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에 3차원상 재현하는 홀로그램
  • 손정영(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
  • 승인 1992.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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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3차원 세계에 살고 있다. 인간의 눈은 2차원의 빛을 감지할 뿐이지만 두 눈의 시차 작용, 물체의 명암, 뇌에 기록된 사전 정보의 도움으로 3차원을 인식한다. 인간이 눈을 통해 얻는 정보는 오감을 통해 얻는 정보의 약 80%를 차지한다.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라는 말을 시각 인식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은 유사 이래 자신이 경험하는 세계에 대한 사실적이고 생생한 기록과 표현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수많은 그림과 조각을 남겨왔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실체를 사실 그대로 표현했다고는 볼 수 없다. 19세기 최대 발명품 가운데 하나인 사진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맺히는 물체의 상을 기록하는 것이므로 가장 사실적인 기록 방법이지만 여전히 보는 방향에서 주어지는 피사체의 상만을 기록할 수 있는 평면적 표현 방법일 뿐이다. 인간의 시각은 3차원 물체를 인식하고 기록하는 데 가장 뛰어나지만 오래 보관하거나 재생하지는 못한다. 그밖에 빛을 편광 성질을 이용하는 입체 영화나 3차원 물체의 각 체적 요소를 눈의 잔상을 이용해 고속투사·영상부호화하는 3차원 표시 방식을 특수안경이 필요한 데다 재생된 상의 명암이나 깊이, 정보의 결핍 때문에 완전하지도 않다. 그러면 물체를 가장 사실적으로 기록·재생해내면서도 사진과 같이 객관성이 뛰어나고 보관하기 쉬운 수단은 무엇일까. 대답은 홀로그램(hologram)일 것 같다.

 영화·산업광고·과학기술 분야에 많이 이용

 홀로그램이라는 단어 자체는 아직 많은 사람에게 생소할지 모르지만 신용카드를 가진 사람은 이미 홀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여러 카드에 있는 로고가 보안을 위해 홀로그램화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신용카드의 로고 홀로그램은 ‘엠보싱(embossing) 홀로그램’이라 하여 무지개 홀로그램판에 기록된 형태를 금속판으로 굴곡화하여 특수인쇄기로 대량생산한 것이다.

 홀로그램은 서방 선진국이나 옛 소련 등지에서 레이저가 실용화된 60년대 초부터 개발되어왔다. 우리나라에서 홀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쏠리게 된 것은 지난해 12월 대전국제박함회 사전 기획으로 치러진 SCAF ‘91 행사를 전후해서였다.

 홀로그램에는 일반사전에서처럼 피사체의 상이 기록되는 것이 아니고 피사체의 형태에 따라 주어지는 빛의 파면의 변화가 기록된다. 따라서 홀로그램판에는 지도의 등고선과 비슷한 선들이 그려져 있다.

 홀로그램 제작 과정은 일반사진을 만드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으나, 홀로그램용 감광물질은 일반사진용보다 감도가 낮으므로 출력이 높은 광원이나 상대적으로 긴 노출시간을 요구한다. 그러나 긴 노출시간에 필요한 다중 노출 덕분에 홀로그램을 예술적·상업적 영상매체로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이를테면 홀로그램판을 고정시키고 긴 노출시간을 이용해 여러 형태의 피사체를 상대적 위치와 각도를 변화시켜가며 다중 촬영하면 홀로그램을 보는 각도나 홀로그램과 눈의 상대적 거리에 따라 다른 모양의 피사체가 재생된다.

 이는 피사체와 홀로그램판 사이의 위치를 고정시키고 피사체의 진동과정을 홀로그램에 이중노광시켜 피사체 진동전후의 변형 정도를 간섭무늬 형태로 재생하여 얻어진다.

 홀로그램으로 재생된 상은 홀로그램을 촬열하기 전 피사체와 홀로그램사이의 거리만큼 떠러진 곳에 빛이 모여서 생기므로,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상이 떠서 움직이게 하는 특수환영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실제로 미국 대학의 한 연극영화과에서는 보통사람 크기의 홀로그램을 만들어 연극할 때 유령으로 쓴다. 이러한 특수환영 효과는 영화·산업광고 분야에서 이용 가치가 클 것으로 보인다.

 홀로그램판이 유리이면 상이 유리판을 통해 나타나므로 박물관에서 이를 응용하면 가장 쉬운 소장품 전시방법이 될 수 있다. 옛 소련에서는 문화재 전시·보존을 위한 문화재의 홀로그램화가 진행되어 다른 나라에 전시된 적이 있고, 현재 컬럼비아에서도 문화재 홀로그램화가 진행중이다.

 현재 홀로그램은 주로 예술작품, 카탈로그, 고급포장지 및 벽지, 광고에서 이용되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비파괴 시험, 물리적 상태의 진단, 홀로그램의 정보저장, 특수광학소자에의 응용방법 등이 연구되고 있다. 앞으로 홀로그램의 제작은 모형 위주의 피사체에서 실무 위주의 피사체로 옮겨갈 것이며, 이 경우 훨씬 더 생생하고 사실적이며 대형화된 홀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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