않더라도 전원 출입처에 나가는 등 비공식적으로 회사측에 협조하는 마당에 백지연 한사람만 볼모로 잡고 있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회사측만 백지연에게 압력을 가한 것이 아니라 노조측에서도 압력을 가한 것으로 안다.  선택은 본인이 한 것이지만 평소의 성향으로 보아 백지연이 노조에 몰려 할 수 없이 포기했다는 혐의가 짙다”며 “노조는 명분을 앞세워 백지연이라는 개인을 희생시켜서는 안될 것이며, 회사측은 파업후 원대복귀할 경우 재기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지연씨는 방송출연을 중단 한 이래 ‘민주투사로 부각되는 것은 내가 원치 않는 일’이라며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백지연씨 이외에도 MBC-TV 뉴스에서 사라진 아나운서는 <MBC 뉴스데스크>의 주말 앵커인 김은주씨와 <MBC 저녁뉴스>의 손석희씨, 아침뉴스인 <MBC 뉴스와이드>의 정혜정씨, <MBC 마감뉴스>의 성경환씨이며 <MBC 마감뉴스>는 프로그램 자체가 중단되었다.  회사측은 이들 4명의 아나운서에 대해서도 ‘파업 후에도 재기용 불허’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손석희씨는 “아나운서의 경우 노조활동에서 일반사원과 달리 매우 불리한 입장에 있다.  프로그램을 맡기느냐, 또는 박탈하느냐는 권한이 완전히 회사측에 있고 프로그램 없는 아나운서는 허수아비와 다름없어 보복이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자아나운서는 남자아나운서보다 수명이 짧기 때문에 백지연씨 등의 희생은 그만큼 값지고 큰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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