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향해 터뜨린 ‘위성 한국’의 축포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3.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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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위성 발사 성공…우주산업 강대국 도약 ‘청신호’
세계에서 인공위성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는 어디일까. 당연히 미국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3천1백17개를 보유한 러시아다. 미국은 2002년 말 현재 1천6백85기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기술이나 질적인 면만 놓고 보면 미국이 훨씬 앞선다). 러시아와 미국의 뒤를 쫓고 있는 나라는 다름아닌 일본(87기)과 중국(63기)이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지난 9월 말 우주로 띄워 보낸 과학기술위성 1호(과학위성)를 포함해도 8기밖에 안된다. 브라질·인도네시아 등과 비슷한 숫자로 세계 20위권에 해당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오래 전부터 야무진 꿈을 꾸어 왔다. 2015년까지 위성 20기를 쏘아 올려 항공우주산업 분야에서 세계 10위권에 진입하겠다는 계획이 그것이다. 너무 무리한 계획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과학기술위성사업 총괄책임자인 심은섭 박사는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항공우주 중·장기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9월 말 쏘아 올린 과학위성도 그 계획 가운데 하나였다. 이 위성이 발사에 성공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항공우주 중·장기 계획이 중요한 기로에 설 수도 있었다. 결과는 대덕연구단지 30주년을 기념하는 축포라도 쏘듯, 대성공이었다. 지금도 과학위성은 지상 680km 상공에서 100분에 한 번씩 지구를 돌면서 하루에 네 번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인공위성연구센터 전파수신국에 연락해 오고 있다.
과학위성을 제 궤도에 올려놓기까지는 많은 사연이 있었다. 특히 9월26∼29일은 인공위성연구센터 연구원들에게 역사상 가장 긴 나흘이었다.

지난 9월8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임종태 소장은 강경인 선임연구원 등과 함께 북극해 인근 러시아 우주기지 플레세츠크에 도착했다. 엿새 전에 이곳에 보낸 과학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리기 위해서였다. 과학위성은 9월26일 오전 10시11분 러시아 로켓 코스모스 3M(코스모스)에 탑재되어 우주로 날아갈 예정이었다. 모든 일은 순조로웠다. 그런데 9월26일 아침 발사장으로 향하던 임소장 일행에게 예기치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작은 문제가 발생해 ‘발사를 하루 연기한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9월27일 오전 10시. 발사장에 도착한 임소장 일행은 어제 일도 있고 해서 로켓이 조금이라도 빨리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바랐다. 드디어 10여분 뒤, 로켓이 하늘로 솟구치자 그들은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환호했다. 네 시간 뒤 임소장 일행은 코스모스가 무사히 제 궤도(지상 680km 상공)에 진입했고, 적재한 인공위성 7기(다른 나라 것 6기 포함)를 무사히 우주에 부려 놓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예정대로라면 이제 과학위성은 7시간 뒤 인공위성센터와 교신하게 되어 있었다.

귀국하기 전 그들은 러시아에서 ‘첫 교신 성공’이라는 낭보를 기다렸으나 9월27일 한국에서 날아온 소식은 비보였다. 하루 네 차례 교신하기로 되어 있는 과학위성에서 전혀 신호를 보내오지 않아 교신에 실패했다는 내용이었다. 교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5년간 애써 만든 1백16억원짜리(발사비·인건비 포함) 위성이 우주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다고 믿었던 과학자들에게 그 소식은 청천벽력이었다. 발사장을 그냥 인도로 결정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원래 과학위성은 우리별 3호처럼 인도에서 발사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과학위성에 탑재한 MCP(빛을 증폭시키는 장치)가 (미국의) 제2 적대국인 인도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해, 어쩔 수 없이 러시아를 선택했던 것이다.

9월29일 오전, 임소장 일행은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대덕연구단지로 내려갔다. 그리고 북미항공우주방위군과 위성을 함께 쏘아 올린 영국 서리 대학 등에 위성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달라고 부탁한 뒤, 대책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대책이 있을 리 없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밤이 깊어진 뒤였다. 북미항공우주방위군에서 위성 6개 등 비행체 7개가 680km 상공에서 2∼3개씩 몰려다니고 있다는 전갈을 보내 왔다. 서리 대학에서는 자신들이 띄운 위성 3개의 궤도를 보내와 과학위성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게 도왔다.

밤 9시42분, 그 자료들을 토대로 열번째 교신이 숨막히게 시도되었다. 그러나 역시 과학위성은 묵묵부답이었다.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고 지켜보던 연구원 20여 명은 모두 풀이 죽어 말이 없었다. 밤 11시10분, 절망 속에 또다시 과학위성을 부르는 신호를 보냈다. 1,2분쯤 지났을까. 수신 담당자가 중얼거리듯 ‘잡혔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분위기가 들썩거렸지만 아무도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수많은 과학자와 언론이 주목하고 있어서 신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2,3분 뒤 이현우 과학위성 팀장이 더 강한 신호를 잡은 뒤 소리쳤다. “성공했다!” 그 순간 연구원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두 손을 들고 ‘와∼’ 하고 소리쳤다.
다음날 원인을 분석한 결과, 과학위성이 궤도에 진입한 뒤에 위치를 알려주는 비콘 신호를 전송하는 UHF 송신기에 문제가 있었다. UHF 송신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송·수신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교신을 가능케 해준 기기는 백업 통신기로 탑재한 S밴드 2대였다. 생애에서 가장 긴 나흘을 보냈다는 임소장은 “만약 교신이 실패로 끝났다면 오랫동안 엄청나게 마음 고생을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경인 선임연구원은 “이번 성공으로 한국은 여덟 번 인공위성을 발사해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원자외선 분광기와 고에너지 검출기·별 감지기 같은 고성능 장비를 장착한 과학위성은, 앞으로 2년 동안 우주 궤도를 돌면서 우주의 구조와 진화, 우주 입자 분포·방사능 환경 등을 조사하게 된다. 또 탑재한 3축 자세 제어 방식을 이용해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자세를 바꾸어보고, 3Mbps에 달하는 고속 통신을 이용해 자신이 채집한 자료를 더 빠르게 지상에 내려보낼 계획이다.

과학위성 발사가 성공함으로써 2005년 쏘아 올릴 과학위성 2호 발사 계획도 탄력을 받게 되었다. 과학위성 2호 계획은 국내 기술진이 만든 소형 로켓(KSLV-1)에 국내 기술진이 만든 위성을 탑재해 쏘아 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 만약 과학위성이 교신에 실패한 채 우주 미아가 되었다면, 2002년부터 진행된 이 계획도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과학위성 발사 성공에 대해 외국 과학계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1994∼1998년 국내 기술진이 제작해 1999년 발사한 우리별 3호를 두고 ‘획기적인 일’이라고 평가했음을 상기하면, 이번 과학위성 발사도 대단한 성과로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인공위성연구센터 강경인 선임연구원은 “당시 외국 과학계는, 위성 개발과 무관한 한국이 미국의 대형 항공사가 오랜 기간 쌓아온 우주 기술을 불과 10년 만에 이룩했다고 평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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