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김씨에게 되묻고 싶은 것들
  • 서명숙〈시사저널〉편집장 (sms@e-sisa.co.kr)
  • 승인 2001.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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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통령의 국군의 날 기념식사에 대한 YS·JP와 야당의 비난은 역사에 대한 몰이해 혹은 의도적 오해를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요며칠 우리 정치권은 김대중 대통령의 말을 둘러싸고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김대통령의 국군의 날 기념식사가 사단이었다. 한나라당은 김대통령의 발언이 참으로 해괴하고 위험스러운 역사관이자 현실 인식이라고 맹공했고, 자민련도 김대통령이 국민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발언의 진의를 국민 앞에 직접 밝혀야 한다고 주문했다.


보수의 대표임을 자임하는 YS와 JP도 공세에 한몫 거들었다. YS는 자택을 방문한 한나라당 박종웅 의원에게 '범죄 행위를 통일 시도라고 미화하는 이런 발언은 김대중씨의 사상과 정체를 드러내 보인 것'이라고 비판했고, JP는 "묘한 말씀이며 무슨 뜻인지 진의를 모르겠다"라면서 그다운 묘한 말솜씨로 꼬집었다. 이런 주장들을 종합해 보면, 김대통령은 해괴하고 위험스러운 역사관을 담은, 사상이 의심스러운 묘한 발언을 한 셈이다. 그것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국군 통수권자로서 탄핵을 받고도 남을 만한 일이다.


통일은 가치 중립적인 개념


대관절 김대통령이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어떤 이야기를 했기에? 문제가 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세 번의 통일 시도가 있었습니다. 신라의 통일과 고려의 통일, 이 두 번은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인 6·26 사변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민족 상잔의 비극을 낳은 6·25 남침을 두고 감히 '통일'이라는 성스러운 단어를 동원했을 뿐만 아니라, '성공하지 못한'이라는 표현을 써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는 것이 야당과 양김씨가 이번 발언을 비난하는 근거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역사에 대한 몰이해(혹은 의도적 오해)를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통일'은 그들이 전제하듯 (우리 입장에서) 바람직하고, 옳고, 숭고한 의미로만 쓰이는 개념이 아니다. 실제로 통일의 사전적 의미는 '여럿을 몰아서 하나의 조직 체계 아래로 모이게 하는 것'(금성출판사 펴냄 〈국어대사전〉)이다. 객관적으로 드러난 결과에 대한, 지극히 가치 중립적인 개념일 뿐이다.


역사에서 실현된 통일 사례를 보더라도 어느 한쪽에게는 승리의 기록일지라도 다른 한쪽의 처지에서는 상실의 기록인 경우가 많다. 당나라의 지원을 받은 통일 신라의 출현은 백제 궁녀들에게는 '낙화암에 몸을 던져야 할' 비통한 사건이었고, 고려의 통일조차 마의태자에게는 '속세를 저버려야 할' 원통한 사건이 아니었던가. 통일 베트남 출범 역시 자본주의 체제의 눈으로 보자면 공산주의에 흡수되는 '잘못된' 통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통일이라는 결과까지 부인되는 것은 아니다.


이쯤에서 이 땅의 왕보수들은 펄펄 뛸지 모르겠다. 〈시사저널〉도 역사관이 의심스럽다고 말이다. 그런 분들은 부디 다음 책을 살펴볼 일이다. 중학교 검인정 교과서 2학년 도덕책 〈민족 분단의 원인〉 220쪽에는 '남한보다 군사력에서 우위에 있던 북한이 무력에 의해 통일을 달성하려 했던 것이 바로 6·26 전쟁이었다'고 쓰여 있다. 이 서술을 줄여서 말하면 바로'6·25는 성공하지 못한 통일 시도'아닌가.


더욱이 김대통령은 이번 기념식사에서 문제가 된 대목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무력적인 통일 시도에 대한 우려도 다소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이 세 번 모두가 무력에 의한 통일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네 번째의 통일 시도는 결코 무력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야 합니다. 지금은 남북이 엄청난 대형 살상무기를 가지고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민족의 안전을 위해서나 장래의 번영을 위해서나 반드시 평화 통일에의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야당과 양김씨는 연설문의 앞부분만 듣거나 본 것일까? 아니면 의도적으로 묵살하거나 외면했던 것일까? 그 어느 쪽이라도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다. 양김은 지난 10월7일 밤 심야에 회동해 장차 정계 개편의 방향과 대선 공조를 논의했다고 한다.


국민을 위해 할 일을 마저 하겠노라는 양김씨에게 묻고 싶다. 보수를 결집하기 위해서라면 그처럼 무책임한 선동 정치를 해도 되는 것인가고. 국민을 언제까지나 그렇게 물로 볼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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