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석에서 땅 파고, 삼진 잡으면 춤추고/'버릇'
  • 기영노 (소포츠 해설가) ()
  • 승인 2001.05.1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미국 프로야구 선수들 '버릇' 백태/
박정태는 '건들건들', 이승엽은 헬멧 만져


심판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스타 플레이어? 아니다. 그러면 예의 바른 선수? 아니다. 심판들은 빠른 선수를 좋아한다. 스피드가 빠른 것이 아니라 공을 빨리 던지고 빨리 타격하는 선수를 좋아한다. 심판은 연봉제이기 때문이다. 경기 시간이 길어진다고 '초과 근무 수당'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경기가 빨리 끝날수록 좋다. 하지만 심판들의 애를 먹이는 선수가 꽤 있다.




한화 이글스의 송지만 선수는 우선 타석에 들어서는 시간이 길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스윙 동작만 수십 번씩 하고, 초구를 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꼭 공을 한두 개 기다린다. 심판들이 좋아할 리 없다. LG 트윈스 유지현 선수는 타석에도 늦게 들어서는 데다 땅까지 판다. 심판으로서는 조급증이 날 지경이다. 그런데 땅을 파는 이유가 가관이다. 스트라이크 존을 좁히려는 의도다. 타석에 들어서서 땅을 파면 투수에게 그만큼 키가 작아 보이기 때문에 스트라이크 존(아래 위)이 좁아진다는 것이다.


두산 베어스 정수근 선수는 투수 쪽에서 자신의 스파이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판다. 이미 패여 있어도 또 판다. 버릇이다. LG 트윈스 홍현우 선수는 땅을 파지는 않지만 자신의 스파이크를 여러 차례 턴다. 특히 오른발 스파이크 징에 묻어 있는 흙을 완전히 털어낸다. 스파이크 징에 흙이 묻어 있지 않아야 발의 회전력이 높아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LA 다저스 셰필드, 초구·2구에 승부




메이저 리그 LA 다저스의 게리 셰필드 같은 선수는 심판들이 좋아하는 형이다. 게리 셰필드는 대표적인 공격형 타자다. 타격을 하기 전에 스윙 동작을 여러 차례 해 급한 성격임을 드러낸다. 그는 대개 초구나 2구째 승부를 건다. 그러나 보스턴 레드삭스의 노마 가르시아파라 선수는 메이저 리그 심판들에게 악명(?)이 높다. 그는 타석에 들어서기 전 전세계 프로 야구 타자들 가운데 가장 괴상한 동작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선 양손에 낀 장갑의 손목 부분 찍찍이를 수없이 떼었다 붙였다 한다. 그리고 발을 앞에 찍고 뒤에 찍는 동작을 여러 차례 한다. 거의 예외가 없다. 보는 사람이 '왜 저럴까?' 할 정도다. 이제 김선우 선수가 보스턴 레드삭스 선발 투수가 되면 노마 가르시아파라 선수의 괴상한 동작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박정태(롯데 자이언츠) 선수의 타격 동작이 가장 특이하다. 박정태는 타석에 들어서서 양발을 왔다갔다하며 방망이를 오른 손으로만 들고 있다가 타격을 하는 순간 왼손까지 잡으며 임팩트한다. 자신만의 타이밍을 잡는 방법인데, 타격 교과서에는 나와 있지 않은 타격법이어서 어린 선수들이 따라하면 좋지 않다. 국민타자 이승엽은 타석에 들어서서 오른손으로 헬멧의 차양을 가볍게 만진다. 이승엽은 "내가 오른손으로 헬멧을 만지는 습관을 녹화 테이프를 보고서야 알았다"라고 할 정도로 무의식적으로 만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타자들이 방망이의 머리(헤드라고 한다) 부분을 잡고 타석에 들어선다. 그러나 LG 트윈스 양준혁과 현대 유니콘스 심정수 선수는 손잡이 부분을 잡는다. 그만큼 방망이 무게를 덜 느끼려는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타자들은 저마다 방망이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한다. 현역 때나 지금이나 '여우'과에 속해 있는 현대 유니콘스 김재박 감독은 방망이를 정성스럽게 닦는 것으로 유명하다. 닦은 방망이를 방망이 케이스에 넣는 것이 아니라 손잡이 부분이 땅에 닿게 햇볕 속에 가지런히 세워놓는다. 누가 그 방망이를 건드리면 그야말로 혼쭐이 난다.


'온달이'로 불렸던 LG 트윈스 이광은 감독은 자신의 방망이를 땅에 가지런히 뉘어 놓는다. 물론 동료 선수들이 그 방망이를 타고 넘지 못하게 한다. 자기 방망이를 넘으면 재수가 없다나?


타자는 크게 왼발(오른쪽 타자 기준)을 뒤로 빼는 오픈 스탠스와 오른발을 뒤로 빼는 크로스 스탠스로 나뉜다. 그런데 토론토 블루제이스 토니 바티스타 선수는 극단적인 오픈 스탠스를 한다. 아니 아예 투수 쪽을 보고 서 있다고 보면 된다. 저렇게 서 있다가 어떻게 타격을 할까 걱정될 정도다. 보스턴 레드삭스 페드로 마르티네스 투수는 토니 바티스타 선수를 처음 대할 때 "어! 뭐 하자는 거야, 타격을 한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라고 걱정을 했는데 용케도 배트를 휘두르는 것을 보고 놀랐다"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롯데 기론이 금 안밟는 이유 "재수 없어서"




투수들의 버릇도 타자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다. LA 다저스 카를로스 페레스 투수는 다저스 선발 가운데 유일하게 왼손 투수다(최근에는 엔디 에시비 선수에 밀려 마이너 리그로 떨어져 있지만). 페레스 선수는 타자를 삼진으로 잡으면 마치 발광을 하는 것 같다. 우선 운동장이 떠나가라 "얍-" 하고 소리를 지른다. 포효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그리고 마치 식인종이 먹이를 앞에 놓고 춤을 추듯 괴상한 춤을 춘다. 삼진을 당한 타자가 무안할 정도다.


역시 LA 다저스의 중간 계투 요원 마이크 페터스는 세트 포지션에서 3루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타자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 동작이 너무 순간적이어서 마치 기합을 넣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봄 메이저 리그 스프링캠프 때 현지 취재를 했던 MBC 야구 해설위원 허구연씨가 페터스 선수를 만나서 왜 그런 이상한 동작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본인은 별 뜻이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동양의 기(氣)의 세계를 아는 것 같은 동작임에 틀림없다.


기까지 넣지는 않지만 금기를 따지는 투수도 있다. 롯데 자이언츠 에밀리아노 기론 투수는 그라운드에 쳐 있는 금을 밟지 않는다. 금을 밟으면 재수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금을 밟지 않으려다 에러까지 범했을 정도라고 한다.


지금은 중남미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전 LA 다저스 에이스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투수는 와인드업을 할 때 대개의 투수가 포수 미트를 보는 데 비해 눈이 하늘을 향한다. 지금도 메이저 리그 전문가들은 발렌수엘라의 '하늘 보기'를 불가사의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 노모 히데오 투수도 와인드업을 할 때 마치 회오리 치듯 몸을 한 차례 뒤로 꼬았다가 공을 던지는 이상한 폼이지만 눈은 항상 포수 미트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한화 이글스 최동원 코치는 현역 시절 '투수판 노마 가르시아파라'라고 할 정도로 독특한 습관이 있었다. 그는 포수로부터 공을 넘겨받으면 우선 스타킹을 만진다. 그리고 양손으로 허리춤을 추스르고 모자 차양을 만진다. 그리고는 입술을 지그시 깨문 뒤 몸부림을 치며 공을 던진다. 이같은 동작을 거의 예외 없이 반복한다.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박철순 투수(전 OB베어스)는 꼭 글러브로 땀을 닦았다. 더운 여름날 3회 정도만 지나면 글러브가 흥건히 젖을 정도다. 그래도 글러브가 미끌어져서 에러를 범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싸움닭 조계현(두산 베어스)은 포수로부터 사인을 받을 때 글러브로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놓는다. 글러브 위로 보이는 그 강렬한 눈빛이 정말 싸움닭 같다. 선동렬(한국야구위원회 홍보위원)은 강속구뿐만 아니라 제구력 좋기로도 정평이 나 있는 투수다. 그런데 어쩌다 볼넷을 허용하면 포수 앞까지 걸어가서 안심하라는 듯이 손가락질을 한다. 여기에는 볼넷을 허용한 무안함을 털어내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