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호가 이용호 게이트 제보”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5.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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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가 자금줄 바꾸려 하자 터뜨린 듯…검찰·금감원, 비호 의혹 받아
 
1980년대 말부터 명동 사채 시장에서 활동을 시작한 최병호씨는 사채 업계에서 기업 합병·매수(M&A)의 천재로 불린다. 인천 출신인 최씨는 친인척과 함께 경인상호신용금고 대주주로서 1990년대 들어 명동 사채 시장을 주름잡기 시작했다. 그가 1998년 G&G그룹 이용호씨와 처음 만난 곳도 명동 사채시장이었다. 최씨는 이용호 게이트 당시 이씨가 행한 주가 조작, 유상 증자, 전환사채 발행에 뒷돈을 댄 실질적 전주였다.

 이용호씨와 만난 최씨는 1999년 8월 KEP 전자의 1천7백만 달러어치 해외 전환사채 발행과 4백억원대 유상 증자를 통한 주가 조작에 개입했다. 그는 이용호 펀드를 관리하면서 가·차명 계좌 27개를 통해 대우금속 주식 매집을 시작으로 이용호 게이트의 숨은 몸통 노릇을 했다. 당시 최씨는 벤처 투자 구조조정 전문가를 자처하며 서울 강남에 체이스벤처캐피탈과 체이스 벤처투자자문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씨는 금감원에 주가 조작 사실이 적발되어 서울지검 특수1부에 구속된 후 2001년 7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잠시 풀려났다. 다시 이용호씨와 손잡은 최씨는 이씨의 계열사인 (주)레이디의 유상증자분 8백80만주를 제3자 배정 방식으로 배정받았다. 또 이용호 게이트 당시 최병호씨는 대양상호신용금고 김영준 회장과 함께 금고 자금을 동원해 이용호의 G&G그룹 계열사인 인터피온 주가 조작과 삼애인더스 보물섬 주가 조작 등에 뒷돈을 댔다.

그러다가 2001년 가을 이용호 게이트가 터져 세상이 시끄러워지자 최씨는 잠적했다. 대신 이씨의 배후로는 조폭 출신 사업가 여운환씨가 지목되어 지금까지 세상에는 여씨와 이씨가 게이트의 주범인 것처럼 알려져 있다. 당시 사건 흐름을 잘 아는 한 사채 업계 인사는 “원래 이용호씨가 최병호씨와 손잡고 주가 조작을 일삼다가 자금줄을 여운환씨로 바꾸니까 최씨가 배신감을 느껴 당시 야당 실력자에게 두 사람을 제보해서 이용호 게이트가 터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용호 게이트 당시 실질적인 배후 거물은 최병호씨였지만 그가 수사 선상에서 비켜난 데 대해 ‘사채 시장 큰손으로서 정·관계 로비의 전면에는 최병호가 나섰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는 것.

여운환이 이용호 게이트 배후로 지목된 까닭

 그런 사정 때문이었는지 당시 대검은 이용호씨를 구속한 뒤 배후 인물인 최병호씨에 대해서는 이씨를 구속한 지 사흘 만인 2001년 9월7일에야 출국금지 조처를 내려 구설에 올랐다. 금감원도 최병호씨를 비호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대양상호신용금고 주가가 급등했지만 주가 조작 감시를 맡은 금감원과 증권거래소는 감리조차 하지 않았던 것. 최병호씨가 자카르타로 도피해서도 올해 국내 코스닥 시장 조작에 개입하는데도 이를 막아야 할 금감원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점도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최씨만이 아니라 그의 자금을 배경으로 주가 조작을 일삼아 온 기술자들은 거듭 구속되었지만 번번이 석연치 않게 형집행정지 등으로 풀려났다. 지난 7월26일 풀려난 이성용씨만 보더라도 그동안 주가 조작 귀재라는 별명을 들으며 코스닥 시장을 어지럽힌 거물 경제 사범으로 세 차례나 구속되었지만 모두 형집행정지로 풀려나는 기록을 세웠다.

건강 때문에 그랬다지만, 그는 형집행정지 기간에도 주가 조작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 추가 기소된 적도 있다. 거물급 주가 조작 사범들에 대한 수사 당국의 소홀한 감시가 재탕 삼탕 범죄를 방조하고 있는 셈이다.   최씨를 뒷배경으로 하여 주가 조작을 일삼던 이용호·이성용 등 1세대 기술자들은 구속된 후 검찰 조사 과정에서도 최씨의 정체는 대개 감춰주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최병호씨의 제의를 받고 주가 조작에 가담한 적이 있었던 한 조작 기술자는 “형을 살고 나와 다시 전주와 손잡아야 하므로 검찰 조사를 받을 때 최대한 보호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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