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은 동맹 관계 아니다”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5.03.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대통령 최근 외교 발언 왜 나왔나/"남방 3각 동맹도 없다"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방향성을 궁금하게 하는 현안들이 잇달아 터져나오고 있다. 독도 문제를 둘러싼 일본과의 외교전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의 ‘균형자’ 발언 역시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노대통령은 지난 3월22일 육군3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앞으로) 한반도 뿐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수언론이 ‘한미일 남방 3각동맹에서 이탈하려는 것 아니냐’며 쟁점화한 것이다.

특히 한국이 이참에 아예 한미동맹에서 벗어나 중국과 손을 잡으려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확대해석하기도 한다. 2005년 봄 한국 외교는 과연 어디를,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 것인가. 외교안보 핵심 당국자들의 분석과 전망을 쟁점 별로 정리한다.

 
균형자 발언은 남방3각 이탈? ; 정부 당국자들은 남방 3각동맹이라는 개념 자체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한미 동맹, 미일 동맹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한국과 일본은 동맹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일관계는 선린우호를 지향하는 관계일 뿐이다.  따라서 한미일 3각 동맹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정부 고위당국자는 강조했다. 북한·중국·러시아의 북방 3각 동맹 역시 한때 존재했으나 중·소 분쟁 이후 흐지부지됐다. 지금은 냉전 시대와 같은 진영 외교 시대가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과 함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판에 냉전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동북아 균형자 역할의 참뜻; 노대통령이 언급한 동북아 균형자 역할에 대해서도 오해가 있다. 일부 언론과 논객들은 한국이 마치 한미동맹에서 이탈해 미국과 중국의 중간쯤에 서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는 ‘천만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언급한 균형은 미.중간 균형이 아니라 지역 국가인 중국.일본 간 균형이라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수퍼 파워인 미국과 떠오르는 강자인 중국 사이에서 우리가 할 일은 별로 없다.

다만 중국과 일본의 갈등 문제에서는 우리 역량으로 할 일이 있다”고 정부당국자는 말했다. 다시말해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분쟁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언급한 동북아 평화구상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평화구상이 동전의 한 면이라면 현재 전개되는 분쟁 예방 노력은 동전의 또 다른 측면이라는 것이다.

중.일간 분쟁 가능성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고 예의 주시 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미 갈등 상황이고 접점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선 양국 내에서 그런 요소들이 커지고 있다. 중국은 경제 성장에 따른 국방력 현대화, 반국가분열법 등 대만에 대한 강경 정책 그리고 ‘중화민족’ 개념의 등장 등으로, 당장은 대외협력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해군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탈냉전 후 일본의 우경화를 이미 보편적 현상으로 판단한다. 평화헌법 개정, 자위대 활동 반경 확대 등이 지속적으로 추진돼 왔다.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등 역사 문제 외에도 조어도 등 영토 마찰, 석유 가스 탐사를 둘러싼 대륙붕 문제 등 중·일 양국간에 갈등이 진행 중이다. 지난 2월 미일 국방외교 장관회담에서 대만문제가 처음으로 공식 거론되면서 전선이 확대돼 가고 있다.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정부 당국자는 “다소 모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한미 동맹, 지역안보 협력, 쌍무 다자안보 협력, 국방력 등 기존의 외교안보 자산을 토대로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한미동맹을 깨고 중국으로 기우는 방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갈등의 당사자인 일본·중국과도 협조할 것은 협조하면서 분쟁화를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한다. 정부 당국자는 “과거 냉전 시대 외교가 아니라 탈냉전 시대에 걸맞는 자주외교로 가겠다는 것이 바로 이런 뜻이다. 한국의 국력은 이제 세계 10위권이다. 충분히 역할을 할 때가 됐다”면서 자신감을 보였다.

한·미 동맹은 지금 조정 중; 정부의 또 다른 당국자는 “한미동맹은 우리 안보의 기본축”이라고 잘라 말했다. 100년 전 청 일 러 등 주변국들에게 당한 치욕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안으로는 자주국방을, 밖으로는 안보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바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대외 안보 협력 자산’이라는 것이 정부의 시각이다.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면 우리의 대외 입지가 약화된다. 따라서 미래지향적으로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고 정부 당국자는 강조했다.

 
이같은 정부의 인식에도 불구하고 ‘동맹의 균열’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3월8일 공사 졸업식에서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시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고 발언한 뒤 보수진영이 발끈했다. 정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반기를 든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실제로 대통령의 당시 발언은 2003년 한미연례안보협의(SCM) 이후 정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너무 신축적인 것 아니냐는 일부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왔다. 그는 “미국이 하자는 대로 무조건 따라하는 것이 동맹 강화는 아니다. 서로의 이해관계에 입각해 할 말은 하면서 동맹의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당국자는 “동맹 조정 과정에서 진통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950년대 낡은 옷을 21세기 새 옷으로 갈아입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군관련 인사들은 익숙한 관행을 바꾸는 것이므로 위기의식을 느낄지 모르지만 그대로 갈 수 없다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세계전략이 바뀌었고, 이에 따라  미국이 변화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들이 이처럼 동맹 조정에 따른 진통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한미관계 약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까닭은 노무현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최상위 레벨에서 인간적 유대와 협조가 원활하기 때문이다. 당국자들에 따르면 2003년 5월 첫 정상회담 이래 양 정상은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정상간 대화를 통해 중요 현안들을 해결해오고 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부시 대통령에게 한미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아마 그게 무슨 소리냐, 노 대통령과 내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데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일정책이 바뀌고 있다; 지난 3월17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가 발표한 성명과 3월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작성한 ‘국민에게 드리는 글’은 정부의 대일정책이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그동안의 선의에 대한 일본의 반응에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일본에게 과거처럼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다. 다만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강국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그 대답이 이런 식이라면 곤란하다”고 정부 당국자는 말했다.

신한일 관계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함축된 것이 바로 독도정책이다. 외교부의 조용한 외교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게 됐다. “일본이 자기 땅이라고 우기기 시작했는데 국제 분쟁화나 걱정하면서 손발을 묶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장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이나 정부 핵심권의 독도에 대한 인식은 ‘역사적이고 근본적인 지점’을 응시하고 이다.  즉 1905년 이전 내각 총리대신 명의로 ‘독도는 조선 땅’이라고 공표까지 한 일본이 러일전쟁 전후 독도의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되자 ‘주인없는 땅’이라며 야욕을 부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한반도의 침탈과 식민화 과정의 첫 희생자로 독도를 빼앗으려 했다는 것이다. 지금 와서 독도를 다시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해방의 역사를 부정하고 제2의 침탈 및 재식민화 과정을 밟겠다는 뜻’으로 본다는 것이다.

결국 독도 문제는 독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안보 문제와 직결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에게 독도 문제는 한.일간의 문제일 뿐 아니라 동북아 평화의 문제라고 설명한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지적했다.

6자회담에서 일본은 어디에 있나: 일본의 문제는 과거사와 독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6자회담에서의 일본의 ‘행태’에 대한 한국 정부 관계자의 불만은 일정 수준을 넘어 있다. 표현은 냉정하게 하지만 불신의 골이 매우 깊다. 일본은 핵문제 해결에 기여하겠다면서 엉뚱한 문제로 방해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거짓으로 판명된 일본 여성 가짜유골 파문에 대해서도 냉소적 반응이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도 진위 판정이 안 나왔고, (데쿄대학이라는) 작은 대학교에서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시료를 다 써버렸다면서 확인할 기회도 주지 않는다.”

정부의 또 다른 당국자는 “증거는 없지만”이라는 전제를 달면서 “북핵 문제로 일본이 (안보적으로) 많은 것을 얻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1990년대만 해도 일본이 북한 경제 회생이나 한반도 통일에 경제적으로 기여해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한국의 경제 규모도 커졌다. 일본의 역할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정부당국자 발언에는 ‘방해나 하지 말기를 바란다’는 뜻이 담겨져 있었다.

정부의 입장을 요약하면 ‘한미일 남방 3각 동맹 이탈’이 아니라 ‘한미동맹은 강화하되, 일본에 대해서는 두고 보겠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