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우침조차 모르는 ‘인면수심’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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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초등학생 살해범, 반성 기색 없어…이웃 주민들, 격하게 분노

 
평온했다. 지난 2월23일 찾은 용산 초등학생 살해 사건 현장은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이미 며칠 전 경찰이 용의자 김 아무개씨를 데리고 현장검증까지 마친 터라 그런지 여느 거리와 다르지 않았다. 한바탕 북새통을 치르며 현장을 훑고 간 기자들도 이미 다른 사건들로 관심을 옮겼기 때문인지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장에는 여전히 분노가 들끓었다.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육두문자를 날렸다. 인근 상인들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말하고 싶지 않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한 주민은 “그런 사람을 왜 교도소에 보내냐”라고 소리를 질렀다. 전봇대에 묶어놓고 돌로 때려서 죽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녘에서는 벌써 봄기운이 완연하건만 사건 현장에는 봄이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전과 9범인 김씨는 서울 미아리에 살면서 1년 전부터 용산구 용문동에서 신발을 팔고 열쇠를 수리하는 가게를 운영했다. 지난해에도 다섯 살짜리 여자 아이를 성추행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적이 있다. 전업 주부인 부인과 중소 기업에 다니는 외아들을 둔 그는 주민들과 내왕이 많지 않았다. 인근에서 과일 가게를 운영하는 한 할머니는 “김씨는 마을 사람들과 친하지 않았다. 어쩐지 인상이 좋지 않다 싶더니 결국 이런 일을 저질렀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가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허 아무개양을 본 것은 지난 2월17일 오후 7시10분께다. 허양은 김씨 가게 맞은편에 있는 비디오 대여점에 비디오 한 개와 만화책 세 권을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참이었다. 평소 엄마와 함께 신발을 사기 위해 몇 차례 가게에 들른 허양을 눈여겨봤던 김씨는 “예쁜 신발을 주겠다”라며 꼬드겼다. 허양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김씨는 쇠로 된 셔터문을 내렸다. 이후 상황은 알려진 대로다. 허양을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흉기로 살해한 뒤 아들을 불러 경기도 포천으로 가 시체를 불태워 버린 것이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당일 김씨 가게에 셔터가 내려진 것을 본 주민들은 여럿이다. 하지만 허양이 들어가는 것을 본 사람은 없다. 김씨는 사건 당일 술에 만취해 주민 여러 명과 크게 싸웠다. 주민들은 김씨 가게에 셔터가 내려진 것을 보며 “이제 좀 조용해지겠구나”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허양이 살해된 용산 현장은 인적이 드문 곳이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 바로 옆이다. 시간도 오후 7시쯤이면 어둡기는 하지만 가게들의 불빛이 환해 충분히 알아볼 만한 정도는 된다. 한 주민은 “퇴근 시간이기도 하고 평소에도 사람들의 왕래가 많다. 누군가 허양이 신발 가게로 들어간 뒤 김씨가 바로 셔터를 내리는 모습을 보고 의심을 가졌다면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김씨 가게 바로 옆에는 족발 가게가 있다. 가게를 운영하는 주민은 허양이 살해되는 그 순간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사건 당일 오후 8시쯤 김씨의 아들이 찾아와 아버지와 크게 다투는 소리만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도 설마 그런 끔찍한 일이 바로 옆에서 일어났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진술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허양을 살해해 종이 상자에 넣어둔 것을 발견하고 크게 싸웠으나 결국 범행에 가담하는 길을 택했다. 김씨를 검거한 공로로 1계급 특진하게 된 용산경찰서 강력팀 조상현 경장은 “아들도 처음에는 많은 갈등을 했던 것 같다. 정신이 없던 상황에서 범행에 가담했다며 생각이 짧았다고 반성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조경장에 따르면 범인 김씨는 아직도 전혀 뉘우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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