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는 통쾌한 전복이다
  • 함인희(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 승인 2002.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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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학번인 나는 계열별 모집에 따라 대학에 입학했다. 이는 지금의 학부제와 유사한 방식으로, 2학년 때까지 인문사회 계열이나 자연과학 계열의 다양한 전공을 맛본 다음, 적성에 맞는 학과를 선택하도록 하는 제도였다.




솔직히 예비고사(지금의 수능시험에 해당) 성적에 맞추어 대학을 선택했던 상황에서 전공 탐색 기간이 2년이나 주어졌던 것은 행운이었다. 당시 사회학이라는 생소하면서도 막연한 학문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된 데에는 개론 과목을 섭렵하는 동안 우연히 마주쳤던 책 한 권의 영향이 컸다. 그 책은 미국 사회학자 피터 버거의 초기 대표작 <사회학에의 초대>였다.


폭로는 통찰과 상상력의 합작품


사회학의 세계에 초대된 내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개념이 있었으니 바로 ‘폭로(debunking)’이다. 사회학자에게 기대되는 핵심적 역할의 하나가 ‘폭로’라는 사실이 세상 물정 모르는 여대생에게 얼마나 유혹적으로 다가왔던지. 피터 버거가 권유했던 폭로란, 통념을 보기 좋게 뒤엎는 통찰과 상식을 향해 과감하게 물음표를 던지는 상상력의 합작품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또 얼마나 매혹적이던지.


피터 버거식 폭로의 명단을 열거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주장은 유럽의 시각을 반영한 것일 뿐, 원주민의 처지에서 보면 명백한 이민족의 침입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 지도는 적도를 중심으로 둥그런 지구를 펼칠 경우 아프리카 대륙이 지나치게 확대될 것을 염려하여, 의도적으로 북아메리카 대륙과 유럽 및 러시아를 중심으로 펼쳤다고 한다. 역사 서술이든 지도 제작이든 구미 강대국의 시선이 녹아들어가 있음이 ‘폭로’된 셈이다.


관심을 우리 주변으로 돌려보면 폭로 대상은 무궁무진해진다. 흔히 결손 가정에서 문제아가 많이 나온다고들 한다. 덕분에 반인륜적 범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의 관심은 주인공이 결손 가정 자녀였음을 확인하는 데 모아지곤 한다. 그러나 객관적 조사 결과 결손 가정과 청소년 비행 사이의 관계는 가상(spurious)의 관계임이 ‘폭로’되었고, 실제로는 빈곤이라는 사회구조적 요인이 결손 가정을 만들어내고 청소년 비행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검증되었다.


대부분의 고정 관념이나 편견 또한 ‘폭로’의 대상이다. 예컨대 ‘여성은 직업의식이 낮기 때문에 이직률이 높다. 따라서 여성 인력에 투자하는 것은 낭비다’라는 인식이 있다. 이 주장은 여성의 취업률이 충분히 상승해도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는 대표적 고정 관념의 하나이다. 그러나 사실을 ‘폭로’한다면, 남자에게는 실업이 문제요 여자에게는 취업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직업의식을 측정하는 기준은 남성으로부터 나오기에 여성은 항상 남성에 비해 직업의식이 낮을 수밖에 없다. 만일 여성의 경험을 기준으로 남성을 평가한다면 그들은 ‘가족 의식’이 매우 희박한 것으로 나타날 것임에 틀림없다.


여성의 이직률이 높다는 주장도 다시 따져볼 만하다. 왜냐하면 보수가 좋고 근무 조건이 안정적인 직장의 경우에는 남녀 간에 이직률 차이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이기 때문에 이직률이 높은 것이 아니라, 이직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열악한 근무 조건을 가진 일터에 여성들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폭로란 우리의 고정 관념을 보기 좋게 뒤집으면서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밝혀내고, 나아가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높여주기 위한 노력과 다름없는 셈이다. 진정한 의미의 폭로가 이루어질 때 폭로의 주체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고, 폭로의 대상은 문제가 반복되는 악순환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돌파구를 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폭로가 제 방향을 잡지 못할 경우라면, 도리어 피해자를 비난하는 우를 범하거나 엉뚱한 대상을 희생양으로 삼는 오류에 빠지게 마련이다.
가히 폭로 전쟁이라 해도 좋을 우리의 정치 무대에서 진정한 폭로가 가져다줄 통쾌한 전복은 언제쯤 가능하려나, 궁금해지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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