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 흰살을 발라 먹던 봄밤
  • 신경숙 (소설가) ()
  • 승인 2001.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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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의문인 게 어렸을 때 꽃게를 어떻게 그렇게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사월이거나 오월이었다. 봄밤에 어머니는 꽃게를 한 솥 쪄서 식구들 앞에 턱하니 내놓으셨다. 온 식구가 큰상을 펼쳐놓고 둘러앉아 꽃게 흰 살을 발라 먹는 그런 봄밤. 내륙인 정읍에서 어머니는 어떻게 그 꽃게들을 구해 오셨나.


분명 시장에서 산 것은 아니었다. 펄펄 살아있는 데다 양이 얼마나 푸짐한지. 부안까지 가서 사오신 것인가? 아니면 군산? 삶은 꽃게를 푸짐히 쌓아놓고 온 식구가 꽃게를 발라 먹던 봄밤에는 어린 마음에도 쪼금 행복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다 익기도 전에 솥뚜껑을 열어보곤 했다. 갈색 등딱지가 붉어지는 게 신기해서 언제쯤 붉어지나 확인하려고.




그런 기억 때문인지 나도 이 도시에서 봄이 오면 가끔 살아 있는 꽃게를 푸짐히 사다가 쪄서 친구들이랑 함께 발라 먹곤 했다. 대개 이런 사월, 혹은 오월이었다. 꽃게를 삶아 여자 친구들이랑 흰살을 발라 먹고 있으면 기분이 좀 묘해진다. 어렸을 때 식구들이랑 꽃게 흰 살 발라 먹을 때는 행복한 거 같기도 하고 뭐 그런 기분이었다면, 처녀 시절의 꽃게는 뭔가 좀 고독한 기분이랄까, 그랬다.


불현듯 그런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꽃게를 들여다보며 고고샅샅 흰 살을 파먹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얼굴이 상기된다. 두 마리쯤 먹고 나면 등짐이라도 져 나른 것처럼 어깨가 아프기까지 하다. 양념이 필요 없는 게 꽃게이지만, 꽃게를 삶을 때 찜솥 밑에 된장끼를 쪼금 해두어 나중에 그 물에 흰두부 썰어넣고 쑥갓이나 파 같은 거 살짝 띄워 내 놓으면, 꽃게 발라 먹다가 한 번씩 떠먹기 괜찮다.


꽃게를 사러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값이 꽤 비싸다는 것이다. 통통하고 손바닥만한 것으로 두 마리만 골라도 훌쩍 2만원이 넘는다. 그러니 푸짐하게 쪄놓고 실컷 먹기엔 좀 비싼 편이다. 그런데 그때 어머니는 어떻게 그렇게 실컷 꽃게를 삶아 내놓으셨는지 모르겠다. 생선가게 아주머니는 오월이 되면 조금 싸질 거라고 했다.


작년 오월에는 간장 게장을 담가볼까 하여 살아 있는 꽃게를 사러 신새벽에 노량진 수산시장에 간 적이 있었다. 신새벽의 노량진 수산시장에 한번 가보라. 정말 신이 난다. 별의별 생선들이 다 나와 있는데 그 생김새들이 어찌나 우습고 즐겁고 과묵하게 생겼는지. 좌우지간 신선하고 활기참이 열심히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간장 게장 담그는 일은 손이 많이 가서 좀 많이 담가 두게 된다. 꼭 살아 있는 것이라야 한다. 솔로 싹싹 씻은 후에 나는 간장하고 함께 소주도 한 병 붓는다. 그러면 안 상한다고 어머니가 그러셨다. 간장과 소주 속에 하루쯤 담가 놓았다가 다릴 때 짜지 않게 물을 좀 탔다. 다린 후에는 생강이랑 마늘이랑 빨간 고추도 넣었다. 작년에는 감초도 좀 넣어 보았다. 그랬더니 간장이 달았다. 이틀쯤 두었다가 한번 더 다렸다. 다시 이틀쯤 있다가 한번 더 다렸다. 마침 집에 백령도 콩돌해안에서 집어온 예쁜 돌이 있어서 꾹 눌러놓았다가 닷새 쯤 후 한 마리 건져 등딱지를 떼어냈더니 세상에 꽉 찬 알이라니.


간장에 절인 말랑한 게살에 밥을 비벼 먹으면 다른 반찬 필요없다. 등딱지에 밥을 몰아넣어 쓱쓱 비벼 먹는 기분도 그만이다. 게가 워낙 신선해서 그걸 가을까지도 먹었다. 점점 짜지는 게 문제였다. 게를 너무 큰 걸 사서 한 개를 내놓으면 한 끼에 다 못 먹을 정도였다. 올해 또 담그게 되면 좀 작은 걸로 해야겠다. 광화문에 '미르'라는 식당이 있는데 거기 간장 게장은 안 짜다. 어떻게 그렇게 전혀 짜지 않게 맛있게 담글까.


* 신경숙의 음식이야기는 격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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