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내부의 적이 ‘반한류’보다 더 무섭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5.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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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전문가들이 말하는 한류 걸림돌

 
산이 높아서 골도 깊은 것일까? 아시아 각국에 반한류 기류가 거세게 일고 있다. 타이완에서 맨 처음 기류를 형성했던 반한류 전선은 일본을 거쳐서 이제 중국에까지 이르렀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그만큼 한류가 강력해졌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런 움직임에 너무 무신경했다고도 볼 수 있다. 

반한류가 일어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한류를 다지기 위해서는 이쯤에서 우리 내부의 문제를 돌아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한류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한류 야전사령관과 작전참모들로부터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아보았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 관련 학계, 언론, 제작자, 배급자, 연예인, 연예기획자, 기업 등 10개 부문에 대한 각각의 평가를 들어보았다.

도움이 되는 일에는 거북이인데, 생색내는 일에는 귀신인 정부, 한류 팔아먹기에 편승한 학계, 한류 살리기보다 한류 죽이기에 더 신이 난 언론, 한류 연예인에 들러붙어 호가호위하는 매니저까지, 들여다보니 내부의 적이 많았다. 정부(4.5점/10점 만점) 언론(4.6점) 연예기획자(4.7점) 기업(4.8점) 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4.9점) 지방자치단체(4.9점)는 낙제점이었고 관련 학계(5.2점) 배급자(5.2점)는 겨우 낙제를 면했고, 제작자(6.7점)와 연예인(7.2점)만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정부는 가장 박한 평가를 받았다. 정부의 한류 정책에 대한 평가는,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정확히 거꾸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칫 문화 침략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자제할 필요가 있는데, 잘못 나서서 오히려 화만 자초한다는 것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정책인데, 실제로 보면 간섭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간섭하고 간섭해야 할 것은 수수방관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대중문화 평론가 변희재씨는 “스타를 보유한 몇몇 기획사에 끌려다니며 이들의 이해만 대변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부처끼리 중복되고 관련 단체까지 난립해서 인력만 비대한 것도 문제로 꼽힌다. 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 김양래 사무처장은 “담당자가 자주 바뀌어 전문성을 키우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한류문화관 같은 것 만들 돈으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시설을 만들라고 하는 요구도 있었다. 방송영상산업진흥원 김영덕 연구원은 “정책의 기민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저작권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도통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정부와 함께 한류 최대의 적으로 꼽히는 곳이 바로 언론계다. 일단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과장해서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왜 한류에 재를 뿌리느냐는 불만도 많았다. 딸 장나라를 중국 최고의 한류 스타로 키워낸 주호성씨는 “때로는 우리 언론이 현지 언론보다 더 무섭다. 현지 언론보다 더 가학적인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다.

“매니저들이 연예인 옆에서 호가호위”

세 번째로 낮은 평가를 받은 곳은 매니저를 비롯한 연예기획자들이었다. 이들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국 드라마를 주로 방영하는 타이완 GTV의 원소강 한국대표는 “매니저들이 연예인 옆에서 호가호위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이들 때문에 한국 연예인들이 욕을 먹는다. 매니저들의 수준을 높여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매니저들이 최소한의 외국어 능력은 익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부 연예기획자들이 스타를 이용해 한몫 잡으려고 무리한 요구를 많이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올해 아시아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비의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 홍승성 대표는 “처음부터 아시아 시장을 목표로 발굴해서 기획하고 준비시킨 엔터테이너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소극적인 한류 마케팅을 펼치는 국내 기업들도 낮은 평가를 받았다. 주호성씨는 “얼마 전 중국에서 한국 기업이 한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논문이 나와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중국 기업보다 한국 기업들이 한류 마케팅에 너무나 소극적이다”라고 말했다. 

관련 종사자들은 기업의 한류 마케팅이 미진한 것을 현지에 우수 인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감수성이 없기 때문에 반응 속도가 느리고 한류 마케팅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베트남에서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는 FNC미디어 김의성 대표는 “다른 외국 기업보다 한국 기업의 도움을 받기가 더 힘들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류 관련 교류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도 낙제점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류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교류를 도모하자는 재단의 취지에는 대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그러나 행사 위주의 사업 진행에 대해서는 낮은 점수를 주었다. 소모적으로 쓰이는 예산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도 아슬아슬한 차이로 낙제점을 받았다. 한류우드를 조성하는 경기도를 비롯해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드라마 세트를 협찬하는 등 한류 관련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통합된 관리 체계가 없어 중복 투자를 하는 등 쓸데없는 경쟁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방자치단체에 대해서는 주로 부화뇌동한 죄를 물었다. 국회 한류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최구식 의원은 “전시 행정이 만연해 있다. 부가 가치를 발생시킬 시스템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관리부실죄도 지적되었다. 드라마 세트장을 지어도 사후 관리가 전혀 안된다는 것이다. 원소강 대표는 “<대장금> 세트장에 가면 제대로 된 식당이 없어서 배가 고프다. <야인시대> 세트장에 가도 싸움 구경 한번 할 수 없다. <풀 하우스>나 <슬픈 연가>는 세트장을 찾아가기도 힘들다”라고 말했다.  

한류 관련 학계는 아슬아슬하게 낙제를 벗어났다. 그러나 학계에 대한 평가도 냉정했다. 업계 종사자들은 학계의 움직임을 한류에 편승하려는 대학의 마케팅 전략으로 보고 있다. 왜 학자들이 한류에 기생하려 드느냐는 것이다. 주호성씨는 “국내 연예계 현실도 모르는 사람들이 한류를 논한다. 이들의 왜곡된 한류 인식이 학술적인 것으로 둔갑해서 한류를 오독하게 만든다”라고 불만을 쏟아냈다. 

명칭에 대한 문제 제기도 많았다. 한류라는 말은 상대 국가에서 거부감을 가질 수 있어서  우리는 되도록 쓰지 말아야 하는 말인데, 학계가 이런 말을 쓰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고정민 수석연구원은 “대중 문화와 관련된 다른 학과가 있는데 한류학과를 따로 두는 것은 난센스다. ‘최신유행학과’를 두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비판했다. 

콘텐츠 배급자들도 가까스로 커트라인을 벗어났다. 배급자들에 대한 평가는 두 갈래로 갈렸다. 일단 국내 배급자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특히 배급 구조에 불만이 많았다. 방송사가 너무 폭리를 취하고, 외주 제작사 몫도 방송사가 독식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국 콘텐츠가 인기가 높아지자 너무 군림하려 든다는 것이다. 원소강 대표는 “인간적인 모욕감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일본쪽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지속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끼워팔기를 하지 말라는 주문도 있었다. 에이전트들이 옥석을 가려서 농간을 부리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배급자들한테 모욕감 느낀 적 많다”

한류의 주역인 제작자는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도 좋은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수출용 드라마나 영화를 제작하면서 국내 팬을 놓치고 있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시각도 있었다. 일단 국내 시청자의 눈부터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류 콘텐츠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PPL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제작자들이 드라마 규모만 늘려서 승부하려는 마인드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예인은 가장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대체적으로 잘하고 있다는 평이다. 많은 한류 스타가 각국에 나갔지만 해외에서 큰 문제를 일으킨 경우는 거의 없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스스로 ‘민간 외교관’이라는 자의식이 부족한 편이라는 점이다. 김영덕 연구원은 “돈이 되는 일본에만 가고 중국 시장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한류 야전사령관과 작전참모들은 반한류 능선을 넘으려면 쌍방향 교류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유린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지화를 통해서 융화하는 것도 방법으로 추천되었다. 현지의 사정과 현지인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이를 맞추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문위원 :
삼성경제연구소 고정민 수석연구원
KBS 글로벌전략팀 김신일 PD
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 김양래 사무처장
방송영상산업진흥원 김영덕 연구원
FNC미디어 김의성 대표
대중문화 평론가 변희재
타이완 GTV 원소강 한국대표
장나라기획사 주호성
국회 한류연구회 대표 최구식 의원
JYP엔터테인먼트 홍승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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