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은 절호의 투자설명회”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5.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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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인터뷰] 이희범 산업자원부장관
 
11월9일, 산업자원부 이희범 장관이 과천 집무실에 ‘출근’한 시간은 오후 5시가 넘어서다. 아침 6시부터 시작된 조찬 모임, 각종 행사 등에 참석하느라 분초를 다투었기 때문이다. “제가 이렇게 삽니다”라며 보여주는 일정표를 보니 10분 단위로 일정이 빽빽했다.

최근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방폐장) 부지가 정해지면서 그는 새롭게 주목되었다. 19년간 표류해온 국책 사업을 큰 무리 없이 마무리지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사람 좋은 시골 아저씨 같은 느낌을 주는 이장관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흘렀다.

APEC(에이펙·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앞두고 동분서주하는 그를 경기도 과천 산업자원부장관실에서 만났다. 이장관은 “에이펙 정상회의 기간에 최초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개성공단에 대한 투자설명회를 연다. 또 외국 기업 가운데 아시아본부를 한국에 두겠다는 기업이 나오는 등 투자를 늘리겠다는 기업이 꽤 나올 것이다”라고 밝혔다.

얼마나 바쁜가?
낮에는 결재할 시간이 없다. 집으로 결재 서류를 가져간다. 집에 가면 팩스로 도착한 정보 보고와 연설 자료 등이 쌓여있다. 이것들을 살펴보고 잠자리에 들면 12시가 훌쩍 넘는다.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잊어버린 지 오래됐다. 직원들과 함께 사생결단한다는 각오로 일하고 있다.

방폐장 부지가 선정되었다.
부안·안면도·굴업도 사태 등 많은 갈등이 야기된, 19년간 표류한 국책 사업이었다. 산자부뿐만 아니라 참여정부의 큰 숙제였는데, 결과적으로 잘됐다. 하지만 문제 해결은 산자부가 한 것이 아니다.

무슨 소린가?
대통령부터 굉장한 관심을 가졌다. 국무총리가 당정회의를 세 번 했고, 관계 부처 국정현안 조정회의를 일곱 번이나 했다. 국무조정실에서는 매일매일 상황을 점검했다. 경찰청과 행자부는 투표 기간에 다른 도 출신 감찰반을 투입해 감찰을 강화했다. 선거관리위원회도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현수막을 뜯어냈다. 청와대·총리실·산자부·과기부·경찰청·선관위 등 시스템이 작동해서 만들어낸 성공작이었다. 그 시스템 중에서 우리는 한 톱니바퀴 역할을 했을 뿐이다.

획기적인 지원책을 내걸고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렇다. 주민 투표를 통해서 하는 것이 옳은 방법인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방폐장 부지 선정 문제는 그 동안 여러 방식을 시도했는데, 다 실패했다. 시민·사회 단체들의 요구를 수용해 어쩔 수 없이 투표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업을 이런 식으로 할 수는 없다.

 
부산에서 11월12일부터 19일까지 에이펙이 열린다.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보나?

에이펙은 전세계 GDP의 57.7%, 전세계 교역량의 45.8%를 차지한다. 행사는 크게 정상회의·각료회의 등 네 부분으로 나뉘는데, 산자부가 주관하는 투자환경설명회는 비공식이지만 아주 중요한 활동이다. 과거에는 박람회 식으로 참여했는데, 이번에는 1 대 1로 만나 실질적으로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외국인 4백50명과 내국인 3백명 등 기업인 8백여명이 참석한다. 국가와 기업의 브랜드 가치 상승효과는 물론이고, 국내총생산이 2억 달러 이상 증가할 것이다.

유명인들은 누가 오나?
도널드 존스턴 OECD 사무총장, 199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먼텔 컬럼비아 대학 교수, 폴 제이콥스 퀼컴 사 회장, 맥 휘트먼 eBay 사 사장 등이 온다. 특히 맥 휘트먼 사장은 월스트리트 저널과 <포춘>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인이다. 지난해 9월 그녀가 한국에 왔을 때 내가 초청장을 보냈다. 그때 오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사이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인으로 선정되어 이번에 참석하는 의미가 더 커졌다.

에이펙을 계기로 실질적으로 외국인들의 투자가 많이 이루어지나?
보안상 밝히기는 어렵지만, 몇몇 기업이 재미있는 발표를 할 것이다. 한국에 투자하겠다, 투자를 늘리겠다는 기업이 꽤 나올 것이다. 아시아본부를 한국에 두겠다는 기업이 나오는 등 질적으로도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나온다.

외국인 투자가 왜 중요한가?
생산·수출·고용에 기여하는 효과는 물론이고, 기술 이전이나 안보에 도움이 된다. LG필립스가 경기도 파주에 공장을 둔 것은  우리 안보를 신뢰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외국 기업들이 한국에서 돈을 벌 수 있게, 불편이 없도록 해주어야 한다. 외국 투자가들을 위해 경영·환경 개선 5개년 계획을 만들었고, 1백50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우리 나라에서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경영 환경을 계속 개선하겠다.

에이펙 기간에 외국인들을 상대로 개성공단 투자 설명회를 연다고 들었다.
그렇다. 처음이다. 단독 또는 합작으로 투자할 수 있다. 설명회를 열면 합작 투자를 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 단기보다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을 한국산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해 논란이 있다.
국제 원산지 규범에 따르면 개성공단에서 생산했어도 우리 원자재가 60%를 넘으면 우리 것으로 인정된다. 이미 홍콩과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하기로 했다. 다른 나라와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협력할 것이다. 잘 될 것이다.

최근 중국과 무역 갈등이 커지는 흐름이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자 투자 대상국으로 앞으로 10년간 가장 중요한 경제 협력 파트너다. 우리는 지난해 중국과의 무역에서 2백4억 달러 흑자를 냈다. 교역 규모가 증가하면서 무역 마찰이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한·중 무역구제협력 MOU 체결을 협의하고 있다. MOU가 체결되면 업계간 정례적인 협의 채널이 생기고 반덤핑 조처가 사전에 통보되는 등 불필요한 통상 마찰이 많이 완화될 것이다.

 
세계가 에너지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 나라는 어떤가?

에너지 문제는 국가적인 어젠더가 되었다. 러시아 캄챠카에 유전을 개발하고, 인도에 철광석 공장을 짓고, 칠레에서 동을 구매하는 등 자원을 확보하는 통로를 다변화했다. 나이지리아와도 공동으로 유전을 개발하기로 했다. 추진 중인 프로젝트가 30여개 있기 때문에 내년에는 더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석유나 가스는 한계가 있다. 장기적으로 신재생 에너지가 대안이라고 보고, 수소연료전지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0년, 20년을 내다보고 투자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에이펙 간에 협력 채널을 구축하기로 했는데.
지난 10월 경주에서 열린 에이펙 7차 에너지장관 회의에서 아드난 시하브 엘딘 석유수출국기구 사무총장을 만나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한국이 대화 채널을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겠다고 제안했다. 엘딘 총장은 내년쯤 석유수출국기구-에이펙 핵심 국가 장관급회의를 열어 협력 범위 등을 논의하자고 말했다. 조만간 이해찬 국무총리를 수행해 중동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때 석유수출국기구 의장인 쿠웨이트 에너지장관을 만나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협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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