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바치’들의 복수
  • 천정환(문화 평론가) ()
  • 승인 2005.12.0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비평]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황우석팀’의 ‘연구 윤리’ 문제로 시작되고 MBC <PD수첩>의 ‘취재 윤리’ 문제로 폭발한 일련의 사태는 승자 없이 상처만을 남긴 채 미봉되고 있다. 병실에서 수염 안 깎은 채 언론에 ‘공개된’ 황우석 교수는 ‘수난 당한 영웅’으로 포장되고 ‘빠’를 거느린 한국 과학사의 전무후무한 인물이 되었지만, 진정한 신뢰와 존경은 잃어버렸다. 또한 몇몇 언론은 눈앞의 반사이익에 도취해 기뻐하고 있지만, 기실 MBC <PD수첩> 폐지는 ‘보도(報道)의 위기’이자 한국 기성 언론 전체의 위기이다. 

일련의 사태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공론장이 형성되는 메커니즘과 구조적 특성, 그리고 그 취약함을 낱낱이 드러내 주었다. 이렇게 약점이 발가벗듯 드러난 것은, 오늘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가 전혀 새로운 영역에 있는 문제이기 때문일 테다. 그것은 바로 과학 기술의 문제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거의 모두가 사회적 미숙아이며 문외한이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채로 환호하거나 화를 낸다. 공동체의 주민으로서 행동하고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관련 지식, 즉 특정한 과학 기술의 필요성과 안전성, 그 사회적 의미와 효과,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국가 정책 입안 과정을 말이다. 적어도 과학 기술과 관련된 분야만큼 ‘전문가’와 ‘시민’ 사이의 거리는 천길만길이다. 관료주의와 테크너크래시, 그리고 그 동전의 양면인 일반의 무지와 오해가 공공연히 용인되는 장은 여기밖에 없다. 방폐장 문제든 천성산 문제든 이 문제에 관한 한 한국 사회의 소통은 거의 실패해 왔다.

<PD수첩> 이전의 언론 보도, 과연 제 역할했나

황우석 신드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제껏 한국 사회에서 과학 지식의 사회적 파급 효과와 윤리 문제 등은 전혀 공론의 대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황우석 교수와 그 팀은 토론과 검증의 대상이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황우석 교수가 ‘대중의’ 영웅이 되고 막대한 국가의 돈이 황우석팀의 실험실에 쏟아 부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PD수첩> 보도 이전까지 언론은 황우석 교수를 국가 영웅으로 만들고 황교수에게 투사된 대중의 열망을 이용해먹는 데만 급급하여, 있을 수 있는 여러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려는 노력을 해본 적이 없다. 또한 정반대로 <PD수첩>의 과잉 사명감(?) 또한 이러한 소통 결핍 상황이 빚어낸 것일 테다. 오늘 이 소통 결핍은 일방적인 ‘대중’적 여론 때문에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젊은 과학자들, 즉 이공계 대학원생들과 소장 교수들은 스스로를 ‘갖바치’라 부르며 자조한다고 한다. 그들은 대부분이 필요한 관심과 지원으로부터 소외되어 좌절감을 느낄 뿐 아니라, 스스로 실험실에 매여 ‘정치’와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그래서 정치력이 뛰어난 황우석 교수는 더더욱 예외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런데 갖바치는 이들만이 아니다. 과학 기술에 대해 맹목적인 환상을 갖거나 때로 잘못된 사용의 희생자가 되는 우리 또한 또 다른 의미에서 갖바치이다. 오늘 엉뚱한 데로 불붙은 분노와 황우석 교수 우상화는 두 무지한 갖바치가 합력하여 그동안의 소외와 박탈에 대해 복수하는 것이다. ‘대중’은 객관적인 윤리 문제에 귀를 꼭 막으며, 평소의 집요함을 다 포기하고 복수심에 불타 ‘잘난’ ‘말의 권력’을 죽이는 데로만 달렸다. ‘무지’뿐 아니라 스스로 만든 장밋빛 환각과 황우석이라는 새로운 영웅이 훼손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오늘날 신드롬의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황우석팀의 업적은 맞춤형 줄기세포 연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 기술 문제야말로 정치 문제임을 실증한 데에 있다 하겠다. 이번 일을 기회로 사회에 대한 과학자들의 책임감과 정치에 대한 인식이 한 차원 업그레이드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필자처럼 과학의 ㄱ자도 모르는 ‘무지한 대중’을 깨우쳐 주고, PD가 ‘순진한 과학자’들을 협박하지 않게끔, 즉 과학 기술의 올바른 사회적 사용에 대해 할말을 꼭 하며 제대로 ‘참여’하는 젊은 과학자들의 운동이 크게 일어나기를 바란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