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은 과연 `하늘이 내린 보약`인가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4.08.2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0년 넘은 천종, 1억원 호가…위암·심혈관 질환에 효능 탁월
지난 여름, 남의 산삼을 캐먹고 2천5백만원을 물어주었던 김 아무개씨(33)의 요즘 심경은 어떨까. 혹시 몹시 억울해 하고 있지는 않을까.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그의 억울함은 당연하다. ‘바가지’를 썼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가 먹었다는 산삼의 연수(年數·나이)가 정확하지 않은 것이다. 감정인은 사진만 보고 ‘100년이 넘었다’고 했지만 믿기 어려운 판정이다. “산삼은 실물을 봐도 연수를 알기 어렵다. 그런데 사진으로만 보고 판정했다니 믿기 어렵다”라고 한 전문가는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김씨가 먹은 삼이 진짜 산삼인지조차 의심스럽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례에서 보듯 산삼만큼 진품을 따지기 어려운 약재(藥材)도 없다. 이유는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종(種)이 다양하다. 산삼은 일반적으로 천(天)·지(地)·인(人) 종으로 나뉜다. 천종은 산에서 태어나 수백 년간 대를 이어 내려온 산삼을 뜻하고, 지종은 사람이 키우던 인삼이 야생화한 것을 말한다. 지종은 다시 지종과 산장뇌(山長腦)로 나뉘는데, 지종은 인삼종이 야생에 가서 3~4대 이상 지났을 때 부르는 이름이다. 반면 산장뇌는 야생에서 1~2대쯤 지난 산삼을 호칭한다.

전문 감정인들도 진품 결론 쉽게 못내려

인종은 사람이 일부러 야생에서 키운 산양삼(山養蔘)을 뜻하는데, 씨를 뿌려 키운 씨장뇌(長腦)와 어린 인삼 묘(苗)를 이식해서 기른 묘장뇌(長腦)가 있다. 우리가 흔히 듣는 장뇌삼이 대부분 이 종에 속한다. 가짜라 할 수 있는 산삼이 이처럼 많다 보니 감정인들도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보고 또 보는 것이다.

8월18일 오후, 서울 한국산삼협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대부분 심마니로 구성된 산삼 감정위원 12명이 출품된 산삼 4백 뿌리를 살피고 또 살폈다. 그들은 출품된 산삼을 천·지·인 종 가운데 하나로 판정한 뒤, 협회가 나누어준 기록지에 그 내용을 적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것을 모아서 가장 많은 판정을 받은 종으로 결론지었다. 이 날 위원들이 뽑은 최상품은 강원도 화악산에서 캔 산삼. ‘100년 이상 된 천종’ 판정을 받았다.

한국산삼협회 이인식 이사는 “100년 이상 된 천종은 보통 1억 원 이상 간다. 그렇지만 오늘 판정받은 산삼은 근량이 부족해 7천만~8천만 원 정도 하리라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감정위원들은 보통 연수와 가격을 최소로 매긴다. 그러나 시중에서는 부르는 것이 값이다. “감정위원들이 천종·30년생·천만원이라고 감정하면, 시장에서는 40~50년생·1천5백만~2천만 원 정도에 거래된다”라고 김기환 소장(한국산삼감정협회 전시장)은 말했다.

산삼의 독특한 생김새도 진품 여부를 가리기 어렵게 만든다. 산삼은 널리 알려진 대로 반음지성 식물이다. 대개 배수가 잘 되는 땅에 자리 잡는데, 키 큰 활엽수(피나무·옻나무·가래나무·벚나무·물푸레나무·굴참나무·단풍나무 등)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곳을 특히 좋아한다. 심마니 김상철씨(35·정선군 화암리)는 “산삼의 75% 정도가 동쪽과 북쪽 사이에서 발견된다”라고 말했다.

산삼은 다른 식물과 달리 추위에 강하고, 무리를 안 짓고도 잘 자란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휴면(休眠)하는 버릇이 있다. 몸에 상처가 나거나 생장 조건이 열악해지면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까지 성장을 멈추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산삼의 뿌리 중에는 유난히 ‘변형’이 많다. 감정원들은 흔히 산삼의 뇌두를 보고 연수를 파악하는데,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산삼의 뇌두에 변형이 많다 보니 연수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뇌두는 1년마다 뿌리 위에 생기는 일종의 마디를 말한다(일부 전문가는 2~4년마다 1개씩 생긴다고 주장한다).

인삼보다 훨씬 ‘빠르고 센’ 효과

현재까지 알려진 산삼의 효과를 들여다보면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심마니협회 자료에 따르면, 산삼은 당뇨·간질환·혈압·암과 각종 부인병에 효과가 있다. 그 외에도 조혈 작용에 도움을 주며, 노화 방지·위장병·류머티즘·정력 증진·스트레스 저하 등에도 효과가 있다. 전 중앙대 인삼산업연구센터 연구교수였던 밝 훈 박사는 “옛날 한의학 서적에 언급된 인삼의 효과는 모두 산삼의 효과였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산삼에 실제 만병통치약 같은 효과가 있을까. 자생생명과학연구소 안덕균 소장(전 경희대 본초학교실 주임교수)은 “위암이나 심혈관 질환에는 확실히 효과가 있다. 그러나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된 효과는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8~10월에 캔 ‘가을삼(蔘)’과 나이가 많은 산삼이 사람에게 잘 듣는다고 덧붙였다.

심마니 김상철씨는 부친의 위장병을 산삼으로 고쳤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속병으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쇠약했다. 한번은 병원에 입원했는데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병세가 심각했다. 그때 마침 김씨가 산삼 몇 뿌리를 캐 아버지께 드렸다. “대여섯 뿌리를 드시자 기력이 살아나셨다. 그 뒤 몇 뿌리 더 드셨는데, 지금은 다시 약주를 드실 만큼 건강하다”라고 그는 소개했다.

밝 훈 박사는 산삼이 여러 질환에 효험을 나타낸다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것도 인삼보다 더 빠르게, 더 세게 효과를 나타낸다”라고 그는 말했다. 가령 인삼과 산삼에는 잠이 오게 하는 성분이 들어 있는데, 그 세기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실제 인삼은 먹으면 약간 졸리지만, 산삼을 먹은 일부 사람은 사흘씩 잠만 자는 명현 현상(약이나 약용 식물을 먹었을 때 나타나는 일시적인 증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산삼을 먹은 뒤 어지럽거나, 잠이 안 오거나, 열이 나거나, 몸살 증세가 나타나거나, 땀이 나거나, 코피가 나거나, 피부에 홍반(일명 삼꽃)이 나타나거나, 가려움증이 일거나 하는 것들도 모두 명현 현상이다.

산삼과 관련된 믿지 못할 이야기는 한둘이 아니었다. 과거에는 주로 ‘산신령이 나타나 무밭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는데, 아침에 그곳에 갔더니 산삼이 있더라’는 심마니의 꿈 이야기나 ‘남의 산삼을 훔쳐 먹으면 불구가 된다’는 소문 등이 많았다.

요즘은 ‘천종 산삼을 사기가 어렵다’는 말이 많이 떠돈다. 그만큼 가짜가 많다는 말이다. 국가가 공인하는 감정 전문 기관이 생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산삼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작업도 빨리 시작해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