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신비 부활시키다
  • 강철주 편집위원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4.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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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던 지음 <초록 덮개>
 
어중간한 중소 도시들만을 떠돌며 어린 시절을 보낸 탓인지 ‘땅’에 대해서는 무식한 편이다. 기껏해야 소나무나 코스모스 정도만 알아맞힐 뿐인 ‘도시 촌놈’에게 풀이나 꽃, 나무 등 ‘자연의 이름’을 척척 주워섬기는 시골 출신 친구들이 몹시 부러웠다. 흔히 하는 말로 그들에게 ‘이름 모를’은 없었다. 그래선지 지금도, ‘태고의 탯줄’로부터 나만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묘한 열등감을 느낄 정도다.

미국의 자연사 연구가 마이클 조던의 <초록 덮개> (이한음 옮김, 지호 펴냄)는 ‘식물에 대해 우리가 잃어버린 지식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정말은 ‘식물에 대해 아예 애초부터 몰랐던 지식들’을 새롭게 일러준다. 천박한 실용주의 관점에서 지구 표면의 모든 ‘초록 덮개’들을 식량처럼 환금 가치로만 따지는 현대인들에게, 사실은 식물이 얼마나 신성한 존재였는지를 새삼 상기시키는, 아득한 옛날 옛적의 ‘식물 신화’들을 들려준다. 단군 신화의 ‘신단수’나 <어린 왕자>의 ‘바오밥 나무’ 같은, 잃어버린 ‘식물의 꿈’을 되살려준다.

저자에 의하면, 오래 전부터 식물은 인간과 깊은 교감을 나누는 존재였다. 온갖 정령과 신들이 식물에 깃들어 있었고, 인간은 이런 식물을 경외하고 신성시했다. 식물은 약재나 독초, 커피, 차, 마약 등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사람들은 식물에서 얻은 강력한 환각 작용에 따라 ‘하늘로 뻗어 있는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성경이나 신화에 등장하는 신성한 숲과 나무, 고대 문명의 탄생과 죽음의 나무, 주술과 마법 속의 식물들에서 ‘숭엄한 일체감’을 느꼈던 인류의 원초적 모습들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식물의 정신’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나무가 수천 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는 특수하고 신비로운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나무의 정신적인 힘에 이끌리며, 드넓은 숲으로 들어가면 살아 있는 숲과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 조상들은 이해할 수 없고 끝없이 펼쳐진 숲에 둘러싸인 채 살았다. 이 책에서 우리는 고고학에서 맨 처음 나온 증거에서 시작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식물 세계와 맺어온 기나긴 상호 관계 중 주로 정신적인, 때로는 어둡기도 한 측면들을 탐구하고자 한다.’

 
예컨대, 한국 독자들에게는 아직 생소한 북유럽이나 시베리아·아프리카 신화, 아랍권의 길가메시 신화에 등장하는 식물의 의미를 밝히고 있는 부분 등은 특히 흥미롭다. 기독교 전파 이전 켈트족이 참나무를 숭배했다든가, 게르만 신화에서 물푸레나무가 신성시되었고, 아프리카에서는 벌목용 도끼가 의식용으로 사용되었으며,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제례 행사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의 나무’가 으레 등장했다는 것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황금빛 겨우살이가 마녀를 쫓는 부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겨우살이, 마녀 쫓는 부적으로 쓰여

저자가 아쉬워하는 것은 그같은 신화와 전설이 현대 과학에 밀려 미신으로 천대받는다는 점이다. 식물이 품고 있던 신비한 이야기와 정신적 속성이 빛을 잃고, ‘착취하고 이용할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점에 진한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숲과 나무는 신성하므로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언제부터인가 넋 나간 소리처럼 여겨지는 데 대해 분노를 느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인간과 식물이 맺었던 정신적 교호관계를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른바 ‘우리가 식물에 대해 잃어버린 지식들’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식물이 지닌 ‘실용성과 신비감’에 똑같이 주목하자고 말한다. 최근 대마초가 마약이냐 아니냐가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데, 환각을 일으키는 식물들에 대해서도 따로 한 장을 배려해 눈길을 끈다. 자연사 연구이면서도 ‘식물의 인문학’을 표방하고 있어, 과학책에 거북함을 느끼던 독자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저자가 직접 찍은 세계 각지의 사진과 도판 들을 보는 맛도 썩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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