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발행인 자리 내놓을까
  • 조현호 (<미디어 오늘> 기자) ()
  • 승인 2004.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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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조대현)는 지난 1월14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증여세 포탈 등에 대한 항소심에서 “방상훈의 죄가 크지만 <조선일보> 대표 취임 뒤 경영 투명화와 성실 납세 등을 참작했다”라며 언론단체들이 주장한 법정 구속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조선일보> 사람들은 재판 당일 아침부터 방사장이 법정 구속될까 봐 내심 걱정했다가 집행유예 결정이 나오자 한시름 덜었다.

방상훈 사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지만 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재판부는 이날 방사장이 장남 방준오씨에게 주식을 이전하면서 증여세 23억5천만원을 포탈하고 법인세 7천7백만원을 포탈한 부분, 그리고 <조선일보>의 계열사인 조광인쇄출판과 <스포츠 조선>의 부외자금을 사주 일가의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현행 정기간행물법 9조 3항에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형의 집행이 종료되지 아니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되지 아니한 자는 발행인이나 편집인이 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다. 방상훈 사장은 현재 <조선일보>의 발행인이다. <조선일보>는 이 때문에 지난해 말부터 방사장이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방사장의 발행인 자격 유지 여부를 검토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다는 방침이지만, 대법원 확정 판결은 항소심 선고의 법적용이 적절했는지 여부를 주로 검토하기 때문에 항소심 선고 내용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도 보광그룹 세무 조사로 검찰에 기소된 뒤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지만, 당시 발행인 자리를 내놓고 사장으로, 회장으로 ‘승진’했다. 그 뒤 2000년 사면 복권된 뒤에야 발행인에 복귀했다.

<중앙일보>의 전례를 참고한다면 방사장도 거취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전국언론노조 신학림 위원장은 항소심 재판이 끝난 1월14일 오후 “방사장은 신문 발행인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대법원에서 법정 구속되도록 서명운동을 확산하겠다”라며 방사장의 용퇴를 압박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는 재판 하루 전인 1월13일 시민 7천7명으로부터 받은 방사장 법정구속 촉구 서명을 서울고법 민원실에 냈다. 이처럼 방사장의 거취가 <조선일보>의 경영 구도와 맞물리면서 <조선일보>는 지난해 말로 예정되어 있던 연말 간부진 인사를 하지 못했다. 지난해 말 안병훈 부사장이 정년 퇴임했고, 변용식 편집국장도 2년 7개월째 편집국장으로 재직중이어서 교체 시기를 맞았지만 아직 인사 구도가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상훈 사장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지만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해묵은 대립 구도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갈등의 골이 더 깊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검찰을) 두번은 갈아마셨겠지만’이라고 보도한 <조선일보>에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조선일보>는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겠다고 반발했지만 현직 대통령을 원고로 하는 거액 소송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관계자는 “소스를 밝힐 수 없는 약점 때문에 우리가 철저히 불리하다. 소스를 밝히고 기자로서의 신뢰를 잃든지, 소스를 안 밝히고 법정에서 불리해질지 두 가지 중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이런 조처가 계속될 경우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이다”라고 밝혔다. 발행인직 유지를 위해서는 대법원 판결 뒤 ‘사면 복권’ 가능성까지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방상훈 사장으로서는 이래저래 고민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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