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제발 잘못된 세상에 빌붙지 말고 바로잡아라!”
  • 김지영 기자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3.26 08:00
  • 호수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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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0주년 특별기획 - 대한민국, 길을 묻다 12]
《버선발 이야기》 출간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혼돈의 시대다. 혹자는 난세(亂世)라 부른다. 갈피를 못 잡고, 갈 길을 못 정한 채 방황하는, 우왕좌왕하는 시대다. 시사저널은 2019년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특별기획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계 원로(元老) 30인의 ‘대한민국, 길을 묻다’ 인터뷰 기사를 연재한다. 연재 순서는 인터뷰한 시점에 맞춰 정해졌다. ⓛ조정래 작가 ②송월주 스님 ③조순 전 부총리 ④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⑤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⑥김원기 전 국회의장 ⑦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⑧박찬종 변호사 ⑨윤후정 초대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⑩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⑪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⑫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 시사저널 고성준
ⓒ 시사저널 고성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검은 두루마기와 하얀 바람머리로 상징된다. 노동자, 농민, 빈민 등 민중 싸움터에 늘 자리하는 투사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도 맹추위 속에 광화문 촛불 현장을 지켰다. 이후에도 전국 곳곳의 투쟁 현장이 백 소장의 집이었다. ‘붓’을 들 시간이 좀체 나지 않았다. 그러다 겨우 짬이 났다. 비로소 가슴 깊은 곳에 담아뒀던 이야기 초고를 매듭지었다. 

그런데 2018년 4월, 덜컥 가슴이 아팠다. 병원에 갔더니 심장병이었다. 심장으로 통하는 관상동맥 2개가 완전히 막혔다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는 “이미 5~6년 전에 돌아가셨을 정도인데 어떻게 사셨는지 기적”이라고 했다. 9시간30분 동안 긴 수술을 받았다. 백기완 소장은 수술실에 들어가면서도 “나는 죽어도 깨어나야겠다. 이 이야기를 꼭 완결 지어야 한다”고 집필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고 한다. 

백 소장은 “살아나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찾은 게 원고지야. 원고지 가져오라고 하니까, ‘아니, 아버지, 아니, 선생님, 죽다가 살아나셨는데 무슨 원고집니까’ 하는 거야. 그래도 가져오라고 해서 몇 자씩 적었어. 기운이 있는 대로. 죽음의 고비를 넘어 제일 먼저 한 작업이 이야기를 쓴 거야. 이것만은 꼭 남기고 죽어야겠다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버선발 이야기》다. 1933년 황해도 은율, 구월산 밑에서 태어난 백 소장. 올해 87세에 새로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놨다. 10년 만의 신작이다. 

머슴 ‘버선발(맨발)’이 주인공인 민중서사다. 등장하는 모든 민중이 주인공인 민중예술이기도 하다. 판소리 운율도 느껴진다. 《버선발 이야기》에 나오는 머슴들의 간척지 개척 장면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묘사된 노동자들의 공장 작업 장면을 연상시킨다. 두 작품을 통해 봉건주의와 자본주의, 생산관계만 변했을 뿐 민중의 고단하고 피폐한 삶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지난 3월13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명륜동 ‘학림커피’에서 《버선발 이야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엔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과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등이 참석했다. 이수호 이사장은 “제가 아버님처럼 모시는 백기완 선생님은 늘 투쟁의 현장에 함께하신 운동가이자 활동가”라고 소개했다. ‘선생님이 불러서 온 게 아니라 자원해서 (기자간담회에) 왔다’는 유홍준 교수는 “선생님은 민중의 삶, 역사의 현장을 뚜벅뚜벅 걸어오셨다”며 “어떻게 체득하셨는지 저도 궁금하지만, 선생님의 살아 있는 언어도 우리가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백 소장은 이날 쇠약해 보였다. 목소리도 예전만 못했다. 그럼에도 간간이 나온 결기 어린 목소리와 삶에서 우려낸 농담은 여전했다. 백 소장은 “원고를 다 써놓고 보니까 감격 어렸다. 어젯밤에 이 책을 다 읽고 나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내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다 거짓”이라며 죽비를 내려치듯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사회는 송경동 시인이 맡았다.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에선 《버선발 이야기》 읽기운동을 벌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심상정 정의당 의원,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심재명 명필름 대표, 명진 스님, 임진택 연출가 등이 읽기운동에 동참했다. 

시사저널의 백 소장 인터뷰는 이틀 뒤인 3월15일 오전 11시 기자간담회가 열렸던 ‘학림커피’에서 스무 걸음 떨어진 ‘통일문제연구소’에서 진행됐다. 취재진은 이날 학림커피에서 산 커피 드립 백을 가지고 갔다. 백 소장이 학림커피에서 아메리카노를 즐긴다는 사실을 이틀 전 기자간담회장에서 얼핏 들었기 때문이다. 학림커피에선 백 소장이 오면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틀어준다고 했다.  

인터뷰 전날(3월14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계훈제 선생 묘소에 다녀온 백 소장은 거동이 불편해 보였다. 취재진이 도착했을 때도 방에 누워 있었다. ‘어렵사리’ 일어나서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에서 취재진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백 소장은 취재진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기자가 사전에 보낸 인터뷰) 질문지를 보니까, 너무 시사적인 것에 관심이 많더라. 그러지 말고 조금 근본적인 질문을 주고받았으면 좋겠어. 《버선발 이야기》도 좀 하고…. 시사 문제에 대한 대답도 다 상식적이잖아. 다시 활자화할 필요도 없거든.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게 진짜 시사적이지.” 

백 소장은 거시적인 질문과 응답이 오가길 바랐다. 그래서 지엽적이고 어찌 보면 자잘한 질문들은 뺐다. 이날 인터뷰는 1시간30분가량 이어졌다. 백 소장은 인터뷰하는 동안 앉아 있다가 반쯤 모로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 앉기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잘못된 세상’을 향해선 호통을 치기도 했고, 옛일을 떠올릴 땐 목소리에 눈물이 어려 있었다.  

기자는 더 묻고 더 많은 혜안과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백 소장은 “내가 기운이 없어. 훗날 더 얘기해”라며 체력적으로 힘들어했다. 하는 수 없이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 호칭은 ‘백기완 소장님’이 아닌 ‘선생님’으로 진행했다. 

3월15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서울 명륜동 통일문제연구소 앞에서 사진촬영에 응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3월15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서울 명륜동 통일문제연구소 앞에서 사진촬영에 응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 보입니다. 어떠신지요.

“나처럼 오래 산 사람한테 건강이 어떠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그저 목숨이 붙어 있으니까 사는 것뿐이야. 사람은 나이테가 굵어갈수록 자연스럽게 탈(병)이 생기게 마련이야.”

지난해 심장 수술을 받고 힘드셨을 텐데 책까지 쓰셨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지나가시면서 하신 말씀도 다 양식으로 들렸거든요. 내가 어렸을 때 가난해서 영양 상태가 안 좋았던 모양이야. 그때 학질이라는 병에 걸렸어. 하루걸이라고도 하고 서양 말로 말라리아야. 더운 여름에 하도 춥고 떨려서 이불 덮고 하루 지나면 괜찮아졌다가 다시 하루 지나면 도졌지. 

일제 식민지 시대니까 먹을 게 뭐 있겠어. ‘배가 고프다’고 하면 어머니 말씀이 ‘자기 배만 부르고 자기 배만 따뜻하면 키가 안 큰다’고 그래. 키가 안 크는 게 가장 무서운 거야. 빨리 커서 어른이 되고 싶은데 키가 안 크면 안 돼. 우리 어머니는 다 굶고 있는데 너만 뭘 먹고 있으면 키가 안 큰다고 하시는 거야. 어머니가 나를 달래주시려고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는데 조금씩 크면서 생각해 보니까, 정말로 좋은 말씀이시더라고. 공자, 맹자, 예수, 부처 있지만 그런 말 한 사람은 없어. 우리 어머니 낫 놓고 기역자도 몰랐거든. 그런데 그 말씀이 의미 있었단 말야.”


“자기 배만 부르면 키가 안 커!”

예전에도 가끔 어머니 말씀을 하셨는데 어머니로부터 많은 걸 배우신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아이를 어떻게든 좋은 학교 보내고 좋은 직장 보내서 월급 많이 타게 하려고 해. 그걸 성공이라고 생각해. 옛날 사람들은 그저 건강하게 잘 자라면서 사람으로 커가는 걸 바랐거든.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나 권력이 없으면 죽으니까, 돈과 권력을 거머쥘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그렇게 직접 말하진 않지만 그걸 염두에 두고 애들을 기르는 거야. 내가 자랄 적만 해도 ‘모두가 배고픈데 너만 고기 먹고 배부르면 키가 안 큰다’고 배웠어. 요새 어른들한테 들려줘야 하고 애들한테도 들려줘야 해. 자기 배만 부르고 자기 등만 따뜻하면 키가 안 큰단 말이야.”

아이를 그렇게 안 키우고 싶어도 자기 아이만 뒤처질까봐 걱정돼 마지못해 그렇게 키우는 부모도 많습니다.

“너도나도 좋은 학교 가서 좋은 직장 가서 돈을 많이 벌라는 거야. 이건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그 모순을 더욱 극대화시키겠다는 거야. 그걸 부수는 옛날 어르신들의 좋은 얘기가, 우리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얘기가, 자기 배만 부르고 자기 등만 따뜻하면 키가 안 큰다야.”

선생님께선 옛 어른들 이야기에서 배운 게 많으신 것 같습니다.

“책도 읽고 이름 있는 사람들도 만나보고 그랬는데 별로 감명이 안 와.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 주신 얘기가 자꾸 나를 이끄는 듯한 느낌이 들어. 세월이 지나서 구십 가까이 다 됐고 얼마 못 살 텐데, 이걸 요즘 젊은이한테 들려주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잘 알다시피 요즘도 오래 살지 못하고 죽는 노동자들이 많잖아. 그런 현장엔 꼭 가는데 참 안타깝고 눈물겨워. 노동자들이 절망하고 좌절도 하는데 그 사람들한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어. 그게 바로 《버선발 이야기》야.”

노동자들에게 들려주시고 싶은 이유는 뭔가요.

“그게(《버선발 이야기》) 노동자 이야기니까. 요새 소시민이 되고자 죽어라 공부하는 사람들, 공부를 시키고자 하는 부모들한테 버선발 얘기를 남겨주고 싶었단 말이야. 며칠 전에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책을 다시 읽어봤어. 무슨 과장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야. 책을 읽으면서 계속 눈물이 났어.”

왜 눈물이 나시던가요.

“진짜 사람 얘기더라고. 사람의 목숨이 꿈틀거리는데 그냥 꿈틀거리는 게 아냐. 댄목숨(죽은 목숨, 반생명)과 싸우는 참목숨이 꿈틀거리는 이야기더라고. 그냥 사람 이야기가 아니야. ‘내가 썼기 때문에 많이 읽도록 해야겠다’ 이런 게 아니야. 진짜 참목숨의 이야기야. 댄목숨, 반목숨과 싸우는 참목숨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 댄목숨과 싸워서 참목숨이 이기는 이야기야. 사실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의미가 있을 거야.”

《버선발 이야기》를 읽어보면 ‘네 거 내 거가 따로 없다’며 공동소유를 강조하는 대목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이 책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민중사상은 무엇입니까.

“사람만 짐승이 아니고 미생물도 짐승이야. 목숨이니까. 그런데 어떤 짐승이든 자기가 살 집, 자기가 사는 터만 자기 것이라고 해. 그 이상의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짐승은 없어. 사람만 자기 집 말고도 다른 땅을 가지고 자기 거라고 해. 그게 내 거라는 거야. 이 얘기는 불경에도 성경에도 과학적 사회주의에도 안 나와.”

인간의 강한 소유욕이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내 것도 내 것이고 남의 것도 자꾸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그래. 더 부자가 되려고 하잖아. 그것이 의욕을 촉발시켜 경제가 좀 활성화됐다고 해. 하지만 그렇게 풀이하는 건, 경제만능주의야. 사람만능주의가 아니야. 어떻게 된 세상이 경제만능이 사람만능을 능가해. 경제적으로만 잘살면 잘된 세상이라고 하는데 그건 거짓말이라는 거야.” 

3월13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학림커피에서 열린 《버선발 이야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은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오른쪽은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 시사저널 최준필
3월13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학림커피에서 열린 《버선발 이야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은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오른쪽은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 시사저널 최준필

“어떻게 경제만능이 사람만능을 능가해”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들의 바랄(꿈)’은 어떤 세상입니까. 

“내 생각이 아니고,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듣던 얘기야. 그것이 바로 노나메기 세상이야. 노나메기라는 건 내가 머슴이라고 나만 일해선 안 된다 이거야. 사람이라면 똑같이 땀을 흘리자 이거야. 누구는 돈놀이하고 땅에서 나오는 이자로 떵떵거리고 잘사는데, 그게 좋은 것 같아도 아름답지 못하다 이거야.”

‘노나메기 세상’을 좀 더 설명해 주십시오.

“나만 일 시켜먹지 말고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고. 다 같이. 사람만 잘살아서는 안 돼. 우리나라만 잘살아서는 안 돼. 인류가 잘살아야 해.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래서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사는 올바른 세상. 세상을 우리말로 벗나래라고 해. 그게 우리 세상이야.”

선생님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 ‘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입니다. 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가 얼마나 됐다고 보십니까.

“아직도 완만하게 답보 상태지. 중요한 것은 남의 것을 빼앗은 것도 내 것이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야. 500년 전에 빼앗은 것도 내 것이고 5000년 전에 빼앗은 것도 내 것이야. 내 것에 대해선 절대적인 권한을 줬어. ‘내 사유재산을 침범하지 말라’고 하면 거기에 ‘절대’ 진리가 있는 것 같아. 남의 사유재산 침범하면 안 되지, 그런데 그때 남의 사유재산이 진짜 남의 사유재산이냐 이거야. 빼앗아온 것이다 말이야. 속여서 뺏어오고 때려죽여서 뺏어오고. 그것이 어떻게 내 거야. 거기에 ‘절대’를 넣어선 안 돼.”

우리에게 뭔가 깨우침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올바로 만들겠다는 깨우침이 중요해. 그걸 알기 쉽게 풀어쓴 게 《버선발 이야기》야. 내가 썼다고 꼭 읽으라는 게 아니야.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얘기가 버선발 얘기라니까.”

민중을 ‘니나’라고 표현하시는데 그 의미를 말씀해 주십시오.

“니나라고 나오는 데가 딱 한 군데밖에 없어. (백 소장은 이 대목에서 민요 《늴리리야》를 불렀다.) ‘니나노~늴리리야 늴리리야 니나노~.’ 그 니나가 바로 민중이야. 다 없어졌는데 거기만 남았어. 니나는 생명이 아닌 것과 싸워서 참생명 얻는 것을 말해. 그게 민중이야. 버선발 얘기는 참생명, 니나의 얘기야.”

2017년에 문정현 신부님과 함께 내신 책 《두 어른》에 보면 ‘독점자본주의는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로 갈라놨는데 이것은 반인간적인 범죄’라고 나옵니다. 왜 반인간적인 범죄인지요. 

“예전에 울산 노동자 5만 명 정도가 모인 집회에 가서 한 말이 있어. 그때 내가 ‘노동자들 속에 정규직이 있고 비정규직이 있다면서요’라고 물으니까, ‘네’라고 대답해. 그래서 내가 옛날 얘기를 해 줬지. ‘옛날엔 머슴도 참머슴이 있고 막머슴이 있었다. 사랑방에서 같이 자다가 막머슴 옷에서 냄새난다고 참머슴과 싸움이 붙었어. 주인은 막머슴에게 더러운 옷을 입혔어. 하지만 보리밥만큼은 한 숟갈 더 줬지. 참머슴은 옷을 깨끗이 입힌 편이지. 둘이 싸우니까, 주인이 왜 ‘시끄러우냐, 잠을 못 자겠다’ 한마디 했지. 그 순간 조용~. 주인이 머슴끼리 싸움을 붙이는 거야. 머슴놈들이 하나같이 똑같은 생각을 하면 위험하거든. 막머슴과 참머슴을 갈라놔야 한다. 요즘 노동자들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놓은 것은 옛날 막머슴과 참머슴을 갈라놓은 것과 같은 것이다. 옛날 돈 많은 놈들의 수법을 그대로 발전시켜온 것이다. 속지 마라. 노동자는 하나야. 사람은 다 똑같다’ 그렇게 말했지.” 


“제발 니나(민중)는 썩물이 되지 마라”

민중은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의 잘못된 체제에 두 발만 붙이고자 하면 ‘썩물’이 돼. 자기만 썩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도 썩게 돼. 제발 니나들은 썩물이 되려고 하지 마라. 제발 잘못된 세상에 빌붙을 생각 하지 마라.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을 생각을 하라고. 니나들한테 해 주고 싶은 새김말이야. 좌우명이란 말야.”

‘노나메기 문화원’을 만드시려는 것으로 압니다. 어느 정도 진행됐나요.

“돈을 몇 푼 만들긴 했는데 조그만 땅도 집도 있어야 하잖아. 천문학적인 돈이야. 《버선발 이야기》가 좀 팔리면 한 푼도 안 쓰고 문화원 만드는 데 다 보태려고 하지. 그렇게도 커다란 집이 많지만 ‘노나메기 문화원’ 하나가 없다는 게 무엇인 줄 알아. 이땅 니나들의 꿈과 하제(희망)를 죽이고 있는 잿더미(폐허)라는 갓대(증거)라, 니나들이 퍼뜩 깨우쳐 주었으면 좋겠어.”

백기완 소장은 인터뷰가 끝날 무렵 취재진에게 ‘노래 선물’을 줬다. “내가 마지막으로 노래 하나 부를 테니까 듣고 가”라며 “내가 초등학교 졸업했는데 중학교는 6년제인데 3년밖에 못 다녔어.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때야. 왜놈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을 때 애들끼리 노래자랑이 벌어졌어. 다른 놈들은 다 일본놈 노래를 부르는데, 나보다 서너 살 많은 장가든 이모라는 놈만 우리나라 날노래를 부르는 거야. 날노래는 날아다니는 노래란 말이야. 유행가.”

“눈물로 고향역을 떠나오는 밤
북만주 벌판에서 내가 웁니다
아아~싸우는 조국이여 
아아~피 흘리는 산천이여
털벅 털벅 털벅 헤매입니다”

백 소장은 “이 노래 딴 데 가선 못 들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채원희 통일문제연구소 활동가를 부르며 “원희야~ 기자들한테 만원씩 줘라. 짜장면 먹고 가게”라며 취재진을 정감 있게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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