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여, 나의 배반을 용서하라
  • 신수정 문학 평론가 ()
  • 승인 2001.04.2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 말을 한 번이라도 입 끝에 올려본 자에게 고향 말은 더 이상 단순한 배냇어가 아니다. 그것을 추구하면 할수록 대책 없는 노스탤지어에 빠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서울년'이다."




그럴 줄 알았다. '부산 싸나이들의 우정' 어쩌고 할 때부터 알아보았다. 개봉 열흘 만에 전국 관객 2백만을 돌파하며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를 가볍게 '제치고' 있는 영화, 〈친구〉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내 주변만 둘러보아도 알 만하다. 대개의 경우 좋은 말로 '프리랜서'요 실감 나게 말해 '업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들 가운데 둘 중 하나가 이 영화를 보았다면, 그것은 대단한 숫자다. 그러나 이 대단한 숫자들이 하는 말들이 모두 하나같이 똑같다는 사실이 더 흥미롭다. 그들 모두는 말한다. "겡상도 사투리, 쥑이데."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이 영화를 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아니, 장동건의 수려한 마스크가 눈에 어른거림에도 불구하고 굳이 볼 수 없는 이유가. 그 이유를 밝히자면 1970년대 어느 깊은 두메 산골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와 유사한 서사적 배경을 제공할 경상도 ㄷ시 정도까지는 공간 이동을 해야 한다. 이야기는 서울에서 여자아이 하나가 전학 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밉다. 아니 밉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 전 해 가장 많은 생일 초대와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은 나의 아성을 야금야금 잠식하더니 어느새 학교 방송의 '앵커' 자리마저 가로챈다. 오로지 '서울말'을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영화 〈친구〉를 '차마, 떨치고' 볼 수 없는 이유


배경은 다시 1980년대 대학 캠퍼스로 이동한다. 나는 그때 '욕을 전혀 욕 같지 않게 하는' 남자아이들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고향의 시금털털한 통학 버스에서 늘 듣던 그런 종류의 욕설이 아닌 욕설도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다. 이른바, 서울 남자들 말이다. 그들의 서울말은 어찌나 달콤하고 우아한지, 욕설마저 향기로울 정도다. 바야흐로 한때 '서울말 혐오주의자'였다는 사실이 들통 날까 봐 전전긍긍하게 되는 나날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생각해 보면 이제까지의 나의 인생은 '사투리로부터의 도피'라고 할 만하다. 사투리는 나의 신원을 결정한다. 그것이 발산하는 투박하고 간결한 사운드는 내가 누구의 자식인지, 누구와 친하게 지내야 하는지, 어디를 가면 안 되고 또 어디를 꼭 들러야 하는지 규제한다. 그것들 속에 있는 한 나는 이제는 흰머리만 남은 늙은 아버지의 세계, 그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딸의 세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아버지가 있으므로 내가 있고, 내가 없어도 아버지의 세계는 건재한다. 사투리는 언제나 그것을 상기시킨다.


어느덧 사투리를 벗어 던진 시간과 그것 속에 파묻혀 산 시간이 비슷해져 간다. 어쨌든 나는 버틴 것이다. 민망하지만, 이 점이 중요하다. 버티기가 쉬웠겠는가.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미명 속에는 언제나 '내가 누구인지 말해 줄 자'를 찾아 헤매는 방황과 고통의 역사가 함께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시 사투리의 세계로 돌아갈 수도 없다. 서울말을 한 번이라도 입 끝에 올려본 자에게 고향 말은 더 이상 단순한 배냇어가 아니다. 그것을 추구하면 할수록 대책 없는 노스탤지어에 빠지는 경우가 더 많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서울년'이다.


이만하면 내가 〈친구〉를 '차마, 떨치고' 볼 수 없는 이유가 해명되었으리라고 본다. 나는 겁이 나는 것이다. "니는 니 길을 가라, 내는 내 길을 가께" 혹은 "칭구끼리는 미안하다는 말 하는 거 아이다" 이런 말을 듣고서 내가 어찌 더 이상 버틸 수 있을 것인가. 하물며 그것이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우스개로 통용되던 시절의 수모를 딛고 이제 '대선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를' 정도의 정치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데야.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이제까지의 나의 배반을 용서해 달라고 싹싹 빌지 모른다. 서슬 시퍼렇던 '언니'들마저 남자들의 우정에 모처럼 경이를 느낄 뿐이라고 한다니 나의 우려는 기우가 아닌 셈이다.


에필로그 삼아 고백하자면, 사실은, 이미, 그렇다. 나는 전형적인 '배신자의 말로'에 해당하는 삶을 부지하고 있다. 경상도 ㄷ시에서 할아버지에 의해 양육되고 있는 네 살짜리 아들은 오늘도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말한다. "엄마, 뭐 하노? 밥 묵었나?" 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시여, 당신은 위대하나이다. 사투리는 살아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