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열기 뜨거운 아테네 선수촌 24시
  • 아테네·최용석 (굿데이 기자) ()
  • 승인 2004.08.1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사들의 사랑은 제우스도 못 말려
아테네 시 북동쪽 마로우시 지역에 자리 잡은 2004 아테네올림픽 선수촌은 작은 지구촌이다. 세계 2백2개국 1만6천여 선수가 머무르며 금메달을 따기 위한 꿈을 다지고 있다. 선수촌은 테러를 대비한 철저한 경비 속에서도 자유를 만끽하는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있다. 훈련을 위해 떠나는 선수들,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선수들, 잠시 여유를 찾아 산책하는 선수들로 24시간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고대 그리스 때 민회가 열렸던 ‘아고라’ 국제 광장을 지나면 1만5천㎡ 규모의 메인 식당 ‘필로세노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선수들에게 영양식을 공급하기 위해 끊임없이 음식들이 나오는데, 무료 뷔페 식당이다. 하루에 우유 15만ℓ, 달걀 30만개, 육류 1백20t, 식수 2백만ℓ를 소비하는 초대형 식당으로 2천5백여 가지에 이르는 세계 각국의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이곳은 하루 6만명분의 식사를 제공한다.

아시아 음식 코너 중에는 김치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저녁 늦게 식사를 하러 가는 일부 한국 선수들은 김치 맛을 보지 못한다. 일본과 중국 선수들이 김치를 선점해 한국 선수들에게까지 차례가 오지 않는 것이다. 이밖에도 올림픽 공식 업체인 맥도널드가 24시간 선수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햄버거도 선수들이 많이 찾는 메뉴다. 맥도널드 매장 내에서만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하루에 수천명이 이곳에서 간식을 즐긴다.

미국·이라크 선수들, 웃으며 반갑게 인사

선수단 숙소는 방을 8천8백여개 갖춘 아파트 2천2백92개로 구성되어 있다. 고층 아파트는 없고 모두 5층으로 지어졌다. 아테네올림픽 위원회가 고층 아파트를 짓지 못한 이유는 파르테논 신전 때문이다. 아테네 시는 국가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파르테논 신전이 어느 곳에서나 보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층 건물 건설을 허가하지 않는다. 시내에서도 20층 정도가 가장 높은 빌딩이고, 5~6층 건물이 대부분이다.

대낮에는 선수촌에서 여유를 찾는 이들을 보기가 힘들다. 강렬한 햇빛 때문에 선수들은 대부분 숙소에서 쉰다. 일부 북유럽 국가에서 온 선수들은 고국에서 보기 어려운 햇살을 만끽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에게 그늘이 없는 땡볕은 ‘고통’일 수밖에 없다. 선수촌에서는 그늘 한 점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허허벌판에 건물만 세워졌을 뿐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나 기타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게다가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선수촌은 거의 불가마를 연상케 한다. 한국 선수들도 대부분 에어컨이 가동되는 선수촌 숙소 안에서 머무르고 있다.

일부 국가 선수들은 선수촌에서도 테러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미국은 테러 대상이 될 것을 걱정해, 선수촌 아파트에 국기마저 내걸지 못하도록 지시하는 등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또한 미국 선수들은 무단으로 선수촌 밖을 나가지 말라고 권고받았다. 미국은 선수단 보호를 위해 자체 경호를 펴는 등 각별하게 신경을 쓰고 있다. 선수들에게도 테러 대비 지침을 내리고 매일 안전수칙을 설명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일본과 한국도 선수들에게 테러 예방 교육을 하고 책자를 나누어주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하지만 선수들 사이에서 이념과 국가는 큰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이라크 선수들은 선수촌에서 자주 마주치지만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웃는 얼굴로 서로를 대한다. 이들은 ‘전쟁이 하루빨리 끝났으면 한다’는 같은 바람을 가지고 운동선수 특유의 스포츠맨십으로 서로에게 접근하고 있다.

선수촌은 낮 시간보다 밤이 활발하다. 한국의 가을 날씨처럼 서늘한 바람이 불면 선수들은 밖으로 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가벼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선수들, 이야기꽃을 피우며 경쟁의 부담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선수들의 모습은 평화롭기만 하다. 각국 선수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인터넷 카페·당구장·오락실 등을 갖춘 ‘아테나 센터’와 ‘페보스 센터’. 선수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에게 e메일로 안부를 전하거나 스포츠 뉴스를 읽는다. 오락실에서는 스포츠 게임에 푹 빠져 있는 선수가 많다. 경기를 앞두고 긴장감을 해소하는 데는 역시 오락이 최고라는 것이다.

선수촌에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커플이 탄생하기 마련이다. 아테네 선수촌에서는 많은 선수들이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타국 선수들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말을 건다. 영화관·수영장·나이트클럽 등이 구비되어 있어 데이트를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미국 듀렉스 사가 콘돔 13만개를 아테네올림픽 선수촌 숙소에 무료 배포했는데 소비되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일부 눈이 맞은 서양 선수들은 선수촌 숙소에서 사랑을 나눈다. 숙소에 방이 3~4개여서 동료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용한다고 한다. 일부 선수는 관광객들과의 로맨스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이 섹스를 하는 것에 대한 찬반론이 팽배하지만, 젊은이들의 혈기는 아테네의 제우스신도 막을 수 없는 모양이다. 오히려 에로스신이 쏜 사랑의 화살이 여러 선수들에게 꽂혀 아름다운 사랑의 꽃이 피어나고 있다.

아테네 선수촌이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많은 선수들은 교통과의 전쟁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선수 운송을 담당하는 버스 기사들이 훈련장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이로 인한 각국 선수단의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

또한 일부 시설은 아직도 공사 중이어서 선수들이 불편을 겪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전사들이 머무르고 있는 아테네 선수촌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지중해의 햇살보다 더욱 뜨거워질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