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관련 보도에 오보가 많은 까닭
  • 金恩男 기자 ()
  • 승인 1995.06.2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 뉴스, 관급 정보에 의존해 오보 양산…언론은 ‘통일’ 막지 말아야
“보도대로라면 북한에 폭동이 나도 몇번은 났겠다.” 한 신문사의 북한 담당 기자는 김일성 사후 한국 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를 이렇게 꼬집었다.

지난해 7월 김일성이 사망한 뒤 1년 동안은 북한 관련 오보가 유난히 많았던 시기로 기록된다. 직접 취재하기 불가능한 북한 관련 보도의 특성상 오보가 많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특히나 민감했던 때인 만큼 북한의 미세한 움직임에까지 촉각을 곤두세우다 보니’ 평범한 정보에 의미를 과잉 부여해 결과적으로 오보를 양산하게 되었다는 것이 북한 담당 기자들의 변명 아닌 변명이다.

김일성 사망 한 달 뒤인 8월25일 <ㄱ신문>의 ‘김정일 이복동생 김평일 망명설’(이 사건은 9월2일 다른 언론사가 김평일을 인터뷰해 오보임이 드러났다) 보도를 필두로 김정일 건강 악화설, 식량 위기설 등 비슷한 유형의 오보를 양산해 온 한국 언론이 최근 그 횟수를 더욱 늘려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선거철이면 터지는 북한 관련 뉴스

오보 여부는 꼼꼼히 따져볼 일이지만 요즘 북한과 관련된 굵직굵직한 뉴스가 자주 터져 나오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5월29일∼6월17일 3주 동안만 해도 미·북한 경수로 협상이라는 큰 의제 사이사이로 북한에 쌀 제공, 우성호 피랍, 평양 주민 강제 이주설 보도가 잇따랐다. 이에 대해 선거방송대책본부는 ‘선거 때 흔히 내세우던 국민들의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기 위해 또다시 정보기관과 언론이 합작해 북한 관련 정보를 고의로 유포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지적된 것이 6월2일 거의 모든 일간지 1면에 실린 ‘평양 주민 백만명 강제 이주설’이다. 북한이 3백50만명으로 급증한 평양 인구를 2백50만명 선으로 억제하고 체제 불만 세력을 격리하기 위해, 성분 불량자와 농촌 연고자 등 백만명을 지방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있다는 것이 보도의 골자였다. 이 보도는 △정보 출처가 지난 4월 평양축전에 다녀온 관광객·해외동포 등의 전언에 한정돼 있다는 점 △사안의 중요성에 비추어 이 보도를 전후해 외신에 관련 보도가 전혀 없었다는 점 △보도 내용의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점 등에서 그 진실성에 의혹이 제기됐다.

북한 관련 오보는 잘못된 관급 보도나 외신에 의존해서 나온 오보, 기자 개인 또는 언론사 내부의 이데올로기적 편견에서 나온 오보, 공산권과 수교가 이루어지고 현지 취재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생긴 현상으로 현지의 ‘∼라 하더라’ 하는 이른바 ‘카더라 방송’을 그대로 인용한 데서 나온 오보,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우스갯소리처럼 기자 개인이 북한 사정을 잘 몰라서 내는 오보 등 그 원인도 다양하다. 이중 선거 같은 민감한 사안이 걸려 있을 때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우이다.

첫 번째는, 안기부 산하 북한 전문 통신사인 내외통신을 통해 이른바 ‘전략 기사’를 만들어 각 언론사에 배포하거나, 안기부나 통일원 간부가 직접 나서 관련 정보를 슬쩍 흘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번의 ‘평양 주민 백만명 강제 이주설’은 그 정형을 매우 충실하게 따른 보도라 할 수 있다. 이 보도는 6월1일 안기부 고위 책임자가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점심을 같이하는 자리에서 ‘오프 더 레코드’로 슬쩍 흘린 첩보 수준의 정보를 기자들이 요구해 기사화했다는 후문이다.

두 번째의 이데올로기적 편견에 의한 오보의 폐해도 만만치 않다. 지난 6월2일 <ㅎ일보>는 우성호 피랍 사건을 다루면서 기사와 사설의 내용을 각기 다르게 실어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사회면 머리 기사가 ‘납북 우성호 잘못 유도됐다’는 제목으로 해군의 실수를 파헤친 내용인 데 반해 사설은 ‘6·25 이후 숱하게 자행해 온 불법적이고 강도적인 인간 납치’라는 극단적 표현이 동원된 내용이었다. 제목도 ‘계산된 우성호 납치’였다. 해군의 실수가 밝혀지기 전에 지레 사건을 냉전적 가치 기준으로 재단해 사설을 작성한 데서 나온 오보였다.
고의로 또는 실수로 빚어지는 이같은 오보들이 가까이는 국민들의 바른 상황 판단을 흐리게 하고, 멀리는 남북 통일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되리라는 우려에 대해 언론사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콸라룸푸르 회담, 취재 않고도 ‘생생히’ 보도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미·북한 경수로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측 기자들이 보여준 행태가 그 좋은 예이다. 콸라룸푸르에 다녀온 한 기자는 북한이나 미국 대표부 앞을 서성이는 한국 기자를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도 경수로 협상이 진행되는 보름 남짓한 기간에 신문에는 ‘미·북한 대표간 비밀 접촉이 있었다’ ‘무슨무슨 얘기가 오고갔다’ 등 ‘생생한’ 기사가 콸라룸푸르 현지발로 실려 있었다.

한국 언론이 객관적·합리적인 입장에서 통일을 앞당기는 공기(公器)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우선 언론사 내부의 체제부터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언론인의 냉전 사고 탈퇴는 물론 당연한 전제 조건이다.

‘북한 바로 알기’ 붐을 타고 90년을 전후해 각 언론사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북한부는 최근 팀제 개편 바람에 따라 거개가 정치부 산하 ‘북한 팀’으로 개편된 상태이다. 문제는 팀으로 개편하면서 인원을 축소한 데 있다. 현재 북한 관련 기사는 청와대·통일원·외무부·국방부 출입 기자 등이 사안에 따라 개별적으로 소화하고 있다. 한 신문의 북한팀장 말마따나 ‘이들의 기사를 한데 통괄할 시스템’만 갖추어도 기사가 따로 노는 현상은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사들이 북한 관련 부서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것도 큰 장애 요인이다. 지난해 제166회 임시국회에서 논란이 됐던 북한 방송 청취 문제나 <내외통신> 개편 문제가 언론사들의 소극적 자세 때문에 결국 문제 제기에 그치고 만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북한 방송을 전문으로 청취하기 위해서는 초기 설비 투자에만 20억원 가량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외통신> 관계자의 귀띔이다. 개별 언론사로서 그만큼 투자를 하기가 아깝다면 20년 이상 북한 뉴스 관련 노하우를 쌓아온 <내외통신>을 안기부 산하에서 끌어내 독립적인 전문 통신사로 탈바꿈시키는 방향으로 여론을 형성해 나가는 등 각 언론이 협조해 현실적인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