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와 대화하는 것이 첫걸음”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4.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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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푸드국제본부 자코모 모졸리 부회장/“한국 식문화 다양성에 놀라”
슬로푸드 운동은 이탈리아의 카를로 페트리니가 주도해 1986년부터 전개되었다. 발족 이유는 단순했다. 로마의 유서 깊은 스페인 광장에 맥도날드가 들어서고, 그것이 확산되는 데 대한 반작용이었다. 지금 이 운동은 60여 나라에 8만여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슬로푸드국제본부 쟈코모 모졸리 부회장(50·사진)이 최근 한국을 찾았다. 서울 경동시장을 안내하며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의 재래 시장에서 무엇을 보았나?

푸성귀와 한약재의 다양성에 놀랐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부족할 게 없을 정도로 식문화가 풍요해 보였다.

한국의 적지 않은 사람이 슬로푸드를 ‘돈 있는 사람들의 운동’으로 알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은 결코 어렵고 비싼 게 아니다. 단순히 말하면, 몸과 정신에 좋은 자연산 음식을 찾아 즐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차나 옷을 바꾸는 데 드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음식에 대한 투자는 아까워 한다. 소비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그렇더라도 젊은이들이 동참하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너무 드는 것 같다.

심각한 질문이다. 이탈리아에서도 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슬로푸드를 먹일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젊은이들을 생산 현지로 데려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산 과정을 보고 생산자를 만나면 슬로푸드에 친밀감을 갖게 될 것이다.

1996년부터 세계의 슬로푸드를 찾아내 기록으로 보존하고 있다. 현재 어떤 품목들이 목록에 올랐나?

슬로푸드국제본부 주도로 매년 7백명의 심사위원이 슬로푸드와 슬로푸드 생산자 15명을 선정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소개해 달라.

수상자 목록에 오른 음식이나 생산자는 많다. 일본의 다케도메라는 농부는 사라지는 쌀을 재배해 올랐다. 멕시코의 한 여성은 카카오콩을 지켜낸 공로로, 또 다른 여성은 낙타 젖으로 치즈를 만드는 전통을 지켜낸 공로로 올라 있다. 터키의 한 여성은 양귀비로 아편이 아니라 벌꿀을 만들어내는 성과를 올려, 그 공을 인정받았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카카오콩을 지키는 여성이 없었다면 우리는 커피콩으로 만든 초콜릿만을 먹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낙타 젖으로 치즈 만드는 전통을 지키지 않았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것을 잃어버릴 것이다. 또 다른 의미는 그런 것들이 지역 경제, 나아가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카카오콩 생산자와 유럽의 초콜릿 회사를 연결해 준 결과, 지금 그 생산자는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다.

‘세계 슬로푸드 목록’에 오른 한국 음식이나 생산자는 없는가?

아직은 없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게 아니다. 한국 학자들이 시간을 두고 조사하고 연구해서 알려주기 바란다. 한국에 그런 슬로푸드가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탈리아 고유 음식인 피자가 한국에서는 패스트푸드로 대접받고 있다.

피자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제대로 된 이탈리아 피자는 좋은 재료와 범상치 않은 방식으로 만든다. 지금 전세계에 퍼져 있는 피자 이미지와는 다르다. 다시 말하면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이 만들어낸 이미지다.

보통 사람들이 실천할 만한 슬로푸드 운동을 소개해 달라.

슬로푸드 운동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가끔 시골에 가서 당신이 먹는 쌀이나 호박, 과일 등을 생산하는 농부들과 대화하라. 그리고 같은 식품을 세 군데에서 사서, 그것이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비교하며 먹어라. 혼자 있을 때 휴대전화를 끄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슬로푸드란 옛날 사람들이 했던 일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를 보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보면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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