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뿜는 메이저 리그 '소방수 경쟁'
  • 기영노(스포츠 평론가) ()
  • 승인 2001.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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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시즌 앞두고 마무리 투수 역할 커져…
리베라·사사키·김병현이 대표 선수
프로 야구가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 장기 페넌트 레이스를 치르고 있는 프로 야구 팀들은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기 위해 경기마다 피를 말리는 승부를 펼치고 있다. 더불어 각팀 마무리 투수 비중이 더욱 커지고 있다.


올해 메이저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팀들은 예외 없이 뛰어난 마무리 투수를 확보하고 있다.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선두 뉴욕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 서부 지구에서 메이저 리그 최고 기록인 1백16승에 도전하고 있는 시애틀 매리너스의 사사키 가즈히로, 내셔널 리그 최다승 팀인 중부 지구 선두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빌리 와그너오, 서부 지구 1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김병현이 대표 선수들이다.


‘비밀 병기' 한가지 이상 갖춰야 ‘1급 마무리'




김병현(맨 왼쪽)과 사사키(왼쪽) : 한국과 일본 출신 두 특급 소방수가 소속 팀의 좋은 성적을 이끌고 있다.


이 투수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어떤 투수가 마무리를 맡는 것일까. 과거에는 대부분 선발 투수로 내보내기에 약간 부족한 투수를 마무리 투수로 활용했다. 그러나 현대 야구에서는 마무리도 하나의 완전한 전문 영역이 되었다. 물론 연봉도 적지 않게 받는다.


마무리 전문 투수들은 엄청나게 공이 빠르거나, 싱커(플레이트 근처에서 급하게 떨어지는 공)·스크루볼(느린 변화구)·너클볼(타자 몸쪽으로 휘어 들어가는 공) 등 어느 것 한 가지라도 특출한 장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다른 구질은 보잘것없어도 한 가지만은 타자가 좀처럼 칠 수 없어야 한다. 경기마다 타자 3∼6명을 상대로 20개 안팎의 공을 던지기 때문에 한 가지 무기만으로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아메리칸 리그에서 올해 경이적인 승률을 올리고 있는 시애틀 매리너스의 일본인 투수 사사키 가즈히로(9월21일 현재 41세이브)의 포크볼은 난공 불락이다. 사사키의 포크볼은 그냥 두면 대개 볼이지만, 타자들 눈에는 스트라이크로 보이기 때문에 헛스윙하기 일쑤다. 설령 배트에 맞더라도 범타로 끝난다.


메이저 리그 최고 마무리 투수로 군림하고 있는 뉴욕 양키스 마리아노 리베라(43세이브)의 직구는 천하 일품이다. 그의 직구는 157∼158km를 넘나든다. 구질도 떠오르는 직구와 싱커성 직구 두 가지이다. 타자 처지에서는 빠른 볼에 대처하기도 어려운데, 공이 가라앉거나 떠오르니까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다. 인종 차별 발언을 한 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트레이드된 존 로커도 강속구가 무기이다. 직구 속도가 160km에 이를 만큼 빠르다 보니, 각도가 밋밋한 변화구까지 먹힌다.


내셔널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롭 넨 투수(39세이브)는 1997년 플로리다 마린스를 우승으로 이끌 때 비공식 세계 신기록인 시속 164km의 ‘광속구'를 던졌다. 롭 넨의 구속은 지금도 최고 155km까지 나온다(메이저 리그 공식 최고 기록은 박찬호의 우상인 놀란 라이언으로, 해군 장비를 이용해 공의 스피드를 측정한 결과 시속 161.5km가 나왔다). 롭 넨의 공은 빠른 데다 무게까지 있어 설사 공을 친다 해도 그리 멀리 나가지 않는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트레버 호프먼의 체인지업은 마구와 다름없다 호프먼은 한때 155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뿌려댔으나, 지금은 직구 구속이 140km를 약간 웃도는 반면, 체인지업을 135km 안팎으로 던져 타자들을 농락하고 있다. LA다저스의 성질 급한 강타자 게리 셰필드는 호프먼의 체인지업에 농락 당해 겨우 18타수 1안타로 ‘고양이 앞의 쥐' 신세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빌리 와그너는 좌완 투수인데도 160km에 가까운 불 같은 강속구를 던지고 있다. 빌리 와그너의 키가 겨우 176cm라는 점을 감안하면 불가사의한 스피드가 아닐 수 없다. 최근에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김병현 투수의 무브먼트(타자 앞에서 변하는 공의 움직임)가 연구 대상이다. 키가 작은 선수(176cm)가 언더 핸드라는 특이한 폼으로 던지는 공이 마치 뱀이 꿈틀거리듯 들어오기 때문에 좀처럼 공략하지 못하고 있다. 메이저 리그에서 배트 스피드가 가장 빠르다(148km)는 시카고 컵스의 새미 소사는 김병현에게 9타수 무안타(삼진 5개)이다.


마무리 투수는 선발 투수와는 다른 신체적·정신적 특질을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 언제라도 등판할 수 있도록 몸이 빨리 풀려야 하고, 매 경기 던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다 1∼2점 차 경기에 나서는 경우가 많으므로,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최상의 피칭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워밍업 시간도 짧아야 한다.


메이저 리그에서 이같은 조건을 모두 갖춘 투수로는 신시내티 레즈 등에서 활약했던 리 스미스 투수가 꼽힌다. 리 스미스는 생애 통산 4백76 세이브를 기록해, 이 부문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태산이 무너져도 꿈쩍하지 않을 것 같은 두둑한 배짱과 150km의 스피드, 자로 잰 듯한 제구력, 그리고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너클성 커브는 ‘마무리 투수의 고전(古典)'으로 통한다.


한국과 일본 프로 야구에서 활약한 선동렬도 마무리 투수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갖추었다. 배짱이 좋고, 150km가 넘는 강속구에 제구력도 뛰어났다. 게다가 140km짜리 슬라이더는 눈으로 보고도 못 칠 정도로 위력적이다. 선동렬이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했다면 최소한 LA 다저스의 제프 쇼 정도는 던졌을 것이다. 제프 쇼(34세이브)는 올해 내셔널 리그 세이브 부문 2위를 달리고 있다. 공의 빠르기는 145km안팎에 불과하지만, 제구력은 메이저 리그 마무리 투수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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