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이런 사람은 타지 말라.
  •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 www.eandh.org) ()
  • 승인 2004.05.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롤러코스터 반복해 타면 경막하혈종 생길 수도…심장·간질 환자 특히 위험
17세기 러시아 상류층 인사들은 목재로 만든 U자형 슬라이드 구조물 위에 얼음을 깔아놓은 뒤, 그 위에서 썰매를 즐겼다. 얼음으로 만든 썰매 좌석에는 모피를 깔았고, 모래를 제동 장치로 썼다. 러시아 황실로 시집간 독일 공주 카테린은, 자신의 집에 얼음 썰매장을 설치하고 시간만 나면 즐겼다고 전해진다. ‘러시안 아이스 슬라이드’라고 불린 이 놀이 기구가 청룡열차라고 불리는 롤러코스터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경사진 레일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던 롤러코스터가 요즘에는 시속 100km의 속도로 내달리며 공중회전까지 하는 탄환 열차로 진화했다. 롤러코스터는 좀더 짜릿한 자극을 찾는 현대인의 입맛에 그야말로 ‘착’ 달라붙었다. 그런데 이 놀이기구가 탑승자들에게 스릴만 주는 것 같지 않다.

뇌혈관 파열시켜 심한 두통 유발

얼마 전 일본신경학회는 같은 날 여러 번 롤러코스터를 타고 난 후 만성 두통 증세를 호소한 20대 남성들에게 뇌 피막 사이에 피가 고이는 ‘경막하혈종’이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유사한 일이 4년 전에도 있었다. 일본의 24세 여성이 세 종류의 롤러코스트를 잇달아 타고난 뒤 극심한 두통을 호소했다. 처음에 긴장성 두통이라고 진단한 의료진은 두 달 뒤에도 같은 증세가 지속되자 MRI 촬영을 했다. 결과는 단순 두통이 아닌 경막하혈종으로 밝혀졌다.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47세인 한 미국 남성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난 직후 메스꺼움과 어지럼증을 느꼈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며칠 뒤 참을 수 없는 두통으로 발전하자 결국 병원을 찾았고, 뇌 속 두 곳에 피가 고여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급강하와 상승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느끼는 전율은 혈압을 순간적으로 높이는 위험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뇌의 경막과 지주막 사이의 혈관이 롤러코스터의 급격한 가속이나 감속, 낙하 등으로 발생한 물리적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뇌에 피가 차기 때문에 극심한 두통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문제는 두통 증세가 롤러코스터를 탈 당시에는 전혀 없다가 수일이 지난 뒤에야 나타난다는 점이다. 당연히 두통의 원인을 롤러코스터 탑승과 연관지어 생각하기 힘든 것이다.

전문가들은 롤러코스트를 타고 난 즈음에 두통 증세가 나타났다면 반드시 의사를 찾아가 정밀 검진을 받으라고 조언한다. 뇌혈관 파열로 인한 두통은 두통약으로는 완치할 수 없고, 수술을 통해 고여 있는 혈액을 제거해야만 해결된다.

롤러코스터 업계에서는 롤러코스터의 위험이 너무 과장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롤러코스터를 설계할 때 인체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으며, 롤러코스터를 타고 뇌손상을 입을 확률은 열차 탈선 사고나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할 확률보다 낮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뇌 손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롤러코스터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탑승자 자신의 기존 건강 상태나 이 놀이기구를 여러 번 타는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업계측도 임신부나 혈액을 묽게 하는 약을 복용하고 있는 심장질환자, 간질환자, 허리나 목을 다쳤던 사람 등이 롤러코스터를 타면 일반 사람들보다 더 위험하다는 데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놀이공원에 갈 때는, 놀이공원이 즐거움은 보장하지만 이용자의 건강까지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