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너지 공황, 유전개발 박차
  • 남유철 기자 ()
  • 승인 1992.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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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6개 회사 초청, 서 ·동해안 탐사·시추 논의 …'남한, 공동개발 제안'說


 최근 극심한 에너지난에 봉착한 북한이 북한지역 내 석유부존 유망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탐사를 하기 위해 서방의 세계적 석유회사들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아시아의 석유거래 중심지인 싱가포르 석유시장의 유력한 소식통에 따르먼 북한이 최근 호주 최대 석유회사인 BHP와 산토스, 프랑스의 세계적 석유회사 토털 등을 포함한 서방 6개 석유회사를 공식 초청해 북한의 서해안과 동해안 지역에 대한 탐사와 시추에 대한 논의를 가진 바 있다고 한다. 북한 정부와 접촉한 사실이 있는가를 묻는 기자에게 호주 벨버른에 있는 BHP 본사 공보실은 "회사 정책상 논평할 수 없다"는 입장만 거듭 강조했다.

 북한은 그동안 지질상으로 석유부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서해안지역을 중심으로 기초탐사와 시추를 수 차례 시도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싱가포르 소식통은 "본격적인 유전탐사를 위해 북한 정부가 서방 석유회사에 접근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라고 전화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에너지 확보 위해 무슨 짓이든 할 형편"

 싱가포르의 석유 소식통은 "북한은 대외적으로 공개해온 2개 정유공장 외에 2개의 군사용 정유공장을 따로 갖고 있으나 철저히 보안하고 있다"면서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원유공급이 중단 또는 감량되면서 하루 1만배럴 규모의 군사용 정제공장을 가동할 원유를 확보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것 같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석유수급 구조상 석유소비는 수송분야에 집중되어 있다(도표 참조).산업분야에너지는 자체공급이 가능한 석탄을 사용하고 군사용을 중심으로 하는 수송분야에 석유를 대부분 쓰고 있다. 석유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석탄 채굴량도 급격히 감소해 북한의 에너지난은 군사전략적 차원의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작년 북한의 에너지산업 현황에 대한 기초자료를 정리·분석한 바 있는 에너지경제연구원 정우진 선임연구원은 "여러 가지 정보를 유추해볼 때 북한은 에너지 부족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도 치를 능력이 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지난 4월6일 북한과 서방 석유회사 사이의 유전탐사에 대한 논의 움직임을 처음 보도한 미국 석유정보 전문지(페트를리움 인텔리전스 위클리)의 알 트로너 싱가포르 특파원은 기자와 전화통화를 통해 "북한은 에너지 확보를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형편에 처해 있다. 이런 위기감 때문에 마침내 서방에 손짓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의 코스모석유회사 조사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80년 1백80만들의 원유를 수입했고 그 이후 매년약 20만톤씩 수입량을 늘려왔다. 89년 북한의 원유 도입량은 3백30만들에 달했으나 90년 들어 2백50만들으로 잡자기 줄었다.

 하와이 소재 연구교육기관인 동서센터에 근무하는 해양자원 및 국제관계의 세계적 전문가 마크 발랜샤박사에 따르면 91년 들어 러시아는 북한에 공급해오던 원유의 90% 이상을 감축해 북한의 원유 도입량은 크게 감소됐다. 국제 시장가의 2분의 1정도 가격으로 북한에 원유를 공급해온 중국도 최근 경화결제가 아니면 원유공급을 감축 내지 중단하겠다고 통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88년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44%, 소련으로부터 19%, 이란으로부터35%씩 석유를 수입했다. 싱가포르 소식통은 "북한은 이란으로 부터의 석유공급을 군사무기로 결제해왔으나 이란 · 이라크 전쟁의 종식 둥과 함께 이란도 더 이상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할 이유가 없어 석유공급도 중단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발랜샤박사도 북한의 91년 석유 도입량은 중국으로부터 1백만톤, 러시아로부터 4만톤이 전부라고 밝히고 있다.

 북한이 에너지난을 타개하기 위해 서방의원조와 합작을 모색하는 가운데 남북한이 경제협력을 논의하면서 지금까지 국내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에너지 분야의 협력과 합작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이 새롭게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국내 석유업계의 한 관계자는"정부가 발표하지 않고 있으나 남북회담을 통해 북한지역의 유전공동개발을 이미·제안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지난 4월28일부터 5월3일까지 북한의 두만강지역 경제특구를 시찰한 발린샤 박사는"남북간 에너지 합작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견해를 《시사저널》과의전화 인터뷰에서 밝혔다(아래 기사 참조) . 해양자원 개발을 위한 국가간 협력문제를 연구해온 발랜샤 박사는 에너지 분야에서 남북한은 "상호보완적 자산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북한은 지질상 서해안과 동해안에 석유나 가스의매장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믿고 있으나 본격적으로 탐사할 자본과 기술이 없고, 남한은 탐사할 기술과 자본을 갖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발렌샤 교수는 "석유와 같은 전략물자의 재발과 공급에 있어 남북한간 합작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국내 기업, 정보도 사업계획도 없어

북한 서해안지역은 중국에서 발견된 유전에서 가까워 석유발견 가능성이 남한의 대륙붕광구보다 높은 것으로 국외 전문가들은 평가한다(68쪽 지도 참조). 세계적인 영국계석유회사 BP의 유전개발 사업고문인 재미교포 김종관 박사는 "북한지역의 유전발견 가능성은 아직 뭐라고 평가할 단계는 못되며 북한의 정치적 폐쇄성 때문에 서방의 주요 석유회사들이 지금까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면서 "물론 북한의 개방이 이루어 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고 내다봤다. 한국석유개발공사 김만식 개발부장은 한반도의 지질상황으로 볼 때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기는 힘들기 때문에 세계적인 석유회사들이 북한지역 유전개발에 쉽게 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이다.

 북한의 개방이 의외로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북한지역을 새로운 에너지 분야의 시장으로 보고 진출하려는 외국석유회사의 움직임과는 달리, 국내 석유회사와 종합상사들은 에너지 분야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정보조차 갖지 못하거나 구체적인사업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두만강 경제특구 시찰단의 남한측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인사는 익명을 전제로 "영국 석유회사 BP가 북한의 정유공장을 활용해 시장을 개척하려고 접촉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간접적으로 확인하면서 "특히 일본기업들이 빠르게 움직이고있다"고 전했다. "북한의 개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라질지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작년 3월 북한에 경유 3만배럴을 처음 수출한 호남정유의 한 임원은 "국내 기업들은 국내외 정치적 여건 때문에 외국기업에 비해 북한과의 교역 내지 합작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미국 칼텍스사와 합작회사인 호남청유는 북한과의 무역거래를 금지하는 미국 정부의 견책을 받아 북한과의 교역시도를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석유가 전략물자라는 점을 고려할 때 에너지 분야의 남북협력은 민간보다는 정부 차원의 이해관계가 선행되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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