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점심상은 날마다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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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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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옥을 좋아한다. 지붕의 물매가 뒷산의 모습을 고즈넉하게 본뜬 시골의 다섯 칸짜리 초가도 좋아하고, 솟을대문 뒤로 은밀한 공간들을 겹겹이 숨겨놓고 있는 한양 기와집도 좋아한다. 이따금씩 사진으로 보는 사대부들 고가(古家)의 고졸(古拙)한 아취는 자주 내 꿈을 넘나들면서 도시를 탈출하고픈 희망을 부추겼다(!).

나는 한식을 좋아한다. 나는, 매일매일 칠첩 반상기에 법답게 차려진 한식을 먹고 싶어했다(!). 봄이면 취나물과 미나리가, 여름이면 맛부추와 풋고추가, 가을이면 알 밴 굴비와 참게장이, 겨울이면 백란(白卵)과 갖가지 장아찌가 오르는 식탁을 꿈꾸었다. 나는 한정식을 좋아했다. 그래서 저녁 ‘만찬’ 일정을 걸게 잡아도 되는 날은 동료들을 꾀어 기어이 한정식을 맛보는 기회로 삼았다.

한정식은 값이 하도 비싸서 자주 먹을 음식이 못 되지만, 제대로 차려진 한정식 상에서 나는 우리 음식 진화사(進化史)의 정점을 만난다. 그래서 전주(全州) 여행은 나에게 전율을 안긴다. 한정식을, 고급 음식 문화의 형식으로 간직하고 있는 곳은 전주뿐이지 싶다. 서울에서도 한정식을 사 먹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그것은 먹는 것이지 즐기는 것이 아니다. 외국에 오래 있다 돌아와서 받는 한식 상은, 오랜만에 만나는 늙은 이모 같아서, 그 앞에 오래 앉아 있고 싶어진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잘 지어진 기와집에 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잘 차려진 한식을 먹게 될 것 같지도 않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가부장제 사회의 슬픈 유습을 좇게 될 것 같지 않다. 잘 보존된 고가에서 나는 부엌과 안방과 마당과 사랑채를 잇는 슬픈 동선(動線)을 읽는다. 그것은, 엄부(嚴夫) 아래 숨 죽이고 사는 아내, 혹은 하녀의 공간이지, 내가 내 아내나 내 딸이 오고가기를 바라는 공간이 아니다. 한옥은 문턱이 높아서 들고 들어가려면 밥상을 얼굴 높이로 들어올려야 한다. 거안제미(擧案齊眉), 눈썹에 이르도록 공손하게 밥상 들어다 바치는 일, 내가 그런 일을 시켜도 좋을 사람은 이 땅에 없다. 그러니까 그런 집에서는 살 수 없지.

한식 사 먹을 때마다 죄의식을 느낀다. 최근 들어 내게 생기고 있는 발전적 조짐이다. 한식 먹고 돌아설 때마다 쓰레기가 될 남긴 반찬이 눈에 밟혀, 뒷맛이 그렇게 껄쩍지근할 수가 없다. 집에서는 일 없지만 밖에서는 되도록 한식은 먹지 않으려고 한다. 제대로 차려진 한정식 상에서 나는 밥상 물리기 문화, ‘대궁 밥상’ 문화의 슬픈 잔영을 읽는다. 대<글자>0xD8E9_0xA79A.eps궁 밥상이란 하인들에게 물려주는 주인의 밥상이다. 나의 대궁 밥상을 물려도 좋은 사람은 이 땅에 없다. 그러니까 그런 음식은 즐길 수가 없지.

내 점심상은 날마다 돈다. 거의 매일 초밥 회전대 앞에 앉는다. 일본의 음식 문화라고 해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나는 일본식이든 미국식이든, 오늘의 나에게 적당하게 여겨지면 받아들여 내것으로 삼는다. 일본이 불고기와 갈비 요리를 받아들여 ‘부르고기’ ‘가루비’ 문화를 일구듯이 우리도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만들면 된다. 나는 회를 자주 즐기지는 않지만 초밥 회전대에는 회초밥만 오르는 것이 아니다. 간장 한 숟가락 남짓 따른 다음, 된장국 두 사발 앞에 놓고 앉아 회전대를 도는 초밥 여남은 개 집어먹으면서 된장국 마시면 점심 식사가 끝난다. 초밥 접시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된장국 사발은 언필칭 핥아놓은 죽사발 같다. 적당히 따르기만 하면 간장도 남을 것이 없다. 일금 5, 6 천원 내고 돌아설 때의 개운함이여.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는 개운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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