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만을 위한 정부는 가라
  • 박상기(연세대 법대 교수) ()
  • 승인 2002.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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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세와 국방의 의무는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국민의 의무이다. 그런데 사회 일각에서 병역 비리에 대한 저항으로 병역거부운동이 벌어지고, 불평등한 재산세 과세에 대한 저항으로 납세거부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원인은 정부가 제공했다. 서울 강남 지역 아파트 가격이 급등해 서울 강북 지역이나 경기 지역 주민들이 상대적 상실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그동안 불공평하게 부과된 재산세로 말미암아 형평성 논란이 제기된 것이다.


강남 지역 아파트 가격이 급등한 것은 서울·경기 지역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지역에 사는 국민에게 더 심한 박탈감을 느끼게 했다. 여기에다가 행정자치부가 부동산 투기과열지구를 지정하면서 과천 등 특정 지역을 제외한 것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공무원 다수가 거주하는 지역이어서 제외했다고 의심한다. 정부 정책의 공정성에 대한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폭등한 서울 강남 지역 아파트 가격은 재산 상속을 통해 자녀 세대에까지 부가 대물림될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고액의 불로 소득이 형성되어 계층 구조가 공고화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서 심각한 계층 갈등을 빚을 조짐까지 감지되고 있다. 잘못된 법과 제도가 세대 간에 걸쳐 경제적 무능력자로 만드는 현실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상황을 부동산 정책이라는 시각에서만 바라본다면 현상의 한 단면만을 보는 것에 불과하다.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형성된 부의 극심한 편재 현상이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더욱 심해지고, 이제 사회 불안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익명적이고 어느 정도 잠재적이었던 계층 갈등이 이제 사회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재정경제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고소득자 상위 10%가 하위 소득자 10%에 비해 9배 가량 많은 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소득세 과표 기준으로 최저세율 적용을 받는 근로자가 전체 국민의 67%에 이르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분배 구조가 심각하게 악화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예이다.


1백50여 년 전 영국의 평론가 체스터턴은 만일 국민의 극히 일부가 일부다처제를 행하는 반면에 대다수 국민이 결혼을 한번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면 결혼은 더 이상 사회제도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부가 겨우 몇 %의 인구에 집중되어 있다면 재산 소유는 사회적 속성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특정 계급의 상징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강남 주민들의 조세 저항을 걱정한다고?


지금 우리의 정책 입안자들은 강남 지역 주민들의 조세 저항을 부를 수 있다면서 재산세를 포함하여 불평등한 과세 제도를 개혁하는 데 반대하고 있다. 세금을 내고 싶어서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세금이 국가를 지탱하기 위해 필요하고, 액수가 적정하다는 동의를 전제하고 세금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도 ‘강남 지역 주민들의 조세 저항’ 어쩌고 하는 행정자치부 당국자의 사고는 불가사의하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소득 분배 구조가 정상적이어야 한다. 마치 권력 집중이 부패한 권력을 낳듯이 부의 집중 역시 사회의 건전성과 안정성을 해친다.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면서 사회적 약자를 양산하고 사회 계층 구조를 강화하는 현실을 경쟁 사회의 불가피한 결과이며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당연한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유를 위협하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특권이다.


모든 정책은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세워야 한다. 그리고 불평등에 의하여 야기되는 자유 사회에 대한 위험성을 직시해야 한다. 조세 정책을 포함해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제도적 장치를 철폐하고 새로운 제도에 의해 시정하도록 정책 입안을 서둘러야 한다. 현실을 외면하고 현실에 역행하는 정책을 수립한다면 실패를 넘어 회복하기 어려운 결과를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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