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해 먹거리, 어떻게 고르나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4.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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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농산물 인증 마크 확인해야…가공 식품은 공인 절차 없어
장바구니를 들고 식품 매대 앞에 서면 요란한 선전 문구들이 눈에 띈다. 친환경·무공해·청정·내추럴 따위를 내걸고 저마다 안전성을 자랑하지만 친환경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라면 의외로 일이 쉽다. 농산물의 경우 인증 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고, 식별법 또한 간단하기 때문이다.

친환경농산물 표시를 위한 인증 마크가 의무화한 것은 1999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과 7개 민간 기관이 인증 자격을 갖고 있는데, 인증 마크가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혼란을 느낄 염려는 없다. 농관원이 검사 물량의 80% 이상을 소화하며, 민간 기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곳은 사단법인 흙살림이다.

인증 마크로 식별할 수 있는 친환경 등급은 모두 네 가지이다. 유기농산물·전환기 유기농산물·무농약농산물·저농약농산물. 유기농산물은 유기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3년 이상(다년생의 경우. 그 외는 2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작물에 부여되는 것으로 가장 안정성이 높다. 전환기 유기농산물은 위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1년 이상 재배한 농작물에, 무농약농산물은 유기합성농약은 일절 사용하지 않고, 화학비료는 가급적 권장 시비량의 3분의 1 이내를 사용한 작품에 적용된다. 가장 느슨한 등급인 저농약농산물도 화학비료는 권장 시비량의 절반 이내로 쓰고 농약도 절반 이하로 살포해야 하며, 제초제를 쓰면 안된다.

친환경 농산물의 가파른 성장세는 인증 물량 추이에서 금세 드러난다. 1999년 첫 해 2만7천여 t에 불과하던 인증 물량이, 2002년 20만 t을 돌파한 데 이어 2003년에는 37만여 t에 이르렀다.

친환경농산물에는 천연·자연·무공해·저공해·내추널 등 소비자에게 혼동을 초래할 수 있는 강조 표시를 일절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표현이 들어가 있다면, 그 제품이 실제로 농약이나 비료를 적게 썼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공인 기관의 인증을 거친 제품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햇섭’이라고 불리는 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Hazard Analysis Critical Control Points)은 식품 가공과 관련한 광범위한 인증 제도이다. 주로 축산물 가공 식품에 적용되지만 실제 적용 업소는 식품 가공업체(도시락업소 포함)와 집단 급식소까지 망라한다. 주로 적용되는 가공 식품으로는 햄과 소시지, 우유와 요구르트, 해산물 가공 식품 등을 꼽을 수 있다. 단체 급식소 30여 곳을 포함, 2004년 6월 말 현재 적용 업소는 총 1백42곳이다.

우유나 햄 등의 외부 표시면을 살펴보면 HACCP 마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햇섭은 원재료 성분뿐 아니라 가공 과정에 대한 위생 관리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한 회사라고 해도 공장이 나뉘어 있으면 각각 지정받아야 한다. 가령 한 대기업이 햄 제품을 A,B,C 세 종류 내놓더라도 제조 공장이 다르면 A,B는 인증을 받고 C는 인증을 못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상품을 고를 때 무조건 특정 업체 이름을 믿기보다는 각 제품마다 햇섭 마크를 획득했는지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축산물의 경우 소비자는 아직까지 파는 가게를 믿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도축장은 지난해 7월부터 의무적으로 이 체제로 관리되지만, 아직 위생 상태는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 정부의 평가다. 농림부는 이 제도를 농장에서 판매업소까지 전과정에 도입할 계획이다. 사료 공장은 2007년부터 햇섭 실시가 의무화되며, 축산물 판매장에는 내년부터 이 제도를 적용할 수 있게 된다. 또 오는 2007년부터 닭과 오리 고기는 산지 등을 표기해 포장 판매토록 할 방침이어서 위생에 대한 불안을 다소 덜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건강한 삶을 추구하면서도 정작 음식을 조리할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에서는 자연스럽게 유기가공식품에 대한 요구가 늘게 된다. 하지만 정작 고르기는 만만치 않다. 유기라는 표현을 쉽게 쓸 수 있는 대신, 인증 제도는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수입 유기가공식품이 늘어나면서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6월 한국여성민우회는 한 달여 동안 실태 조사를 벌였는데, 조사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점은 외국의 인증 결과를 그대로 믿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먹거리의 경우 보통 1차 농산물은 관세가 높고 가공된 식품은 관세가 낮아, 대부분 가공 식품 형태로 수입하려는 욕구가 크다. 게다가 인기가 높아진 유기 식품의 경우, 유기농산물에 비해 이를 가공한 식품이 유기 식품으로 인정받는 것이 훨씬 쉽게 때문에 유기가공식품 수입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수입품 인증 제도 미비

예를 들어 중국에서 수입된 콩이 유기농 콩임을 주장하려면 국내 인증 절차를 따로 밟아야 한다. 하지만 중국에서 유기농 콩을 이용해 유기 된장·간장을 만들어 가공 식품 형태로 들여오면 국내에서 별도 인증 없이 유기가공식품이 된다. 원재료로 사용된 콩이 유기농 콩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중국이 인증했다면 그것을 그대로 인정한다. 다른 나라에서 들여오는 유기가공식품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유기원재료 함량이 지극히 적어도, ‘유기’라는 표현을 쓰는 데 제한이 없다. 국내산이건 수입 식품이건 마찬가지이다. 식약청 규정에 따르면, 유기원재료 함량에 따라 유기 표시를 할 수 있는 표시면이 다를 뿐(70% 이상은 주표시면 표기 가능), 함량이 낮다고 해서 유기라는 표현을 쓸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함량 표시를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에 꼼꼼히 따져보면 유기 재료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판별할 수는 있다.

소비자가 원재료 표시 부분의 함량을 따져 95%짜리 유기 식품인지, 달랑 5%짜리 유기 식품인지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 때문에 최근 감사원까지 나서 유기가공식품에 관한 인증 제도를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최근에는 대기업까지 중국산 유기콩으로 유기 두부를 만들고 있다. 가공식품에 관한 제도가 정비되기 전까지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라면 더욱 번거로워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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