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득실 맞아떨어진 韓 · 佛
  • 앙드레 퐁텐느 (〈르 몽드〉 고문) ()
  • 승인 1993.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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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서울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볍게나마 몸이 불편했다는 사실이 전해지고부터 그의 방한이 프랑스 국민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런 돌발 사고가 없었더라면, 미테랑의 한국 방문은 나날이 심각해지는 프랑스 국내의 생활고 소식에 가려 일반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외국 방문이 잦다 보니 대통령의 방한을 굉장한 사건인 양 다루기란 어렵다.

 한국의 경우를 보자면, 미테랑 대통령이 좀더 일찍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선 놀랍다. 사실상 그는 80년 대통령선거를 몇달 앞두고 비공식으로 중국을 방문하던 길에 북한에도 들른 적이 있다. 미테랑은 북한의 ‘위대한 영도자’와 나눈 얘기에 대해서는 거의 함구무언이었지만 언젠가 인상적인 일화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미테랑 대통령은 북한 지역을 시찰하는 동안 수많은 군중의 환영을 받았다. 그런데 이 도시를 가나 저 도시를 가나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얼굴이 닮은 것 같아 한번은 아무에게도 허락을 받지 않고 군중속을 헤치고 들어가 보았다. 운집한 군중은 앞의 몇 줄을 제외하고는 모두 마네킹이었다. 나는 그 후 장관 중의 어느 한 사람이 옛 소련의 외무장관이었던 셰바르드나제에게 이 일화를 들려주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셰바르드나제는 이 이야기를 듣고도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미테랑은 평양 방문에서 환멸을 느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인권을 존중하고 좌파사상을 가진 그의 눈에 비친 당시의 한국 또한 그의 방문을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민주주의의 기반이 확고하게 다져진 체제가 아니었다. 이제 한국에도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 마당에 미테랑 대통령은 청와대 만찬에서 ‘민주주의의 도래와 성숙’ ‘타의 모범이 될 만한 한국’이 되기를 바라는 축배를 들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2백69명의 프랑스인을 포함하여 ‘자유를 위해’ 한국 땅에서 목숨을 바친 영령들에게도 경의를 표하였다.

TGV 노선 연장 꿈꾸는 프랑스, 기술 이전 원하는 한국
 미테랑 대통령은 한반도의 분단이 ‘옛 시대의 잔재’라고도 말했으나, 자기가 분단 상황에 종지부를 찍는 데 별다른 보탬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아울러 그는 평양측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비록 여배우 소피 마르소나 조각가 세자르를 동행한 것이 문화적 색채를 가미했다고는 하지만 이번 방한의 궁극적인 의미는 뭐니뭐니 해도 경제 측면에서 찾아진다. 미테랑 대통령이 장관 4명 외에도 거물급 기업인을 대동하고 방한길에 오른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프랑스로서는 수출해야 할 필요가 있고, 현 개발 단계에서 한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선진국의 기술을 급속히 전수받는 일이다. 그래야만 한국이 가입하고자 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한국 간의 기술 격차를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가까운 이웃 나라가 경쟁 상대로 변할까 두려워 기술 제공을 꺼리는 형편이므로 한국측으로서는 다른 곳에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인들은 서울 · 부산간 초고속철도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기네가 뛰어들 만한 미개척 분야가 한국에 펼쳐져 있음을 간파했다. 지난 8월20일 고속철도 가계약을 맺기에 이른 프랑스측은 최종적인 결정이 자기네한테 떨어지리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은 듯하다.

 이 협상은 이미 10년 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그러므로 이 협상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상대방의 능력 및 열성을 측정해 볼 시간 여유가 있었다. 따라서 미테랑 대통령은 서울에서의 회담을 통해 초고속철도 계획이 새끼를 치리라, 이에 비견할 만한 규모의 사업들이 잇따라 성사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패기만만한 자들은 이미 TGV 노선을 평양, 아니 중국에서 시베리아 대륙까지 연장해 나갈 꿈을 꾸고 있기도 하다. 어쨌든 미테랑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도 밝혔듯이 한 · 불 양국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현재까지는 보호 대상이던 1백75개 부문을 외국인 투자자에 개방한다는 방침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미테랑 대통령 방한 바로 전날 한 · 불 관계 단체의 후원으로 양국 합작투자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특허권 판매, 한국기술자 프랑스 연수 등도 커다란 성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특기할 사항은 김영삼 대통령이 파리와 서울 간에 ‘상호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 관계’가 탄생했음을 환영했다는 점이다. 만일 그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면-대통령 자리에 오른 후 이제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의 청렴과 공명정대를 입증해온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 어찌 빈말이겠는가-앞으로 몇달 후 아니 몇년 후에는 각 방면에서 두 나라 사이에 협력과 교류가 활발히 전개되어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볼 수 있겠다.
앙드레 퐁텐느 (〈르 몽드〉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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