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너무 좋아하면 오장육부 다친다
  • 吳允鉉 기자 ()
  • 승인 2000.06.2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 · 남용으로 인한 부작용 빈발 / 자가 진단 · 투약 금물 ··· 반드시 처방 따라야
서울 창전동에 있는 장미약국의 조복주 약사는 약을 사러 오는 손님을 두 부류로 나눈다. 차근차근 자신의 병세를 설명하는 환자와, ‘○○○ 두 알 주세요’ 하는 사람이다. 조씨는 ‘○○○ 두 알 주세요’ 하는 손님을 만나면 몹시 당황스럽다고 말한다.

“왜 그 약을 찾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그냥 달라고 한다. 자기가 진단하고 처방까지 한 것이다. 그 약을 복용하면 위장 장애가 생길 수도 있으니 다른 약을 먹어 보라고 권하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본다. 마치 내가 더 비싼 약을 팔기 위해서 그런다는 것처럼….” 조씨는 제발 소비자들이 약에 대해 아는 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같은 태도가 약물 오·남용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7월부터 ‘역사적인’ 의약 분업이 실시된다(79쪽 상자 기사 참조).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약을 멀리 떨어뜨려 놓았기 때문에, 약 오·남용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단시일에 오·남용이 줄어들지는 의문이다. 신경정신과 의사 김진국씨는 “의약 분업 주체인 소비자가, 왜 의약 분업을 하는지, 약물 과소비가 어느 정도이고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잘 모르는데 약 과소비가 줄어들겠느냐”라고 반문한다.

제약업체 광고가 약 과소비 부추겨

한국 사람들의 약 오·남용이 얼마나 심각하기에 ‘역사적 사업’으로도 끊어내기가 힘든 것일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997년 한국의 항생제 하루 사용 인구는 천 명당 33.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인 21.3명보다 월등히 많다. 환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했을 때 처방되는 의약품 수도 외래 환자 4.2종, 입원 환자 6.3종으로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인 1∼2종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약을 많이 소비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자가 진단에 따른 투약 행위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대중 매체나 광고 또는 주변 인물로부터 얻은 불완전한 정보를 토대로 병세를 진단하고, 잘못된 처방으로 ‘너무도 쉽게’ 약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건강연대 조경애 사무국장에 따르면, 약국을 방문한 5백8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의약품을 전문가 도움 없이 복용하는 사람이 40.3%나 되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소보원)이 1998년 일반인 4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쌍화탕·아스피린·타이레놀 같은 약은 68.5%가 매스컴이나 주변 사람 말을 듣고 샀다.
약을 과소비하게 되는 또 다른 요인은 제약업체의 지나친 광고·선전이다. 1999년 현재 우리나라 4백여 개 제약업체가 만들어내는 약품은 무려 2만6천여 종이다. 이처럼 약품 수가 많은 이유는 제약업체 대부분이 수요를 예측해 제품을 생산하기보다는, 먼저 대량으로 생산한 뒤 국민의 약물 소비를 부추겨 판매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과대 광고가 판치고, 소비자는 거기에 현혹되어 약물 소비를 늘리게 되는 것이다.

의사나 약사도 약 과소비에 한몫 하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약사나 의사일지라도 2만6천 종이 넘는 약품에 대한 정보를 전부 알 수는 없다. 때문에 제약회사가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정보가 확실하고 마진이 높은 약을 선호하게 되고, 이윤을 높이려고 과잉 처방을 하기도 한다. 이외에 소득 수준 향상, 사회 전반에 만연하고 있는 소비 풍조도 약 과소비를 부채질한다.

약을 과소비하면 그만큼 오·남용도 늘어난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약으로 체력과 정력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고, 약을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그만큼 빨리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다. 거기에다 약은 모두가 몸에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같은 믿음에는 거의 근거가 없다. 이른바 피로 회복제라고 하는 것에는 인삼·벌꿀·영지버섯 같은 한방 약재에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돕는 비타민·이담제 따위가 들어 있다. 제약회사는 이들 건강 음료가 두뇌 각성 작용과 청량감을 준다는 이유로 피로 회복제라고 선전한다. 하지만 이들 음료는 절대 피로 회복제가 아니다. 단지 중추 신경을 자극해 잠시 피곤을 잊게 할 뿐이다. 약을 먹었으니 피로가 풀릴 것이라는 심리적인 효과밖에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직도 이런 ‘음료’를 마시면 피로가 풀린다고 굳게 믿고 있다.
비타민제 꼭 먹어야 하나

항생제에 대한 믿음도 그에 뒤지 않는다. 항생제를 자주 이용하는 이들 중에서도 항생제가 몸안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항생제는 세균을 죽이거나 증식을 억제하는 물질이다. 그같은 기초 지식도 없다 보니 가벼운 두통·피로·무좀·습진에도 항생제를 먹는 기막힌 일이 일어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항생제는 지나치게 복용할 경우 장에 있는 이로운 유산균까지 모두 죽게 해 영양분 흡수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는 ‘위험한 약’이다.

비타민에 대한 과신도 도를 넘어서고 있다. 비타민은 제약업체 광고나 소비자들의 믿음처럼 막 힘을 솟게 하지 않는다. 서울대 의학연구원 박찬웅 원장은 <약, 그 허와 실>에서 ‘특별한 음식을 편식하지 않는 한, 정상적인 식생활로도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비타민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즉 만성적인 질병을 앓거나 정상적으로 식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구태여 비타민을 따로 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비타민에 한두 가지 아미노산을 추가해 두뇌 영양제라고 해서 판매되는 약도 별로 다르지 않다.

이외에도 소비자들이 잘못된 의약 상식을 좇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러다 보니 믿기지 않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앞의 소보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약효가 적을 것 같아 적정 용량을 2배 늘려 복용한 사람이 19.3%나 되고, 유통 기간이 지난 약을 복용한 사람도 23.8%나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증세가 비슷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처방된 약을 먹은 사람이 48.5%나 된다는 점이다.

의약품 소비가 이렇게 경솔하다 보니 피해가 없을 리 없다. 우리 주변에서는 항생제를 장기 복용해 위장병을 앓는 사람, 드링크제에 중독된 사람 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안약을 잘못 사용해 실명한 사람까지 있다. 소보원에는 매년 이같은 의약품 피해 사례가 100 건 넘게 접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남용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면, 약을 사기 전에 약사에게 자신의 병력과, 현재 따로 복용하고 있는 약, 알레르기 유무, 임신 유무 따위를 낱낱이 알려야 한다.
그리고 처방을 받은 뒤에는 약의 효능이나 특징 들을 정확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진 아스피린조차 위궤양·위출혈 같은 부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약이 어떤 부작용을 유발하는지 알아두어야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소비자는 물을 권리가 있고, 의사나 약사는 답변할 의무가 있다.

약을 먹을 때는 간단한 복용 상식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약은 물을 이용해 삼키는 것이 가장 좋다. 만약 과즙이 들어 있는 음료수나 탄닌을 함유한 홍차 등을 이용해 삼키면 어떻게 될까. 우선 약을 주스 등과 함께 삼키면 약효가 달라진다. 그리고 탄닌을 함유한 홍차나 녹차는 빈혈약이 철분을 흡수하는 것을 방해한다.

감기약, 드링크제와 먹으면 역효과 낼 수도

커피·담배·술도 금하는 것이 좋다. 커피는 진통제 복용 전후에 마시면 카페인 과잉 증상으로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릴 수 있다. 끽연은 해열 진통제·부정맥 치료제·신경 안정제 등의 효과를 감소시킨다. 술은 각종 약의 효과를 떨어뜨린다. 특히 감기약과 함께 먹으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가끔 감기약을 드링크제와 함께 복용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같은 복용 방법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드링크제에 알코올이나 카페인이 미량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콜라와 아스피린, 술과 수면제, 우유와 변비약처럼 궁합이 맞지 않는 약과 음식이 비일비재하므로, 약을 짓거나 살 때는 반드시 그 내용을 약사에게 묻고 확인해야 한다.
약을 복용할 때는 자기에게 처방된 것만 먹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질병 종류, 나이·체질·증상·체중 등에 맞추어 조제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한 내에 사용해야 한다. 기간이 지나면 유독 성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또 약 형태 그대로 복용하는 것이 좋다. 캡슐 약을 먹지 못한다고 껍질을 까내면, 장에서 분해될 약이 위에서 분해되어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약이라고 하는 것은 효과가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잘못 먹으면 독이 될 수 있다. 또 주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빼앗아 가는 것이 있다. 지나치게 약에 의존하다 보면 당장의 고통은 해소할 수 있을지 몰라도, 때로는 그같은 증상을 일으키는 중대한 원인이 되는 질병을 미처 깨닫지 못해 더 큰 고통을 자초하기도 한다.

의약 분업은 그같은 약물 오·남용을 억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이다. 소비자인 내가 건강이나 삶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지 않으면 약 오·남용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만약 지금처럼 자가 투약을 일삼는다면 아예 약을 먹지 말라고 충고한다.

앞으로도 약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같은 세태에서 안전하게 약을 복용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길은 약의 기본 성질을 바로 알고 사용하는 것뿐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