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런 밥도둑 간장게장
  • 이영미 (문화 평론가) ()
  • 승인 2003.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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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겨울이나 여름보다 봄이 좋아진다지만, 내가 봄을 특별히 기다리는 이유는 또 있다. 간장게장을 담글 수 있기 때문이다. 짭쪼름한 그 간장게장으로 봄 입맛을 돋우려고 시장으로 발길을 서둔다.

간장게장은 민물에서 나는 참게나, 서해 연안에서 잡히는 돌게로 담가야 제맛이다. 참게로 게장을 담그면 금상첨화겠지만, 국산 참게는 놀라 자빠질 정도로 비싸다. 양식도 아닌 자연산, 공해 없는 민물에서 일일이 손으로 잡아야 하니 그 값이 무리는 아니지만, 나 같은 서민은 ‘저게 참게구나’ 하고 지나쳐야 한다. 그럼 음식점에서 참게 게장이라고 파는 것은? 당연히 대부분은 중국산 참게이다.

게장은, 바닷게 중에서도 꽃게가 아니라 돌게로 담가야 맛있다. 우리가 보통 찌개를 끓이거나 양념 게장을 담그는 게는 껍질이 좀 얇고 살이 많은 꽃게이다. 그에 비해 돌게는 크기가 작고 껍질이 두껍고 딱딱하며 색깔도 거무튀튀하거나 불그죽죽하다. 찌개를 끓이면 별로 먹을 게 없지만, 게장을 담그면 살이 무르지 않고 쫀득해서 훨씬 맛있다. 그런데 게는 겨울에는 잡을 수가 없다. 갯벌에서 게가 나는 것은 3월 말이나 되어야 하고, 12월 초면 끝이 난다. 그러니 겨울에는 살아 있는 싱싱한 게로 담근 간장게장이 그리워도 참을 수밖에 없다(음식점에서는 겨우내 간장게장을 파는데, 대개 냉동 꽃게로 담그거나 중국산을 쓴다).

살아서 버르적거리는 돌게를 사다가 칫솔 같은 것으로 깨끗이 닦는다(힘센 놈들은 대부분 주방에 올 때까지도 살아 있다). 병에 게를 차곡차곡 넣고 조선간장과 왜간장, 끓인 물을 넣는다. 간장게장에는 반드시 집에서 담근 조선간장이 들어가야 하며, 따라서 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약간의 물을 섞어야 한다.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 설탕을 약간 넣기도 하는데, 그것은 지나친 짠맛이 약간 가실 정도로만 조금 넣어야 한다. 대개 음식점이나 시장에서 파는 간장게장은 첫 맛이 혀에 착 감기라고 설탕이나 인공 감미료를 너무 많이 넣어 금방 질려 버린다.

게가 푹 잠기도록 간장 물을 부은 뒤 하루 이틀 뒤에 간장 국물만 따라 팔팔 끓인다. 그때 마늘 등 양념을 넣으면 되는데, 생강은 게 맛을 좀 쓰게 하므로 안 넣는 것이 낫다. 끓인 국물은 차게 식혀서 다시 게에 부어놓는다(게장을 꺼내 먹다가 신선도가 떨어질 듯하면 이런 방법으로 국물을 끓여 다시 부으면 된다). 담근 지 1주일이 지나면 간장이 게의 속살까지 배어들어 먹을 만해진다.

끼니 때마다 하나씩 꺼내놓으면 그런 밥 도둑놈이 없다. 아무리 입맛이 없는 아침이라도 그것 한 토막이면 밥 한 공기는 뚝딱 사라진다. 지난해에는 넉넉히 만들어 두었다가 직장에 가져가 점심 시간에 동료들과 함께 먹었다. 구내식당 반찬을 투정하다가도 게장만 꺼내놓으면 두말 않고 간장까지 싹싹 밥을 비벼 먹는다. 여름 내내 우리 집 게장에 길든 우리 연구소 사람들은, 가을 회식 때 고급 한식집에서 내놓은 꽃게로 담근 간장게장을 먹으면서 (나는 잠자코 있었는데) 다들 한마디씩 타박을 했다. 너무 달다, 살이 물렁거린다, 너무 싱겁다 등등. 참, 입맛들은 귀신이다. 간장게장은 민물에서 나는 참게나, 서해 연안에서 잡히는 돌게(왼쪽)로 담가야 제맛이 난다. 아무리 입맛이 없는 때에“예쁜 게 죄야?”… “죄야!”도 이것 하나만 있으면 밥 한공기를 쓱싹 비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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