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작으로 수확한 ‘신나는 노후’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6.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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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인생 개척’성공 사례 / 정년 전에 계획 세워 미련 없이 직업 전환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꿈꾸었지만, 요즘에는 오히려 ‘너무 오래 살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는 말이 유행한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100세 장수 시대가 초읽기에 접어들었으나 구조조정의 칼바람에 직장에서의 정년은 더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20년 벌어 30년을 살아야 한다’는 말처럼 일하면서 보낸 시간보다 은퇴 후 보내야 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렇다고 지금 세대에게는 자식도 더 이상 ‘노후 보험’이 되지 못한다.

노후에 기댈 만한 국가의 사회 복지 체계도 변변치 못하다. 그야말로 노년을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상자 기사 참조). 결국 최재천 교수(서울대 생명과학부)가 주장했듯이 ‘이모작 인생’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일찍부터 이모작 인생을 설계하고 실천한 이들의 노년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풍요롭다. 택시 기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김기선씨(62)가 좋은 예다. 그는 서울은행, 중앙투자금융 등 금융 회사에서만 39년 동안 근무했다. 외환위기 때에도 대표이사 직을 세 번이나 연임할 정도로 ‘잘 나가는’ 금융 회사 CEO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제2의 인생을 위해 CEO 임기 1년을 남기고 택시 기사로 직업을 바꾸었다. 김씨는 “환갑날 개인 택시를 사겠다는 계획을 젊었을 때부터 세웠었다. 그 계획에 맞추려면 3년 동안 법인 택시 기사로 일해야 했다. CEO 임기를 마저 채우고 1년쯤 늦게 법인 택시 기사를 할 수도 있었지만, 목표를 위해 미련 없이 직장을 그만두었다. 계획대로 환갑 때 개인 택시를 살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김기선씨가 제2의 직업으로 택시 기사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제일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종이고, 큰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늙으면 번 만큼 쓰면 그만이니 속 편한 직업이 최고’라는 그의 철학과 딱 들어맞는 직업이기도 하다. 김기선씨는 “젊었을 때는 화려하고 머리 쓰는 일을 하면 좋겠지만 늙어서는 육체 노동을 해야지. 적어도 85세까지는 이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금융 회사 CEO에서 택시 기사로 대변신

김씨는 택시 기사를 하면서 여가 생활도 짬짬이 즐긴다. 아내와 함께 해외 여행도 하고, 쉬는 날이면 친구들과 함께 골프를 하러 간다. 택시 끌고 골프 하러 오는 그를 야릇한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택시 수입으로 해외 여행과 골프를 즐기기란 빠듯하지만, 그렇다고 무리하는 법은 없다. 여력 만큼 할 뿐이다. 그는 택시 기사를 하면서 오히려 더 건강해졌다고 한다. 날마다 한 시간씩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하고, 신바람 나게 일하다 보니 잘 먹고 잘 잘 수 있게 되었단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이모작 인생을 배우자가 적극 성원한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김씨는 “돈이 있든 없든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부부 금실이나 가족 관계도 더 좋아진다. 은퇴한 뒤 마누라에게 구박받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내 아내는 오히려 젊었을 때보다 지금의 내 모습을 더 예뻐한다.”

강원도 평창에서 ‘운중천삼방’을 운영하는 임동철씨(54) 역시 일찍부터 제2의 인생을 준비한 덕에 노년이 두렵지 않다. 임씨에게는 자신이 재배하고 있는 오가피·헛개나무 같은 한약재가 ‘연금’이나 마찬가지다. 임씨는 아내와 함께 3천평의 밭에 한약재를 재배하고, 이를 가공·판매하고 있다. 경기은행에서 20년간 근무하다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1998년 직장을 그만두고, 미련 없이 평창으로 내려갔다. 세찬 감원 바람 때문에 예상보다 일찍 직장을 그만두기는 했지만, 그에게는 이미 제2의 인생 계획이 서 있었다. 

 
임동철씨와 아내 이성희씨(53)는 ‘쉰이 되면 직장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젊은 시절부터 뜻을 모았다. 수산대학 출신인 임씨는 물고기 키우는 일을 하고 싶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시장 조사를 하고 마땅한 장소를 물색했다. 하지만 양식업은 너무나 경쟁이 치열했다. 고민하던 중에 평창에 있는 지금의 땅을 발견했고, 양식업에서 한약재 재배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마침 아내 이씨가 수지침과 한약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던 터였다. ‘쉰이 되면 내려가리라’ 결심했던 임씨 부부는 땅을 사들였고 이 땅에 오가피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외환위기가 터진 것이다. 이 엄혹한 시절을 임씨 부부는 이미 설계한 제2의 인생 계획으로 이겨냈다.

임씨는 “평창에 와서 얻은 것이 있다면 건강과 욕심 없이 사는 자세다. 아내와 늘 붙어 다니다 보니 금실도 좋아졌다. 사는 게 별건가. 필요한 만큼 벌 수 있고, 일 마치고 아내와 저녁 먹으면서 반주 한 잔씩 하는 거, 그거면 족하지 않은가”라고 되물었다. 처음에는 농촌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임씨 부부는 동네 사람들보다 더 ‘촌사람’ 같다.

물론 임씨 부부의 이모작 인생 행로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계획이 당겨지는 바람에 초·중·고교에 다니는 세 아이를 서울에 두고 부부만 내려와 살 수밖에 없었다. 졸지에 ‘이산 가족’이 되어 7년여 동안 생활했고, 그 사이 자녀들은 성인으로 자랐다. 임씨는 “이곳에서 제2의 직업, 제2의 인생을 얻었지만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쉽다”라고 털어놓았다.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은 이모작 인생 설계야말로 ‘일찍 시작하라’이다. ‘사오정’ ‘오륙도’까지 기다렸다가는 갑자기 불어닥친 ‘복병’을 만나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카피라이터 출신인 최윤희씨가 ‘멋진 노후를 위한 준비와 공부는 30, 40대부터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멋진 노후를 예약하라>).

그런 점에서 김수정씨(39)의 경우는 이모작 인생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교본’이 될 만하다. 그는 누구보다 일찍 제2의 인생에 눈을 떴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김씨는 지금 전직을 벼르고 있다. 이미 선생님은 그만두었다. 그가 선택한 다음 직업은 재정설계사(FP)이고, 이 직업인이 되기 위해 그는 현재 제법 고된 교육을 기꺼이 받고 있다.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가도 교사가 되기 위해 야간 교육대학원을 다니는 사람이 적지 않은 요즘 세태에 김씨의 선택은 의외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공무원 버금가게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교사에 대한 김씨의 견해는 이렇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에는 학교도 평생 직장이 아니다. 정년이 되기 전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경우도 많고, 사학연금이 나온다고 하지만 우리 세대 교사들에게는 기댈 곳이 못된다”라고 털어놓았다. 출생률이 떨어져 교사 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추세에서는 교사 역시 안정적인 직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김씨가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상황 인식이다.

 
김씨는 자녀 교육과 노후 대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교사를 그만두고 재정설계사가 되려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교사든 샐러리맨이든 젊었을 때는 내 집 마련과 자녀 교육비에 ‘올인’하게 마련이다. 자신의 노후를 걱정하려고 보면 어느덧 직장을 떠나야 할 때가 된다. 그렇다고 내 노후를 위해 자녀 교육비를 아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녀는 새 직업의 전도가 유망한 것도 고려했다. 앞으로 한국도 선진국과 같은 금융 경제 시대로 접어들 것이고, 그러면 재정설계사가 각광 받는 직업이 되리라고 본 것이다. 

자원 봉사로 ‘보람 있는 노후’ 찾기도

물론 제2의 인생에서 반드시 돈을 벌어야 행복한 것은 아니다. 고령 사회 지식경영 전문 사이트 ‘웰비즈(http://welbiz.co.kr)’의 김동선 대표는 “돈이 여유 있는 노후의 밑거름이 될 수는 있겠지만 노후 자금을 마련한다고 해서 행복한 노후가 100%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마흔 살부터 준비해야 할 노후 대책 일곱 가지>중)에서. 그는 건강을 지키고,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정서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죽는 날까지 자기 삶에 목적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은퇴 혁명 시대의 노후 설계>를 펴낸 오영수 보험개발원 보험연구소장도 “노후에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돈과 함께 외로움이다. 사회 봉사 활동 등이 노후의 고독을 해결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특히 노년기에 자신의 기술이나 지식 등을 나누어주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제2의 인생에서 자기 삶에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고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서울 청계천 관광안내소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최형배씨(66)는 남을 돕는 일에서 그 길을 찾았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1966년부터 20여 년간 현대건설에서 일했다. 현대건설을 그만둔 뒤에는 제지 공장에 근무하거나 중계무역업에 몸담았고 외국어 학원 등을 운영하면서 돈을 벌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일터에서 젊은 사람들과 경쟁하기가 쉽지 않았고 60세가 되면서 일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젊은 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으니 푹 쉴 수도 있었지만, 최씨는 2년을 넘기지 못했다. 쉴수록 몸과 마음이 더 빨리 늙는 것 같았던 것이다.

 
최씨는 2002년 월드컵 때 광고를 보고 자원 봉사를 지원했다. 대학과 직장에서 영어 실력을 쌓았다고 여겼지만 곧바로 자원 봉사에 뛰어들기는 힘들었다. 통역 자원 봉사도 전문적인 직업이기 때문이다. 최씨는 시민 대학에서 영어와 일반 교양을 이수한 뒤에 통역 자원 봉사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최씨는 월드컵 기간 내내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에서 영어 통역을 했다. 최씨는 “노인이라고 집에서 쉬며 오랫동안 축적한 경험을 썩힐 것이 아니라 이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자원 봉사가 그 방법 가운데 하나다. 자원 봉사를 하면 사회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삶의 의욕도 생기고 젊어지는 기분이 드니 일석이조다”라고 말했다.

그는 학창 시절 함석헌 선생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카메라로 사진을 잘 찍으려는 것은 셔터 누르는 그 순간을 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생도 죽는 그 순간 자신의 모습이 그 한평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며 최씨는 여생을 봉사활동을 하며 보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광화문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1주일에 한 번, 그리고 청계천의 ‘관광안내소’에도 1주일에 한 번씩은 통역자로서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자원 봉사에도 연령 제한(일반적으로 70세)을 두는 곳이 많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최씨는 “외국어 실력은 젊은이들이 뛰어날지 모르나 예절과 주변 지식만큼은 노인 봉사자들을 따라올 수 없다. 노인 인력과 자원 봉사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국민의 40~50% 이상이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있는 유럽 선진국처럼 한국에서도 자원 봉사의 범주를 다양하게 넓히는 운동을 전개하는 등 자원 봉사 활동을 체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은, 한 사람의 일생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길어진 인생에 맞춰 바꾸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개인은 이모작 인생 설계를, 가족들은 새로운 관계 정립을, 그리고 사회는 고령 인구에 맞춘 시스템 정비를 서둘러야 할 때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비장의 무기는 ‘효(孝)’였다. 노인 문제는 가족의 문제였고, 노인들에게 자녀는 곧 든든한 노후 대책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자식의 효도가 부모들의 버팀목이 되지 못한다. 자식이 부모를 반드시 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녀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의 ‘2002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가족이 노부모를 부양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1998년에 비해 19.2%나 급감했다.

전문가들이 행복한 노후의 조건으로 ‘자녀와의 관계 설정부터 다시 하라’고 조언하는 것도 이런 세태에서 연유한다. 웰비즈 김동선 대표는 “부모 세대가 자신의 재산을 자식에게 유산으로 남겨줄 것이 아니라 노후 생활비와 간병비로 써야 한다”라고 잘라 말한다. 고령화로 인해 은퇴 후에도 30년 이상을 살아야 하는 부모 세대는 그 긴 시간 자신을 스스로에게 의탁해야 하기 때문이다.

택시 기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김기선씨 역시 같은 생각이다. 김씨는 “나이 들면 아내나 자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신이다. 내가 홀로 설 수 없으면 아내나 자식과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가 택시 기사라는 이모작 인생을 결행한 것은 내가 당당하게 일해야 그들과의 관계도 좋아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평균 수명이 갈수록 길어지는 오늘날에는 부모들이 자녀를 키우며 보내는 시간보다 성인이 된 자녀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의무와 권리의 관계’였던 부모-자식의 관계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김동선씨는 자식을 의무와 권리의 대상으로 여기기 보다 ‘인생을 함께 살아갈 동반자’로 생각해 더불어 사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에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7.2%로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2019년 노령 인구 비율은 14.4%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 무엇보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든다. 2000년 현재 71.7%인 생산 가능 인구가 2030년에는 64.6%로 줄어들 것이라고 통계청은 내다본다. 이는 곧 경제의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뛸 사람들이 줄어들어 사람을 쓰고 싶어도 구하기 어려운 날이 올 수 있다는 뜻이다. 또 그 동안 벌어놓은 돈을 쓰는 계층인 노령 인구가 늘어나고 이는 곧 전체 저축액의 감소로 이어진다.

고령 인구가 급격하게 늘면 젊은 세대의 노인 부양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0년 현재 7.65명이 노인 한 명을 먹여 살리고 있는데 2030년이 되면 2.4명이 부양해야 한다. 이렇게 부담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만큼 경제 성장 속도도 더뎌진다.

노령 인구가 늘면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이 더 위태로워진다. 현재 국민연금을 타가는 사람은 100만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연금 수급자가 3백만명을 넘어서는 2008년부터는 본격적인 ‘연금 시대’가 개막된다. 이때는 연금 재정이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급격하게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런 역전 현상이 계속되면 연금이 바닥날 것은 분명하다. 정부는 완전 고갈 시기를 2047년으로 내다본다. 설령 정부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체계를 뜯어고친다 해도 ‘돈버는 생산 인구’가 절대적으로 적어지는 상황에서는 국가의 보장 수준은 그야말로 최저 수준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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