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 만점 항공 스포츠, 패러글라이딩
  • 오윤현 기자 (noma@e-sisa.co.kr)
  • 승인 2001.09.0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름 밑까지 오르는 '짜릿한 놀이'…
3∼4일 배우면 초보자도 비행 가능


서울 역삼동에서 사업을 하는 경정호씨(45)는 안 해본 운동이 거의 없다. 수상스키·윈드서핑·스노보드·스키·골프…. 그러나 무엇을 해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몇 년 전 그는 마음에 꼭 드는 운동을 찾아냈다. 1989년부터 본격 보급된 패러글라이딩이었다. 경씨는 "사계절 내내 즐기고, 탈 때마다 쾌감을 맛볼 수 있어 요즘도 일요일마다 하늘에 떠 있다"라고 말했다.




경씨처럼 더 높이, 더 빨리, 더 신나는 모험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 8월21일 오후, 날개클럽(www.nalgaeclub.co.kr)의 윤 청 회장(43)과 함께 패러글라이더 활공장이 있는 경기도 양평의 유명산 정상에 올랐다. 가는 길은 험했다. 산 중턱에서부터 트럭은 폭우로 생겨난 도랑과 럭비공 만한 돌들을 넘느라 쉴 새 없이 헐떡거렸다. 마침내 고랭지 채소가 심어진 800m 고지에 오르자 20∼30대 10여명이 모여 앉아 있었다. 양수리 쪽을 바라보며 하늬바람(서풍)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고지에서 보는 초가을 자연은 푸근했다. 멀리 남한강이 은빛으로 반짝거렸다.


10분쯤 지났을까. 어지럽게 불던 바람이 맞바람으로 바뀌자 패러글라이더 한 대가 땅을 박차고 올랐다. 새떼처럼 몇 대가 연이어 날아오르자, 날개클럽 윤 청 회장이 주머니에서 풍속계를 꺼내들었다. 풍속계는 시속 7∼8km를 가리켰다. 패러글라이더를 타기에 가장 좋은 바람 속도는 10∼15km, 조금 약한 바람이었다. 그러나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멀리 거뭇거뭇한 구름이 보였던 것이다.




윤회장은 "시속 5km 이상으로 꾸준히 불어주기만 하면 별 문제가 없다"라며 동행한 회원 네 사람에게 장비를 펼치라고 말했다. 경정호·신일호(39)·조정숙(39)·유준상(35) 씨가 트럭에 싣고 올라온 배낭을 열자, 개인 장비가 나타났다. 기체·하네스·헬멧·비상 낙하산·무전기·고도계·풍속계…. 윤회장이 개개인의 장비를 살펴본 뒤 "이륙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그 사이 다시 바람이 방향을 잃고 갈팡질팡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장비를 눈여겨보았다. 기체는 크기가 조금씩 달랐다. 눈대중으로 너비가 6∼7m, 높이가 2∼3m 되어 보였다. 하네스는 커다란 배낭처럼 보였는데, 보기보다 중요한 장비였다. 안에 쿠션 처리가 되어 있어 하늘에서는 의자 역할을 하고, 착륙 때는 완충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헬멧에는 송·수신기가 부착되어 있었고, 고도계는 상승·하강할 때 각기 다른 소리를 내어 위험을 경고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비상 낙하산은 최악의 사태에만 펼칠 수 있는데, 경정호씨는 지름이 3∼4m 된다고 말했다. 경씨는 "그동안 비상 낙하산을 모두 일곱 번 펼쳤다"라고 덧붙였다. 석 달 전에도 펼쳤는데, 그는 '그 덕에 왼쪽 팔이 탈골하는 부상만 입었다'고 말했다. 비행한 지 2년 된 유준상씨는 패러글라이딩이 운전과 똑 같다고 말했다. 초급자일 때는 사고가 거의 안 나는데, 2∼3년차만 되면 사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유씨는 "무리해서 높이, 빨리 날려고 하면 추락한다"라고 말했다. 전 공군사관학교 교수 이수열씨에 따르면, 패러글라이더는 난기류에 날개가 접힐 수 있고, 추락할 때 충격을 완화해줄 골조가 없어 사고율이 상당히 높다. 사망 사고도 꽤 있는 편이다.


다시 하늬바람이 불어왔다. 맨 먼저 신일호씨가 패러글라이더를 땅바닥에 펼치고, 바람을 등에 졌다. 신씨는 줄 여러 가닥을 모은 라이저를 꽉 움켜쥐었다. 그런 다음 라이저를 힘껏 들어올렸다. 그 순간 기체가 펄럭거리며 일어섰다. 신씨는 재빨리 몸을 180° 돌려 힘껏 언덕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기체와 함께 신씨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몸이 지표에서 10m쯤 떠오르자 신씨는 허공에서 두 발과, 양손에 잡은 끈을 이용해 고도와 방향을 조정하기 시작했다(오른쪽 줄을 잡아당기면 오른쪽으로, 왼쪽 줄을 잡아당기면 왼쪽으로 돈다. 양쪽 줄을 다 잡아당기면 속도가 줄고, 양쪽 줄을 느슨하게 하면 속도가 붙는다).




뒤이어 유준상·경정호·조정숙 씨가 땅을 박찼다. 100여 차례 비행한 조정숙씨는 몸무게가 50kg도 안되어 보였는데, 땅을 박찰 때는 마치 날쌘 솔개 같았다. 조씨의 기체가 하강 곡선을 그리자 윤 청 회장이 재빨리 무전을 날렸다. 오른쪽으로 돌아 고도를 높이라고 말하자, 노란 버드나뭇잎처럼 보이는 패러글라이더가 부드럽게 U턴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도를 높였다.


윤회장은 수시로 풍속과 회원들의 '날개'를 관찰했다. 회원들은 윤회장의 지시에 따라 때로는 사냥감을 노리는 매처럼 허공을 맴돌다가, 때로는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갈매기처럼 낙하하기도 했다. 패러글라이딩이 단순한 비행이 아니라,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며 바람이 주는 쾌감을 만끽하는 '놀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가장 좋은 계절은 가을


내려오는 길에 윤회장에게 한번 날아보고 싶다고 했더니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회장에 따르면, 패러글라이딩은 항공 스포츠 가운데 가장 빨리 배울 수 있는 종목이다. 빠르면 오전에 안전 교육을 받고, 오후에 낮은 고도에서 비행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보통 3∼4일 정도 교육한 뒤 비행을 시킨다.




공중에 뜰 때는 날개를 펼치고 바람을 등에 진 뒤(위 왼쪽) 날개를 세우고(위 가운데), 등을 돌려 땅을 박차는(위 오른쪽) 순서로 진행된다.


교육은 기체 설명, 바람 보는 법, 이륙하는 법, 좌우 조절 연습, 기체 세우는 연습으로 이루어진다. 3분 정도 기체를 세울 수 있는 능력이 되면, 40m 높이에서 비상 연습을 한다. 하루 5∼6시간씩 사흘을 연습한 뒤 자세가 안정되면 비로소 300m쯤 되는 고지에서 비행에 나선다. 이때 대부분 항공스포츠보험에 가입한다. 패러글라이더를 타기 가장 좋은 계절은 가을이다. 경험이 많은 사람은 바람이 매운 겨울을 선호한다. 하지만 그들도 바람이 시속 30km를 넘으면 함부로 날개를 펴지 않는다.


패러글라이더를 즐기려면 따로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도 되지만, 자기가 사는 지역의 '클럽'에 가입해도 된다. 윤회장은 지역 클럽을 추천하며, 가입비를 내면 장비를 빌려주고 비행 교육도 해준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에 공인된 클럽이 100여 개 활동하고 있다. 자료는 협회가 제공한다(아래 표 참조). 비행 횟수가 늘어나면 개인 장비를 갖출 수도 있는데, 대략 2백50만∼6백만 원 한다. 활공 장소는 전국에 수십 곳이 있다. 양평·문경·단양·청주·지리산·제주·군산에 있는 활공장이 비교적 인기를 끄는 곳들이다.


착륙장에 내려와 보니 회원들이 날개를 접고 착륙장에 앉아 쉬고 있었다. 맨몸으로 하늘을 나는 기분이 어땠느냐고 물었더니, 모두들 그냥 빙긋 웃고 만다. 누군가 처녀 비행을 한 날 밤새 잠을 못 잤다고 하자, 경정호씨가 아직도 날개를 펼 때 가슴이 떨린다고 말했다. 한 회원은 도약한 뒤 땅에서 발이 떨어질 때가 가장 짜릿하다고 말했다.


윤회장은 오늘은 열기류(지상에서 발생해 공중으로 떠오르는 뜨거운 공기)가 없어 재미가 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복사열을 타고 구름 밑까지 상승할 때가 패러글라이딩의 백미라고 소개했다. 바람만 잘 타면 고도 2천∼3천m까지 솟구치고, 시속 20∼30km 속도로 100km 이상을 날아간다는 것이다.


먹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비치자, 이왕 온 김에 한번 더 날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모두들 즐거운 얼굴로 트럭에 날개를 실었다. 뒤에서 보니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난 사람들만이 풍기는 여유와 생기가 느껴졌다. 보기에도 짜릿짜릿하고 황홀한데, 실제 바람소리를 들으며 구름 아래에서, 키 큰 떡갈나무 위에서 나니 얼마나 신명이 날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