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다스린 여인들
  • 강철주 편집위원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2.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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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마튼 지음 <숨은 권력자, 퍼스트레이디>
베갯머리 송사 한마디면 동기간의 화목도, 돈독했던 우정도 여지없이 깨진다고들 한다. 남편은 군림하지만 아내는 그런 남편을 조종하고, 때로는 통치한다. 우리네 장삼이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통령 부부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대통령이면 부인도 대통령이다. 이른바 퍼스트레이디는 제도에 의해 보장된 자리가 아니면서 어떤 국가기관 못지 않은 권력의 근원이다. 대통령 부인의 베갯머리 송사는, 그런 점에서 국가 차원의 정치 행위가 된다.





<숨은 권력자, 퍼스트레이디>(케이티 마튼 지음, 이창식 옮김, 이마고 펴냄)는 20세기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12명이 그녀들의 남편과 미국 정치, 나아가 세계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기록한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의 말처럼 ‘도취와 고독의 직업’일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가장 내밀한 러닝 메이트로서 퍼스트레이디가 남편과 맺은 파트너십의 다양한 사례들을 이 책은 보여준다.


윌슨의 부인 이시아는 정식으로 결혼하기 전부터 연애 편지를 통해 국정에 관여했을 뿐 아니라 윌슨의 건강이 악화한 이후에는 아예 남편을 제치고 사실상 수렴청정을 했다. 루스벨트와 부인 엘리너는 부부라기보다는 정치적 동반자에 가까웠다. 힐러리가 클린턴에게 그랬던 것처럼, 엘리너는 루스벨트의 끝없는 바람기를 용서하는 대가로 남편과 권력을 공유했다.


재클린 케네디는 백악관이라는 무대의 뛰어난 배우였다. 정치에 개입하지는 않았지만, 프랑스 순방 당시 케네디가 프랑스 기자들에게 자신을 ‘재클린 케네디의 파리 여행에 동행했던 남자’라고 우스개 삼아 소개할 만큼, 그녀는 특유의 사교술을 유감 없이 발휘한 분위기 메이커였다. 닉슨의 부인 팻은 정치에만 몰두한 남편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고 무시당한 비운의 퍼스트레이디였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하면서도 닉슨은 사임 직전까지 아내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역자의 말대로, 후보들 가운데 표 줄 사람을 찾을 수 없다면 후보들의 부인을 보고 찍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지 싶다. 그녀가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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