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공약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6.04.1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주의 신조어]
 
공약, 선언(서) 등의 의미로 쓰이는 ‘매니페스토(Manifesto)’에 ‘운동’을 붙이면? 각 정당 및 후보자들이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한 공약을 제시하도록 유도하는 시민운동이 된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국에도 이 물결이 상륙했다. 전진 기지는 학계와 시민단체가 구성한 ‘5·31 스마트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추진본부’. 이 운동에 각 정당이 호응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3월16일 각 정당 대표와 함께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실천 협약식을 가졌다.

의미는 자못 큰데, 문제는 이름이었다. ‘매니페스토’ 운동이라고 하니 이게 무슨 운동인지 바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래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우리말 공모를 했다. 1천2백70명이 여러 아이디어를 응모했으나 최우수작을 뽑지 못했다. ‘바른 공약 실천운동’ ‘참공약 실천운동’ ‘갖춘(알찬) 공약 가려뽑기’ 등이 후보에 올랐다. 선관위가 자체적으로 ‘참공약 선택하기’로 정했다. 많은 언론사에서도 매니페스토 운동 관련 기사에서 ‘참공약 선택하기’라는 표현을 병기하기로 했다.

‘참공약’이라는 신조어가 태어나는 데 가장 기여를 많이 한 집단이 정치권이다. 앞으로 이 단어가 살아남는 데 최대의 적 또한 정치권이다. 정치인들이 ‘공약(公約)’을 빌 공(空)자 ‘공약(空約)’으로만 만들지 않았어도 공약 앞에 ‘참’ 자를 붙일 필요가 없었다. 정치인들은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다”라는 표현을 국민들이 즐겨 쓰는 상투어로 만들어버렸다.

5·31 지방선거는 벌써부터 조짐이 수상하다. ‘매관매직 게이트’라는 또다른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이 다음 선거에서는 ‘참공약’이라는 신조어 앞에 ‘참’ 자를 하나 더 붙여 ‘참참공약’이라는 용어를 부득불 써야 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