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많이 보면 눈 나빠진다고?
  • 안은주 기자 (anjoo@e-sisa.co.kr)
  • 승인 2001.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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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은 '조상 탓', 환경 영향은 미미…
'잠잘 때 끼는 렌즈'만 써도 교정 가능


무더위가 물러가면 눈은 바빠진다. 더위에 늘어졌던 몸과 마음을 추스르다 보면, 눈이 피로해지기 십상이다. 독서의 계절이니 책 한 권이라도 더 보아야 하고, 밀린 작업을 하려고 컴퓨터 앞에 진득하게 앉아 있는 시간도 늘어날 터이다. 몸과 마음이 바빠지는 만큼 눈은 피곤하다.


그러나 '눈의 업무'가 늘어난다고 해서 시력이 떨어질까 봐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시력에 관한 속설 대부분은 낭설이다. 책·텔레비전·컴퓨터 모니터는 시력을 떨어뜨리는 주범이 아니다.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거나, 흔들리는 차안에서 책을 읽는다고 해서 좋았던 눈이 갑자기 나빠지지는 않는다. 지나치게 오래 독서를 하거나 모니터를 보면 눈을 깜박이는 횟수가 줄어 눈이 건조해지므로 피로감을 느낄 뿐이다. 또 아이들이 가까이에서 텔레비전을 본다고 해서 눈이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눈이 나쁘기 때문에 자꾸만 텔레비전 앞으로 다가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환경에 영향받는 이들은 하루 종일 컴퓨터 작업을 하는 사람이나 한쪽 눈을 집중적으로 사용해 시계를 고치는 특정 직업인뿐이다. 그나마 약한 근시가 올 뿐이다. 대부분 시력은 타고난다.


한국인 10명 중 7명은 근시




눈이 나쁘다는 것은 근시·원시·난시를 말한다. 갓난아이 대부분은 안구가 작아서 초점이 망막 뒤에 맺히는 원시이다. 성장하면서 안구가 점점 커지면 정상이 된다. 안구가 정상보다 크거나 작아 굴절력 차이로 이상이 있으면 눈이 나빠진다. 눈에 빛이 들어오면 망막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각막과 수정체가 굴절하게 된다. 안구의 길이가 너무 길거나 짧으면 초점이 망막 앞(근시)이나 뒤(원시)에 맺힌다. 초점이 망막 외에 맺힐 경우에는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는 난시가 된다.


시력을 '조상 탓'으로 보는 까닭은 근시 대부분이 성장기에 발생한 뒤 고정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눈이 나빠져 안경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또 학습량이 많은 고등학생 때보다 중학생 때 오히려 근시 발생률이 더 높다. 인종마다 근시 발생률이 다른 점도 시력이 환경이 아니라 유전자에 영향을 받는다는 유전설을 뒷받침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근시가 전체 인구의 30%에 불과하지만, 한국·중국·일본의 경우 70% 이상이 근시(한국인 10명 중 7명은 근시가 있고, 이 가운데 시력 교정이 필요한 사람이 40%를 차지한다)이다.


따라서 제아무리 눈이 좋아지는 약이나 음식을 먹고 눈 체조를 열심히 해도 한번 나빠진 시력을 회복하기는 어렵다. 이진학 교수(서울의대·안과)는 "시력 보호 텔레비전·좋은 독서법·눈에 좋은 독서용 조명등·약물은 효과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물론 비타민이나 무기질이 부족하면 시력이 저하될 수 있다. 그러나 평소 일반 가정의 식단대로만 먹어도 영양 결핍으로 인한 시력 저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교수는 덧붙였다. 다만, 눈을 쉬지 않고 과도하게 사용하면 눈이 피로해져 전신 피로감을 느낄 수 있으므로 쉬어 가며 거리를 두고 책이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좋다.


나빠진 눈을 고칠 방법은 시력 교정 수술밖에 없다. 최근 몇 년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라식 수술을 비롯해 엑시머 레이저·라섹 수술이 있다.


시력 교정 수술은 흔히 검은 눈동자라고 불리는 각막을 레이저로 깎는 방법이다. 눈에서 굴절력이 가장 큰 각막을 깎아냄으로써 수정체를 통과한 상이 망막에 정확하게 맺히도록 조절하는 것이다. 근시는 각막의 중앙부를, 원시는 각막의 주변부를 깎아낸다. 난시는 울퉁불퉁한 각막을 평평하게 깎는다.


이 같은 시력 교정 수술은 각막을 변형시키는 것이어서 18세 이상 성인에게만 시술한다. 각막을 레이저로 깎아 시력을 1.0에 맞추어 놓더라도, 안구가 성장해 더 커지면 다시 근시가 된다.


레이저를 이용한 수술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끄는 방법은 라식이다. 라섹이나 엑시머 레이저 수술(PRK)에 비해 가격은 비싸지만, 부작용과 통증이 적고 회복이 빠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축구·농구·유도·권투 등 격렬한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라섹이 더 적합하다. 라식 수술을 받고 격렬한 운동을 할 경우 잘라내었던 각막 절편이 눈에서 떨어져 나갈 위험이 있다. 하지만 라섹은 각막을 잘라 내는 것이 아니라 상피 세포층만 벗겨 내므로 각막 절편이 떨어질 리 없다. 근시가 심하거나, 각막이 얇은 사람, 또 보강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라섹이 적합하다. 엑시머 레이저 수술은 레이저를 이용한 초기 수술 방법인데, 단점이 많아 최근에는 잘 이용하지 않는다.


레이저 수술 받으면 부작용 없이 시력 회복




레이저 시력 교정 수술만 받으면 모두 안경이나 콘택트 렌즈를 벗어 던질 수 있을까. 국제적인 연구 결과에 따르면, 95%가 운전이 가능한 시력인 0.6 이상을 회복한다. 1.0 이상 시력이 나올 확률은 50∼90%이다. 수술한 뒤 시력은 수술 전 근시가 얼마나 심했느냐에 달려 있다. 예컨대, 수술 전에 안경이나 콘택트 렌즈로 교정한 최대 시력이 0.7이었다면, 수술 뒤에도 최고 0.7 정도의 시력을 얻을 수밖에 없다. 시력이 나쁠수록 각막을 많이 깎아내야 하는데, 깎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엄승용 원장(드림성모안과 강남점)은 "레이저를 이용한 시력 교정 수술은 안정적인 의료 기술이다.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고 최대 효과를 볼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1백60만명 정도가 레이저 시술을 받았는데, 실명한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수술합병증으로 시력이 오히려 떨어져 다시 각막이식술로 시력을 회복한 예는 더러 있다. 수술 환자 100명 가운데 한둘은 야간 눈부심이나 번져 보이는 현상 같은 부작용에 시달리기도 한다.


또 젊어서 레이저 수술을 받더라도 40대 이후에 찾아오는 노안은 피할 수 없다. 가벼운 근시인 사람은 노안이 오더라도 평소 쓰던 안경만 벗으면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레이저 시력 교정 수술을 받은 사람은 노안이 오면 근거리 작업을 할 때 돋보기를 써야 한다.


레이저를 이용한 시술 외에도 시력을 회복할 수 있는 신기술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활발하지 않지만 조만간 상용화할 가능성이 높은 시술법으로 안내 렌즈 삽입술과 투명 수정체 적출술을 꼽을 수 있다.


안내 렌즈 삽입 등 신기술 등장




안내 렌즈 삽입술은 시력을 교정하기 위해 눈 속에 렌즈를 집어넣는 수술이다. 특수하게 제작한 인공 렌즈를 눈 안의 수정체와 홍채 사이에 끼워넣는 누비타 렌즈가 있고, 수정체 앞에 삽입하는 스타 렌즈가 있다. 이 방법들은 현재 미국식품의약국(FDA) 공인을 기다리고 있다.


투명 수정체 적출술은 백내장 수술과 비슷한 방법으로 눈 안의 수정체를 제거하고 인공 수정체를 삽입하는 수술이다. 백내장 수술과 다른 점은 혼탁하지 않은, 비교적 맑은 수정체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수술 다음날부터 바로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는 반면, 두 눈을 동시에 수술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투명 수정체 적출술은 그동안 백내장 수술을 통해 의료진이 풍부한 임상 경험을 쌓아 비교적 안전하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송만성 원장(오세오 안과 압구정점)은 "미약한 백내장이 있는 40세 이상이나 노안이 시작된 사람이라면 투명 수정체 적출술을 부담 없이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안전하다 해도 수술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이라면 잠잘 때만 착용하는 특수 렌즈를 쓰면 된다. 자는 동안 드림 렌즈를 착용하면, 낮에는 눈 밝은 사람이 된다. 1998년 미국식품의약국 공인을 받은 드림 렌즈는 특수 콘택트 렌즈로, 각막을 눌러주는 작용을 한다. 레이저로 각막을 깎아 내면 시력이 교정되는 것처럼, 일시적이나마 렌즈로 각막을 눌러줌으로써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 드림 렌즈는 중앙 부분이 착용자의 도수에 맞게 볼록하게 제작되어 잠자는 동안 각막을 눌러준다. 하룻밤 착용하면 2∼3일간 안경과 렌즈를 벗어 던지고 생활할 수 있다.


특히 안구가 덜 성장해 레이저 시력 교정을 받을 수 없는 어린이들에게 권할 만하다. 어린 아이가 드림 렌즈를 사용할 경우, 근시가 진행되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그러나 시력 0.1∼0.7 정도에서만 효과가 있고, 근시가 심하면 효과를 얻기 어렵다.


40대부터 진행되는 노안도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려 일부 해결할 수 있다. 노안은 대개 수정체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발생하는데, 수술로 수정체 능력을 회복시킬 수 있다. 그러나 노안 회복술의 경우 아직 기술 발전이 더뎌 성공률이 30∼50% 선에 그치고 있다. 대다수 안과 전문의들은 단지 돋보기를 벗어 던지기 위해서 수술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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