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문제의 본질
  •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
  • 승인 2004.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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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한반도 통일 이후 국경 문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중국은 남한 중심으로 한반도가 통일될 경우 북한의 당 및 군 지도부가 무기를 소지하고 중국의 동북지방으로 넘어올 가능성을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21세기 벽두 한반도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외세에 의해 한반도의 미래가 결정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중국 역시 국익을 위해 이웃 나라의 역사까지도 멋대로 뜯어고치는 오만한 강대국임을 여지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일본의 과거사 왜곡을 시정하라고 집요하게 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거리낌없이 고구려사 왜곡을 시도하는 중국을 보면서 ‘이제 또 다른 일본이 생겨나는구나’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바야흐로 동북아시아는 공격적 민족주의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힘이 곧 정의’인 이 야만의 시대에 과연 우리는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 것일까.

중국의 최근 행태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진저리를 내면서 중국의 역할에 기대를 걸었던 우리 사회 일각의 환상을 깨버리기에 충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친미냐, 친중이냐는 옳은 문제 제기가 아니었다. 어느 한 강대국에 의존해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생각은 전적으로 틀린 것임이 드러난 것이다.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의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활로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들이 한반도에 대해 갖고 있는 이해관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이들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의 국익을 확보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이번 고구려사 왜곡은 현재의 구체적인 현실적 필요에 의해 시도되고 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고려대 최광식 교수에 따르면 그것은 첫째, 자국내 55개 소수민족의 분리독립운동을 봉쇄하기 위한 사전 조치의 일환이다. 어느 한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움직임도 분리독립운동의 연쇄 작용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에서 이는 중국 지도부에게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이다. 중국은 이미 1983년 국경 지방의 역사·지리를 연구하는 ‘중국 변강사지 연구중심’을 설립했으며, 신장위구르자치구·윈난성 등을 대상으로 서부공정·윈난공정 등을 추진했다.

동북공정이 시작된 것은 2002년 2월이다. 이에 앞서 2001년 한국 국회에서 재중국 동포의 법적 지위에 대한 특별법이 상정되면서 중국 정부는 조선족 문제와 한반도 통일과 관련한 문제 등에 대해 국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최근 한 시민단체가 국내 체류 조선족에게 한국 국적을 부여해 달라며 단식 농성을 주도한 바 있는데 이같은 움직임들이 중국을 자극했을 것이 분명하다.

고구려사 왜곡에 남북 공조 대응은 가능할까

다른 하나는 장기적으로 한반도 통일 이후 국경 문제 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통일과 관련해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남한 중심으로 한반도가 통일될 경우 북한의 당 및 군 지도부가 무기를 소지하고 중국의 동북지방으로 넘어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중국 내에 북한의 망명정부가 들어서는 셈이다. 100만명의 조선족이 있는 동북지방에 수십만, 수백만의 탈북자와 함께 무기를 지닌 북한 지도부가 자리 잡게 되는 사태를 중국은 결코 원치 않을 것이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두만강 및 압록강 접경 지역에 15만 병사를 배치한 것은 바로 이러한 사태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측의 우려에 일정 부분 타당성이 있다 하더라도 고구려사가 중국사의 일부라는 중국의 일방적 주장을 우리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학계와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여야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응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그럴 준비는 되어 있는가.

생존을 위해 중국의 지원에 목을 매고 있는 북한의 처지는 차치하고라도 ‘북한주적론 폐지’를 한사코 반대하고, 주한미군 재배치로 북한의 남침 위협이 증가했다고 우려하는 남한의 분위기에서 과연 남북 공조는 가능할 것인가. 국내 친일파 진상 규명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일본에 대해서는 ‘재임 중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거나 ‘일본이 알아서 시정해달라’는 등 저자세로 일관하는 우리 정치 지도자들의 발언을 과연 중국측은 귀담아 듣기나 할 것인가. 그러니 갑갑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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