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 사망률 높다
  •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 www.eandh.org) ()
  • 승인 2004.08.1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혼자 살면 건강 관리 능력 떨어져…가족과 함께하는 생활이 바람직
기러기 아빠. 부인과 자식들을 해외로 유학 보내고, 가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자녀의 성공을 꿈꾸며 외롭게 살아가는 아버지를 가족애가 끔찍한 ‘기러기’에 빗댄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삶의 형태가 길어지면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입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최근 스웨덴 우메오 대학 연구진은 두 차례(1985년, 1990년)에 걸친 스웨덴 인구 및 주거 센서스 자료에 나타난 68만2천9백19명의 남성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1991~2000년 사망률을 분석했다. 1990년 당시 이들은 29~54세였다.

연구 결과, 자녀 및 부인과 떨어져 혼자 지냈던 남성들은 자녀·부인과 함께 살았던 남성들에 비해 일반 사망률(1.9배)과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률(1.7배)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알코올 및 약물 중독으로 인한 사망률(4.7배), 낙상 사망률(4.0배), 자살 사망률(2.3배), 폭력 사망률(2.5배), 교통사고 사망률(1.7배), 폐암 사망률(1.3배)이 높았다. 부인과 자녀와 함께 하는 삶이 아버지 생명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가족이 생명의 수호신”

혼자 남은 아버지들에게 왜 이런 불행한 현상이 발생하는지 정확한 이유를 대기는 힘들지만, 연구진은 ‘혼자 지내다 보면 어려운 일이 발생할 경우 가족으로부터 유·무형의 지원을 받을 수 없어 스트레스 관리 능력이 떨어지고, ‘가족’이라는 통제 장치에서 멀어져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생활 습관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라는 설명을 제시한다.

일찍이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은 가정 내에 자녀를 둠으로써 얻는 이익을 입증한 바 있다. 자녀와 함께 하는 부부는 스스로 생각하는 건강수준이나 만성질환, 육체적 편안함 등에서 자녀가 없는 커플에 비해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함께 사는 자녀는 아버지에게 훌륭한 동반자이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2002년 미국 하버드 대학 인류학 연구팀은 남성이 아기를 안고 있는 순간에는 남성 호르몬의 하나인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기혼 남성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준은 독신 남성보다 낮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남성에게서 테스토스테론 수준이 낮아지면 가사를 돌보거나 부인·자녀와 함께 지내려는 성향이 강해지고, 밖에서 음주를 하며 친구와 어울리거나 다른 여자를 만나려는 노력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을수록 전립선암에 걸릴 위험이 높고, 심장병 발생 위험도 높다는 증거를 제시한 바 있다.

이혼 후 자녀들과 떨어져 사는 남성들은 이혼 후 자녀들과 함께 사는 경우보다 건강 수준이 낮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우리가 흔히 이혼 후 양육권이 없는 아버지가 아이들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그들을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버지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아이들을 자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자녀를 갖지 않으려는 부부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자녀의 장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기러기 생활을 감수하려는 아버지가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남는 장사’인지는 냉정히 따져보아야 할 것 같다. 가족은 한 지붕 아래 함께 살고 있어야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