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점프 “참을 수 없는 추락의 짜릿함”
  • 金在泰 기자 ()
  • 승인 1997.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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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 점프, ‘짧지만 긴 스릴’의 세계
오로지 추락하기 위해 저 높은 곳을 향해 오른 사람들. 지상 40m에 걸린 위태로운 평면 위에서 바라보는 창공은 아름답지만, 위험한 공간이다.

허공과 만나는 지상의 마지막 접점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직립’. 아찔한 고도감, 어깨를 누르는 허공의 가공할 무게, 체감 강도가 높아진 바람 등 직립 인간의 오만을 무너뜨리려는 동맹군 앞에서 철탑 꼭대기에 선 인간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

창공에서의 화려한 잠영(潛泳)을 꿈꾸고 점프대에 오른 사람들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공포의 대상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몸이 서도록 허락해준 땅이다. 지상 높은 곳에서 그 대지는 자신의 안전을 해칠 수 있는 적대적 관계로 탈바꿈한다.

고공에서 내려다보는 땅은, 그 거리를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 낯설어 보인다. 낯설음은 공포감으로 확장된다. 이 쯤이야 하고 자신있게 점프대로 나선 사람이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되돌아서는 것도 바로 이 공포감 때문이다.

공포감은 이처럼 도전 의지를 꺾기도 하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모험 공간으로 뛰어들도록 하는 동인이 되기도 한다. 공포감이 크면 클수록 거기서 얻어지는 스릴이 커지기 때문이다.

번지 점프는 이같은 색다른 공포 체험을 과학적이고 안전한 공간에서 구현하는 레포츠이다.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이를 통해 ‘하늘을 날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을 해소할 수 있다(아울러 그 욕망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온몸으로 깨닫는 계기도 된다).
남태평양 원주민 성년식에서 유래

번지 점프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때는 95년. 남태평양 펜타코스트 섬의 원주민들이 행하던 성년 의례에서 유래된 이 레저 스포츠는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스릴을 맛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동호인을 확보하고 있다.

번지 점프는 펜타코스트 섬의 아이들이 30~40m 높이의 대나무 구조물 위에서 뛰어내릴 때 발목에 묶었던 나무 줄기나 덩굴 대신 탄성이 뛰어난 고무 로프를 사용해 80년대 말 처음 레저 스포츠로 ‘개량’되었다.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번지 점프가 오래 전부터 인기 관광 상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번지 점프는 노약자나 심장 질환 환자, 임산부를 제외하고는 만 13 ∼50세 (21m 높이 점프장에서는 만 8세 이상)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 스포츠로서, 가장 큰 매력은 ‘극한 긴장의 극한 희열’이다. 무한 공포를 극복했다는 자신감도 전리품이 될 수 있다. ‘예정된 추락’을 완료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분 안팎. 그야말로 촌각(寸刻)이지만 낙하와 반등을 4~5회 반복하는 그 사이에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짜릿한 환상 여행이 완성된다. 중력에 이끌려 허공의 심연으로 직하한 후 고무 로프에 의해 몸이 떠오를 때는 우주 유영을 하는 듯 스릴감 넘치는 무중력 상태를 체험할 수도 있다.

95년 국내에 소개, 상설 점프장 5~6곳 성업

번지 점프의 요령은 간단하다. 점프대에 오르기 전에 로프의 길이를 선택하기 위해 몸무게를 재고 교관이 일러주는 안전 수칙에 따라 뛰어내리면 된다. 점프 방식은 안전띠 착용 방법에 따라 허리와 가슴에 두르는 보디 점프와 발목에 묶는 앵클 점프 두 가지가 있다. 전문가들은 초보자에게 위험성이 적은 보디 점프를 권하는데, 경험을 쌓은 사람은 앵클 점프를 택해 공중돌기 같은 묘기를 펼쳐 보는 것도 좋다.

국내에 상설된 번지 점프장으로는, 동양 최고인 40m짜리 번지 타워를 갖춘 경기도 청평의 한국 스포랜드 청평리버빌리지(0356-84-3121)와, 22.5m 높이인 강촌 유원지(0361-262-9893), 21.5m인 인천 송도유원지(032-832-4774)와 대전 엑스포공원(042-862-2972) 등이 있다. 이 밖에 한탄강이나 남해대교 같은 곳에서 크레인 점프대를 이용한 브리지 점프가 실시되며, 여름철에는 대천·해운대 등 일부 해수욕장에서도 번지 점프대를 운영한다. 1회 이용료는 청평리버빌리지가 3만원이고 나머지는 만~1만8천원이다.

아찔한 추락과 짜릿한 떠오름. 올 가을에는 푸른 하늘에 몸을 던져 낙하와 반등의 오묘한 리듬이 있는 대자연의 율동을 배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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