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성’을 바라보는 마음
  • 함인희(이화여대 사회학 교수) ()
  • 승인 2002.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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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서리)’ 탄생이라! 총리 인준 과정이 다소 험난할 것이 예상되기는 하나, 여성의 입장에서는 일단 두 손 높이 들어 환영할 일이다.


한데 이번에도 예외 없이 ‘최초의 여성’을 향해 박수를 치다 보니 슬그머니 아쉬움이 고개를 든다. 아쉬움의 첫 겹은 ‘이제야 비로소 첫 번째 여성 국무총리가 탄생했구나. 여기까지 오는 데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구나’ 싶은 생각 때문이다.





첫 여성 총리 임명의 뒤를 이어 지난 7월12일에는 또 다른 최초의 여성 탄생 뉴스가 텔레비전 전파를 탔다. 초계 임무를 수행하는 해군항공부대에 최초로 여성 장교인 이지연 중위가 임명됨으로써 금녀(禁女)의 벽이 또 하나 허물어졌다는 보도였다. 최초의 여성이 탄생할 때마다 뉴스가 되는 우리의 현실 뒤로 이제야 비로소 여성이 진입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다가옴은 나만의 느낌은 아니리라.


아쉬움의 두 번째 겹은 최초의 여성이 등장했다는 사실에 마음껏 손뼉치며 기뻐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에서 연유한다. 특히 그 최초의 주인공이 ‘여성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탄생할 경우, 왜 하필이면 지금 이 시점일까, 왜 하필이면 바로 그 자리일까, 왜 하필이면 그 여성을 선택했을까, 고개를 갸웃하게 될 때가 많다.


남성 중심 사회의 한계 드러내는 사례들


외무부 역사상 최초로 여성 대사 등장이 예고되던 당시, 당사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러시아 전문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핀란드 대사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지난해 여군 창설 51년 만에 최초의 여성 장군이 탄생할 즈음, 여군 내부의 복잡한 정황을 고려하여 육군본부 간호병과장이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전문성도 열외로 하고 최소한의 조직 내 위계 서열도 무시한 채 의외의 여성이 발탁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 여성들은 2% 부족한(?) 남성 중심 사회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이들 최초의 여성 뒤를 이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금녀의 벽을 뚫었는가에 생각이 미치면 아쉬움의 겹은 더욱 두터워진다. 매스컴은 거의 예외 없이 최초의 여성들을 향해 과도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구색을 맞추는 수준(token level)에 머무를 때가 많다. 실제로 여성을 장관으로 모시게 되는 부처는 자신들의 위상 격하를 우려한다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들려오지 않던가.


더욱이 우리 사회는 이들 최초의 여성 뒤를 이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금녀의 벽을 뚫는 데 성공했는지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의 현실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최초의 여성이 받아온 스포트라이트 뒤로 길다란 그림자가 드리워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의사·변호사·기업가 가운데 여성의 수가 절대적으로 급증하고 있음은 사실이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남성 대 여성의 비율을 비교해 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나아진 것은 없다. 남성 영역을 향한 여성의 진출 기세 또한 만만치 않음은 사실이나, 여성이 남성 영역에 진출한 만큼 남성이 여성 영역으로 진출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최초의 여성은 많은 경우 특혜를 받아 등장하게 된다. 특정한 소수의 여성들이 특혜를 받는다는 사실은 대다수 여성들이 불평등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나 다름없다. 그러하기에 이들 최초의 여성이 여성으로서 어떠한 정체성을 갖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일찍이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나는 정치가일 뿐 여성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공언했다. 대처 총리의 주장에 적극 동조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이 공언이 진정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명실공히 남녀가 평등한 구조가 전제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호부터 ‘시론’ 필진이 바뀝니다.
새 필진과 집필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함인희(이화여대 교수·사회학) 박상기(연세대 교수·법학) 설호정(언론인) 안병찬(경원대 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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